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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얼 Dec 30. 2024

[그데담 061] 검은 손

 [3/3]






 “엄청 고민하는 표정이네.”

 

 “맞아요. 최근 들어 말해놓고 가장 고민 중이야.”

 

 “내가 지을 표정을 도령이 하고 있네. 왜요? 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좀 헷갈려.”

 

 “어떤 게?”

 

 “예전에 미처 쓰지 못한 담화의 주제기도 하지만, 나는 ‘주변을 향한 내 말이 너무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어요. 정확히는 내가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이 너무 과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나 부작용을 불러오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아직 모호해. 한편으로는 정도가 아닌 시기의 문제인가 싶기도 해. ‘꼭 지금이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드네.”

 

 “다른 경우는 모르겠다. 근데 나는 도령이 말이 과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장난칠 때 빼고는.”

 

 “보통은 청자로서는 과해도 과하다고 느끼기 힘들지. 근데 내 생각에도 정도보다는 시기가 더 마음에 걸려. 너무 일렀나 싶어.”

 

 “...나도 아까는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들었는데?”

 

 “이제는 글쎄... 아무렴 어떠냐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과정을 모르겠네.”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 이거, 오늘 생뚱맞게 처음 나온 거 아니잖아. 우리 사실 지금까지 계속 이러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

 

 “이 일이 왜 이 타이밍이었을까, 이런 건 따지고 싶지 않아. 어느 때가 되어도 이 주제는 적절한 타이밍이 없다 싶어. 오히려 일 년이나 묵혀둔 거잖아. 말하고 싶어도 묵묵히 참고 지켜본 거고.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런 말을 들었으면... 맞아. 도령 말대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 너무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다시는 도령을 보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근데... 단지 만나고 일 년 만에 말을 꺼냈다는 것보다... 사실 지금껏 우리는 계속 그랬어. 이래왔던 거야. 그걸 배경 설명 곁들여서 체계적으로 들은 것뿐이지 우리는 계속 이랬어. 나는... 이제와 생각하면 저런 것을 바라고 도령에게 계속 뭔가를 물었어. 도령도 저런 것을 염두에 두고 내 말에 일일이 대답해줬어. 한 번도 귀찮거나 버겁다는 티도 내지 않고.”

 

 “귀찮거나 버거운 적 없었으니까.”

 

 “어쨌든. 어쨌든 우리는 이걸 계속 해온 거야. 지난 1년 내내. 근데 이제와 이런 얘기 들었다고 자존심 상하고 화를 내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그동안 안 했으면 모를까,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계속 이 시스템으로 대화를 해왔는데. 지금 내가 드는 이 감정들은... 이건 우리의 몫이 아닌 것 같아. 정확히는 도령하고, 최소한 도령을 만나는 지금의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참담함, 알 수 없는 무력감, 좌절감, 처참함, 분노, 창피함, 반발감은 지금까지의 내가 만들어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들이. 그때그때 풀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담아두기만 했어. 언제가 됐든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 것들이고 평생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인데.”

 

 “......”

 

 “그런 거 건드린 거잖아. 빼내려고 들춰낸 거고. 그런 사람이 고마우면 고마웠지, 그런 사람한테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잖아.”

 

 “아무도 안 봐. 참지 마.”

 

 “...그래서 고마워. 이런 걸 해준 것도 고맙고, 그럴 능력이 되는 것도 고마워. 이제껏 다른 사람들도, 가족도 친구도 지난 남친들까지도 보면서도 쉬쉬했던 부분인데 외면하지 않고 해줘서 고마워. 이건 진심이야. 근데 동시에 당신이 참 밉기도 해. 왜 하필 지금인지, 왜 하필 이 부분인지, 이걸 건드리는 게 왜 하필 당신인지 원망스러워. 그러면 안 된다는 거 알아요. 근데 지금 그런 마음이 주체가 안 돼.”

 

