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사기당한 것에 대해 - 3

by soiemoie

소장을 쓰는 작업은 처음이어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의 무언가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클리어 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온라인 소송을 걸기 위해 실지명의 확인용 전자서명 인증서를 신청하고 우체국에 가서 했고, 소장을 쓰기 위해 계속 검색하고 GPT의 도움을 받아 인생 첫 나 홀로 민사소송을 준비할 수 있었다.


법원에 갔을 때가 가장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겨 생각할 틈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반차를 쓰고 가면 넉넉할 줄 알았는데 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출력해 온 소장을 민원 담당분께서 검토해 주시더니 수정사항들이 꽤 있어서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민원실 안 쪽에 오래되어 보이는 컴퓨터가 2대 정도 있었는데 거기 가서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초조했던 마음인 건지 컴퓨터가 정말 오래 걸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인터넷도 안 되어서 소장 레이아웃을 다운로드할 수 없었고

소장을 보면서 한글 파일에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다. 유선마우스는 어찌나 잘 안 움직여지는지 따뜻한 민원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겨우 겨우 마무리한 소장은 민원 담당분께서 다시 확인해 주실 때도 오타가 하나 있긴 했다. 어찌저 수정해 주시면서 미션 클리어를 외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문제는 인지액과 송달료였다. 소가가 1천만 원 미만이면 소가 X50/10,000 해서 인지액이 나오고, 민사소액 사건의 경우 당사자수 X 1회 송달료 X 10회분으로 송달료가 나온다. 비용을 다 합쳐서 20만 원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계좌 이체가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온 탓에 현금이 없었다. 소장에는 영수증을 붙여서 전달해야 했기에 법원에 있는 은행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법원 안에는 유일하게 신한은행이 있었는데 보유하고 있던 신한카드로 ATM 긱에서 출금을 해보려고 하니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카드가 정지되어 있었다. 정지를 풀어보려 했는데 오프라인 점포를 방문해야 한다고 했고, 바로 옆에 있던 신한은행에서는 이미 일반 은행 업무는 종료가 되었고 인지대와 송달료 납부 업무만 가능하다고 했다.


당장 주변에 있는 은행들도 영업이 종료된 듯했다. 불현듯 예전에 카카오페이로 카드 없이 현금을 뽑은 기억이 났고 당장 법원에서 뛰쳐나와서 가장 가까이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ATM 기가 없었다. 단념하고 오피스텔 건물을 하나 삥 돌았더니 골목 끝자락 편의점 앞에 ATM기가 보였다. 그 ATM기에는 카카오 페이는 없었고 여러 중국은행들이 있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정말로 감사하게도 삼성증권이 보였다.

주식을 하는 게 이렇게 감사할 줄야

당장 삼성증권으로 현금을 보내고 바로 출금했다.


그리고 문 닫기 10분 전에 간신히 소장을 접수했다.

일주일 뒤 사실조회 신청서를 통해 피의자의 금융거래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피의자의 계좌도 어떤 피해자의 통장을 이용한 3자 사기였던 것이다. 이 사람도 수사관에 의해 몇 번이나 경찰서에 불려 가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피해자인 피해자를 고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묻어두고 나중에 송달료와 일부는 돌려받았다.




이 사건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업무 이송은 4번이나 이루어졌고 수사관은 10번이 바뀌었다.

여전히 피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특정할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메시지가 온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많은 사람들은 단톡방을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토스로 입금을 한 점이었다. 토스는 어떤 계좌로 입금을 하든 토스를 이용한 금융사고는 1회 5천만 원/중고사기는 1회 50만 원까지 보장해 주는 안심 보상제가 있었다. 이 제도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었는데 거래하면 안 되는 상품이거나 피해 발생 후 15일이 경과했거나 더치트와 연계가 되어 있는데 입금을 할 때 '사기 의심 사이렌' 알람이 떴음에도 송금을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 등이었다. 다행히 나는 조건이 부합하여 증거자료만 전달하면 토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토스 만세....


거의 한 달가량이 걸려 돈을 돌려받았는데 워낙 피해자가 많다 보니 오래 걸린다고 했다. 실제로 오늘 뉴스에서 보니 토스는 안심보상제 누적 54억 원 이상을 보상했고 이 중 중고거래 사기 금액이 28억 6천만 원이라고 했다. 피의자로부터 돈을 돌려받게 되면 토스에 다시 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나도 참 돌려주고 싶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에 더치트 채팅으로 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도 이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는데 신고는 했는지 물어보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더치트에 올렸냐고 물어봤는데 그 사람은 "네"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 닉네임을 가진 사람은 올린 글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뭐 사기당했냐고 올리신 게 없는 것 같다"라는 말에 그 사람은 아무 답변이 없었다. 아마 그놈이었겠지



사기치고 살기 참 좋은 세상이다.

피해자들은 처음엔 피의자를 욕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탓한다. 사기 친 사람이 잘못한 거지 사기를 당한 사람은 미숙했던 것일 뿐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범인을 특정해도 완전히 돌려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들은 피해자가 겪은 정신적, 금전적 손해보다도 덜 고통받는다. 나의 소송 금액은 소액이었지만 이 피해 금액이 컸다고 한다면 이 액수는 배로 부풀어 오른다.

아무래도 그걸 아는 놈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 소액이다 보니 법적 분쟁으로 안 가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사기를 쳐도 그만한 처벌이 아니어서 그냥 사기 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선하게 산 사람들이 이토록 고통받게 두는 것일까....




나의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 언젠가 꼭 범인이 잡히는 네 번째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당근에서 사기당한 것에 대해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