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웃어? 뭐 봤어?”
“아니, 사람들 있을 때는 말하기 좀 그래서.”
“왜?”
“내가 들어오기 전에 문득 깨달은 건데, 방금까지 여기 흡연실에 네댓 명쯤 있었잖아.”
“응.”
“근데 도령 빼고 다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거야. 다들 짠 것처럼.”
“둘이 같이 와서 수다 떠는 거 아니면 보통 그러잖아.”
“뭐, 둘이 와서도 각자 그러기도 하지. 아무튼 창문으로 그 모습 들여다보는데 왠지 웃긴 거야.”
“어떤 웃음 포인트인지는 알겠다. 엘리베이터 땡 하고 출발하면 다들 고개 숙이는 그런 장면 같았겠네.”
“맞아. 재밌더라고. 그 와중에 도령은 톡 하니 튀고.”
“나 혼자 멍 때리고 있으니까.”
“도령은 담배 피우러 갈 때 핸드폰 잘 안 들고 가더라.”
“이럴 때는 어지간하면.”
“왜?”
“‘필요 없어서’가 반이고, ‘필요 없으려고’가 나머지 반이야.”
“전자는 왜고, 후자는 뭐예요?”
“생각할 거리가 많으면 자연히 안 보게 되는 것 같아. 정확히는 들여다볼 시간도 없어. 이게 전자. 그리고 생각해보면, 사람은 의외로 하루 중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가 드물잖아. 무엇이 되었든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이건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와. 첫 번째는 무엇을 하는 것이 관성이 되어서 그 행위 자체가 습관으로 자리 잡는 거야. 그래서 무엇을 하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불안해져. 안절부절 하고 초조하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멍하니 있으면 멍청이 같고. 가만히 있기 어려워서 괜히 서성거려. 그래서 자꾸 뭐든지 조물딱거리게 돼. 빈손이면 바보가 되는 현상이야. 난 그게 싫거든. 나도 모르게 관성과 습관을 만들어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불안해서 안달복달하는 게 싫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상황이면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 시간을 즐기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대급부야. 하루에 계속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바쁜 주변 속도에 비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적다는 말이야.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순간에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생각만 할 수 있게. 이는 반대로 무엇을 하는 시간에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과 같아. 구역을 명확히 나누고 서로의 색을 분명히 해서 양쪽 모두 높은 집중력을 부여하는 거지.”
“그렇구나.”
“일단은 크게는 두 가지 이유로 휴대폰은 잘 안 들고 다녀. 물론 한 번 들여다보면 적당히 끊기가 어려워 기피하는 부분도 있어. 생각을 하다가 기록을 위해 잠시라도 쥐면, 목적이 끝나고 내려놓아도 자꾸 눈이 가. 그럼 내가 물건을 쓰는 게 아니라 물건에 끌려 다니는 것 같아서 좀 그렇더라.”
<별첨>
“그럼 정확히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구나. ‘아무거나 하는 것’을 방지하고 ‘생각하는 것’을 확보하면서 ‘스마트폰을 하게 되는 것’을 배제하는 거네.”
“맞아. 말끔한 한줄 정리네.”
“그 옛날에, 뭐였더라.......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을 본 것 같은데.”
“그래?”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사상문에서 이런 비슷한 걸 봤던 것 같아.”
“아마 맞을 거야. 그건 이것보다 좀 더 포괄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다룬 내용이지만.”
“도령을 보다 보면 수동적이나 피동적인 것을 혐오하는 것 같아.”
“경계하는 편이지. 넋 놓고 놔두면 내 인생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저당 잡히니까.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되도록 배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티비도 이것 때문이야?”
“응. 텔레비전을 보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봐. 다만 그런 거야. TV 앞에 앉는 것과, TV를 켜는 것, 이것은 내 선택이자 능동적인 행동으로 하는 거잖아. 근데 보는 것은 사실 능동이라기보다 피동에 가까워. 물론 보는 것도 능동적인 행동으로 하는 거지. 근데 ‘본다’라는 행위는, 최초의 시작점 같은 능동만 있다면 그 뒤는 더 이상의 능동이 없어도 관성으로 계속 할 수 있잖아. 달리 말하면 ‘그만 본다’라는 또 다른 능동이 있기 전까지는 그저 흘러갈 뿐인 피동인 거야. 그래서 내가 텔레비전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은 이런 거야. 틀어놓고 어영부영 하염없이 보는 거야. 졸리거나 나가야 하는 등의 다른 외부요건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그냥 계속 ‘보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거지. ‘난 이걸 볼 거야’라든가, ‘나 딱 이만큼만 볼 거야’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지. 그게 내가 텔레비전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이고, 가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것만 딱 보고 일어나려고 하는 거야.”
“스마트폰도 그렇고?”
“그렇지. 나는 다행히 SNS는 안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아.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그래서 붙잡고 있다가 부옇게 해가 뜨는 걸 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러니 나한테는 경계대상 1호지. 시간이 없어서 잠을 줄이는 놈한테 스마트폰은 천적이야. 시간 빨아먹는 괴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