 “......”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당신 글 중에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현수’라는 글인데, 그거 보면서 나 울지는 않았어. 근데 하루 종일 운 것처럼 마음이 너무 이상했어. 그건 나한테, 내게 있어서 너무 바라면서도 절대 그러지 말아줬으면 하는 거였나 봐. 그래서 좀... 갈팡질팡 했어. 마치 건드려달라는 것처럼 물어보고 유도해도 여간해선 건들지 않아서 속상했어. 내가 그만큼 가치가 없나. 도령에게 중요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정말 건들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더 찔러보고 싶어도 많이 삼켰어. 그러다 보니 우리한테 1년이 지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냥 그러려니 했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신경 쓰였지만 그 크기가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야. 언젠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아니면 뭐 어때. 딱 이 정도 마음이었던 것 같아. 근데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쑥 들어오니까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가, 뒤늦게 깜짝 놀랐다가, 멈추기엔 이미 기세를 타버려서 속절없이 끌려가다가, 낮게 짓눌리고 끓다보니 아까 거기였어. 도령이 계산하는 동안 난간에 서서 밤하늘을 보는데 꼭 다 벗고 있는 것처럼 시원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어. 그냥 그대로 떨어져서 죽고 싶기도 했고. ‘왜 이제야’라는 마음과 ‘왜 벌써’라는 마음이 같이 들고, ‘왜 당신이라는 원망과 ‘당신이라서’라는 안도도 같이 들었어. 그 침략전쟁에서 진 병사들이 좌절하면서 안도하던 그 상반된 마음이 이런 거였나 싶었어.”

 

 “맞아, 비슷할 거야.”

 

 “...아까는 그랬어요. 엄청 복잡했는데, 복잡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분 있잖아. 빵점 시험지 숨겨놓고 있다가 부모님한테 걸린 것처럼. 걸린 건 너무 당혹스럽고 무서운데 더이상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편으로 개운하기도 하고.”

 

 “그 오묘한 양극의 감정이 나란히 오는 그런 기분 있지.”

 

 “응, 그랬어. 그래서 도령 얘기 듣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사실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어. 그냥 멍하니 끌려가게 되더라. 그렇게 차분히 다 듣고, 술 마시러 와서 첫 잔을 딱 넘기는데 미뤄놨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한 번에 몰려오더라고.”

 

 “그런 것 같더라. 아까 표정 엄청 버라이어티 했어. 화면 조정 중에 나오는 그 칠색 화면 같았다니까.”

 

 “알만하다. 근데 아까까지는 그래놓고, 울고 짜고 하면서 말 좀 했더니 또 마음이 차분해지네.”

 

 “내가 한 얘기, 사실 별 거 없지. 이미 다 아는 얘기고, 당신도 자각하고 있는 것들을 그냥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뿐이니까.”

 

 “그 글 봤을 때부터 늘 궁금하긴 했어. 나는 그래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 아니, 살면서 나도 모르게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의식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남이 가진 어둠에 손을 넣는다는 건 무슨 기분이에요? 어떤 느낌이에요, 그건?”

 

 “......”

 

 “...설명하기 어렵지?”

 

 “응, 이건 말로는 어려운 부분이네. 단지... 이런 건 보기가 너무 많은 문제고, 난 한 번도 정답을 알았던 적이 없어. 본의 아니게 혹은 의도 하에 남이 가진 어둠에 손을 담갔거나 담그게 된 적은 많지만, 그 많은 경우 중에 단 한 번도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어. 시간이 지났어도 말이지.”

 

 “결과는 어땠어요?”

 

 “정확히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절반은 그 자리에서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관계가 끝났어. 나머지 절반쯤은 한동안 멀어졌다가 아주 나중이 되어서 다시 좋아진 관계도 있었어. 그리고 아주 소수의 관계만 굴곡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걸 다 따져보면 결국 남의 어둠에 손을 대면 관계의 결과는 반반으로 나눠지더라. 당시 반응도 이후 과정도 다양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었어. 무엇을 더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말했듯이 나는 한 번도 여기에 대해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단지... 그런 거야. 그 후 얼마를 더 봤고 어떻게 지냈고, 이런 게 아니야. 타인의 어둠에 손이 닿는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사람의 얼굴이 화내거나 울고 있었는지, 아니면 웃고 있었는지. 딱 그렇게만 나눌 수 있고 그것만이 내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더라. 그게 반반이었던 것 같아. 화내고 끝이거나 고마워하며 더 친밀해지는 관계는 당연히 있었고, 울면서도 계속 보거나 웃으면서도 안녕 하는 관계 역시 있었어. 그러니 나중에는 내가 있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그랬든 아니든, 어차피 상관없는 거 아니었나.”

 

 “그랬구나.”

 

 “응.”

 

 “그럼 반대는 어땠어요? 도령이 가진 어둠에 손이 닿았던 사람은 얼마나 있었어?”

 

 “지금 남은 건 셋이야. 내가 벗이라 여길 수 있는 세 가지 요건 중 하나가 누군가의 손이 내 안에 닿는 것인데, 현제 내게 벗은 셋뿐이니까. 물론 내 어둠에 손이 닿았던 사람만 치면 그보다는 많았을 거야. 이제는 연이 닿지 않은 옛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해줬음에도 내가 몰랐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손발가락을 다 더해도 모자를 만큼 많았을 거라 생각해. 근데 말했다시피 나는 외부폭발의 발화점이 높은 사람이잖아. 그것도 엄청. 그래서 그렇게 해주는 것을 그렇다고 느끼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넘어간 일도 많았겠지.”

 

 “그건 한편으로 슬픈 일이구나. 지금껏 나만 슬프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안 그런 사람보다 내가 더 힘들고 아팠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반대 입장 역시 쉽진 않았겠다.”

 

 “모든 섭리는 짝수고, 짝으로 이루어진 것은 동전처럼 앞뒤로 장단점을 나눠 가지니까. 기회비용이라는 게 그렇잖아. 마주 보고 있는 모든 것에는 ‘더’와 ‘덜’은 없는 것 같아. 그 물결과 굴곡은 비슷비슷해. 단지 환경이나 개인의 특성에 따라 같은 것을 겪고도 조금 더 진하고 깊게 느꼈거나, 얕게 흘려보냈거나 그런 차이겠지.”

 

 “응. 그런가봐.”

 

 “좀 진정이 됐어요?”

 

 “진정은 아까 됐어요. 너무 바보 같이 운 것 같아서 그게 좀 창피하긴 해.”

 

 “안 그랬어. 울면서도 또박또박 말도 잘 하더구먼. 여배우 같았어.”

 

 “으, 별로였다는 소리네.”

 

 “그런 뜻은 아니야. 이 사람은 무너질 때마저 또렷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건 아마 지난 삶 동안 누적된 습관일 테니까. 내 식대로 표현하면 자의와 타의가 반씩 섞인 반강제적 퇴적성향 탓이겠지. 그래서 무너질 때마저 몸 한쪽은 추스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사실 마음이 좋진 않았어. 이때만큼은 전부 내려놓고 확 울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안 되나 싶네.”

 

 “나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슬프긴 한데 반대로 조금이라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다행이야. 내게 있어 도령이 그렇고, 도령에게 유리 씨가 있는 것처럼.”

 

 “그렇지. 내 인생의 귀인이자 은인이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벗이지.”

 

 “도령에게 아직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게 좀 속상할 뿐이야.”

 

 “이건 어설프게 호응하거나 변명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냥 그게 좀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그래. 10년쯤은 되어야 그나마 약간 알겠다 싶은 게 사람 관계니까. 물론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점이 더 많은 것도 사람 관계이고. 뭐, 그런 것 치곤 작년 호숫가에서부터 당신에게 창피할 정도로 매달렸었지. 이래저래 당신은 내게 이례적이야.”

 

 “근데 나만큼 당신도 안 좋아 보여. 이 와중에 그게 마음에 걸리네.”

 

 “당신 탓은 아니야. 당연한 반작용이지.”

 

 “왜?”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지만, 나는 살면서 타인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설 기회가 많았거든.”

 

 “남이 가진 어둠에?”

 

 “맞아. 사적 영역이란 좋은 쪽과 좋지 않은 쪽 모두를 말한 거지만, 실제로는 그래. 어둠과 더 많이 마주했어. 사실 살면서 그럴 기회는 많지 않아. 누군가가 인생에 있어서 손꼽을 정도로 힘든 상태일 때 마침 내가 바로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건. 더구나 그 사람이 누구보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은 여러 요건과 시기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야. 시기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나락에 조금이라도 스며들어가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과정이니까. 근데 어쩌다 보니 나는 그런 일이 적지 않았어. 나 역시 워낙 오래 혼자 힘들어하고 어둠 속에서 허덕여서 그런지 내 주변도 꼭 나 같은 사람들만 모여들었거든. 그러다 보니 무너져 내리는 사람 곁에 마침 나밖에 없을 때가 많았어. 그러니 응당 그 사람이 가진 어둠과 손이 닿는 일도 많았고. 내가 열어젖혔든 아니면 열린 자리로 빨려 들어갔든, 타인이 가진 어둠에 내 손이 닿는다는 건... 뭐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참 어려운 일이야. ‘현수(玄手)’라는 게 그래. 내 손 역시 검지 않으면 상대의 어둠에 닿을 수 없고, 어두운 부분이 아니고서야 넣을 수도 없어. 그것밖에 할 수 없지만, 그것만은 할 수 있는 그런 손이야. 하얀 손처럼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진 못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람을 붙잡고 지탱할 수는 있어. 제로에서 플러스로 올려주진 못하지만 마이너스에서 제로로는 끌어당길 수 있는, 어두운 영역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거야.


 “.......


 나는 늘 그랬어요. 타인의 기쁨보다 아픔에, 행복보다 상처에 더 민감했어. 거기에 먼저 눈이 갔고 요령도 더 알았어. 기분 좋을 때 함께 즐길 만한 사람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힘들 때 같이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는 적합했어. 게다가 어둠은 전염성이 강해서 타인의 어둠에 손을 대는 일은 나 역시 그만큼 영향을 받고 물들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러다 보면 나 역시 빗장이 열려서 덩달아 함께 어두워져. 내 손도 그랬어. 내가 힘들고 어두워서 원래 그런 색이었는지, 아니면 어둠을 많이 만지다 보니 어느새 그리 되었는지. 그 순서는 알 수 없고 중요하지도 않아. 어쨌든 내 손은 어느 순간부터 검었어. 상대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은 순간부터 일방통행은 양방통행이 되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란히 까맣게 물드는 거야. 그러다가 먼저 괜찮아지는 사람부터 의지와 상관없이 그 굴레에서 튕겨나가는 거지. 타인을 침범하는 행위는 그렇게 시작되어서 그렇게 끝나. 그러다보면 때로는 내 어둠을 상대에게 전가할 때고 있고, 상대의 어둠을 내가 품게 될 때도 있지. 피아 구분 없이 닿으면 같은 색으로 물드는 거야. 그런 일들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나는 늘 까맸어. 주는 것만큼 받는 것도 많았고, 괜찮아져서 떠난 사람의 자리는 또 다른 어둠을 품고 있는 사람이 들어왔지. 그러다 보니 쉴 세 없이 도킹 중인 우주정거장처럼 돼. 까만 우주에서 파란 빛을 바라보면서, 가까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못하면서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거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도킹하면서. 그러다 보면 지구로 내려가는 셔틀도 있고, 우주로 튕겨나가는 위성도 있어. 근데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의 도킹이 끝나지 않아서 계속 그 자리야. 아, 참고로 이건 그냥 설명인 거지 절대 당신을 탓하는 거 아니니까 표정 펴.”

 

 “들을 때마다 따끔하네. 쓰레기 버리러 가는 사람에게 구정물을 부은 기분이야.”

 

 “안 그래.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뭐 그리 힘든 길로 가냐고, 왜 그렇게 어렵게 사냐고, 남을 위해 그만 살고 너를 위해 살라는 말도 꾸준히 했어. 사실 남을 위한 게 아닌데 말이야. 알다시피 난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잖아. 나를 위해서가 아니면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야. 내가 좋아서 한 거고, 하면 나도 좋아지니 한 거고, 그러고 싶어서 한 거야. 처음에는 분명 그랬어.”

 

 “점차 뭔가 바뀌어갔나 보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났어.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도 관계도 모든 것이 함께 흘러갔지. 그에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아니면 우주정거장이 노후가 되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 안의 비행사가 끝나지 않는 도킹에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흐름을 타기 시작한 행위는 처음 자의만 오롯했던 것과 달리, 흘러가는 노선이 길어질수록 어쩔 수 없는 상황적 타의가 스며들 수밖에 없나봐. 그러고 싶지 않을 때도 놔둘 수 없어서 그러게 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책임감 때문에 하게 됐어. 그러면서 행위자로서의 나는 점점 나아지지 못하게 되더라고. 둘 다 좋았던 게 어느 순간 나는 별로 안 좋게 되었어. 그러다 결국 나중에는 내게 좋은 일은 거의 없었지. 그런 흐름이 되니 사람들 역시 변하기 시작하더라. 길가에 내놓은 빈 박스처럼, 당연하게 와서 익숙하게 자신의 것을 버리고 태연하게 돌아갔어. 두 손으로 오던 이가 한 손으로 오고, 손바닥과 손바닥이 하던 악수는 손바닥과 손가락이 하는 악수가 되고, 자신과 내 안부를 함께 궁금해 하던 인사는 점점 자신의 안부만 궁금해 했지. 그러다 보니 그 용도가 아닌데 잡다한 쓰레기가 가득 찬 박스처럼, 우주정거장도 쓰레기통이 되었어. 인사도 없이 도킹부터 해서 기름을 채우고, 쓰레기마저 버린 후에 안부도 묻지 않고 가버리는 거야.”

 

 “그 글들이 이거였구나.”

 

 “나는 이것이 누구 하나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게도 원인이 있지. 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어. 물론 내가 이롭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나만 이롭자고 했던 일은 아니었거든. 둘 다 좋기 위해서, 서로 더 괜찮아지려고 한 선의인데 그것을 점점 당연하게 생각하고 배려는 권리가 되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만 챙겨가는 모습에 실망을 많이 했어.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새벽 몇 시건 쉽게 전화하고 불러내서 하소연을 하다가도, 생전 먼저 안 그러던 사람이 저녁 먹을 시간쯤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퇴근 직후라 피곤하다고 끊어버렸어. 심지어 그저 그런 이만 그랬던 게 아니고, 내가 고유명사화 해서 부를 정도로 오래 가까웠던 사람조차 내게 그러더라. 그쯤 되니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더라. 그래서 슬슬 그 횟수를 줄여나갔어. 내게는 마치 꽃이 피고 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도킹 횟수만 조절 할 수는 없으니 아예 인연을 밀어내는 것으로 원인 자체를 제거하게 된 거야. 그리고 텅 빈 지구 변두리에 다시 나만 남았지. 간혹 찾아오는 우주선도 있었지만 잠시 스쳐지나가듯 일뿐, 옛날처럼 밀접하게 관계 맺지는 않게 되었어. 근데 그럼에도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어. 스쳐가는 사이가 아니라 더 가까운 관계가 되기도 하고, 당연히 그 사람도 어둠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했고, 오래 했고, 잘 하는 것도 거기에 손을 담그는 거고. 그럼 결국 누가 더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걸 하게 돼.”

 

 “즐거워요?”

 

 “즐겁다? 글쎄... 즐거운 건 모르겠네. 근데 내가 기껍게 하는 건 맞아. 한 때 그게 무리라고 생각해서 도망치긴 했지만 그 자체가 기껍지 않은 적은 없었어. 드물고 하기 힘든 일이라서 그만큼 보람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진한 관계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도 좋아. 그러니 내게 있어 이건 삶의 방식 중 하나야. 유리병에 담긴 알코올램프처럼 은은하고 잔잔하게 살아갈 건지, 그 알코올을 흠뻑 적신 장작처럼 거칠게 휘날리며 살아갈 건지. 말했듯 누구나 검은 손일 수 있어. 스스로 그리 되든, 누군가의 어둠에 손을 넣어 그리 되든. 하지만 정답은 없는 거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니까. 나는 어느 순간 깨닫고 나니 이런 사람이었고 내가 그렇다는 것에 만족해요. 남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도 있어. 물론 그 부작용도 있지. 내가 느꼈던 서운함도 그런 부작용 중에 하나였을 거고. 그래도 난 내 검은 손을 사랑해요. 물러서거나 피함 없이 타인의 어둠과 마주하고, 그에 망설이지 않고 손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남들은 꺼리고 외면하는 부분을 안아주고 다독일 수 있어서 좋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싶잖아.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자 축복이야. 간혹 저주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하다보면 점차 괜찮아질 거야.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실수해서 아찔했던 것도, 대처가 나빠서 실망했던 것도 계속 나아질 거야. 그래서 나는 내 손을 계속 검게 둘 거야. 설령 그 사람과의 마지막이 우는 얼굴로 끝날지 웃는 얼굴로 계속 볼지 모른다 해도, 어쨌든 이 검은 손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내게 기꺼움이야.”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고 싶어.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건 어둠뿐이고, 어둠은 언젠가 결국 걷어내야 할 것이니까. 성장과 도약을 위해 잠시 품을 수 있지만 평생 껴안고 가면 결국 정신을 병들게 하고 삶의 일부마저 좀 먹는다고 생각해. 물론 시기 상 맞지 않아 긁어 부스럼처럼 상대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어둠에 타인의 손이 닿았다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 그러기를 바라고.”











 

<별첨>


 “현수라는 것은.......”


 “응?”


 “검은 손은, 곧 하얀 손일 수도 있구나.”


 “응? 아...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도령이 검은 손으로 했던 일이 전부 ‘견딤’의 의미만 있지는 않은 것 같아. 분명 도령의 손길에 ‘치유’를 받는 사람도 있을 거야. 도령은 잡고 버티라고 내민 손인데 그걸로 상처가 나았을 수도 있고. 도령의 행위가 마이너스에서 제로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전혀 다른 제로에서 플러스로 밀어 올렸을지도 모르니까. 당시 말로 들을 때는 몰랐는데, 방금 쭉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


 “그럼 하얀 손이기도 한 거잖아.”


 “그렇구나.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 못해봤어.”


 “그냥. 문득 떠올라서 말해봤어.”


 “...역시 그렇군.”


 “뭐가?”


 “그래서 내가 지금 백수인 거였군.”


 “...뭐래.”






 2015.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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