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는 34년의 인생을 살면서 딱 2번 가봤다.
한 번은 작년 겨울, 운전면허 갱신 때문에 가봤고 또 한 번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이때가 바로 인생 첫 경찰서이자 처음으로 경찰차를 타봤던 기억이다.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라 친구가 고데기와 화장품을 갖고 일찍 등교를 하다가 어떤 무서운 언니들한테 뺏겼다고 했다. 나는 선도부였던지라 교문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울면서 오고 있는 친구가 보였다. 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 조차 할 수 없지만 '의리!'의 마인드로 혼자 그들의 소굴에 들어갔다.
그곳은 학교 앞 상가 지하에 있는 오래전에 폐점한 피자집이었다. 불은 잘 들어오지 않아서 깜깜했고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바닥에는 오래 전부터 물에 젖은 것으로 추측되는 전단지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그 언니들에게 내 모든 돈을 뺏겼다 �
물론 안 맞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들 중 한 명은 내 얼굴이 많이 삭아서 혼자 다녀도 돈 뜯길 일은 없게 생겼다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살면서 그 날이 처음이나 마지막으로 뜯겨본거긴하다.
어쨌든 모든걸 다 아낌없이 드리고나서 바로 교무실로 가서 담당부장 선생님께 신고했고 3교시 정도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그렇게 학교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썼다.
경찰들에게 듣기로는 그 언니들은 갈 곳이 없어 피자집에서 살던 가출 청소년들이었고 뺏긴 물건들은 곧 돌려주실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뒤 그들이 뺏어간 돈은 돌려받았다.
그때는 세상이 이렇게 권선징악으로 굴러간다고 믿었다. 항상 착하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돌려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강남 경찰서의 전형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경찰서의 풍경 그대로였다. 내가 찾아간 수사팀도 점심시간이다보니 정적이 흐르는 조용한 사무실엔 경찰관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들어온걸 아는 눈치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중고거래 사기를 당했는데 여기로 오라고해서 왔는데요"
나의 말에 한참 정적이 흐른 뒤, 어떤 경찰이 동료에게 물었다.
"오늘 저희가 담당이에요? 왜 저희에요? 지금 X월이에요?"
그리고 무언가 날짜를 확인하더니 일어나서 나에게 저 쪽으로 가라고 했다. 알고보니 온라인 사기 사건은 담당 팀이 매 분기 별로 변동되는 듯 했다.
어쨌든 나를 부른 경찰은 컴퓨터를 켜더니 무슨 사이트에서 몇 번의 로그인 시도를 한다. 나는 따로 앉을 곳은 없어 쭈뼛 쭈뼛 서 있는데 마치 교무실로 불러와 혼나고 있는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오래간만에 받았다.
여러 번 로그인을 시도했는데 계속 실패했다. 아마 이 팀에서는 온라인 사기를 많이 담당하지 않아서 비밀번호가 만료된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내 표정이 똥마려운 강아지 같았나보다.
"급하세요?"
"네 점심시간에 온거여서요.."
"저희도 점심시간인데요?"
순간 내가 괜히 진상을 부리는 것 같아 아무 대답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다리를 털더니 담당 경찰은 이따 다시 오라고 했다.
넵하고 고개를 숙이고 나와서 걸어가는데 내 자신이 좀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기를 당해서 한심한건 물론이고 씹프피의 수장답게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나 피해자 맞는데 왜 내가 경찰 눈치를 보고 있고 쫄려서 제대로 말을 못해, 니가 엄마가 맞냐 여러 생각이 공존했다. 뭐 그분들은 전혀 나를 겁주려는 생각이 아니었을텐데 나의 개오바 세포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의 모든 업무는 마비가 되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단톡방에 다시 들어가니 5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 관할구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이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로 다양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동일한 시간대에 이루어졌기에 한 사람이 아닌 조직적인 범죄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과 나는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당근마켓이나 트위터에서 용의자로 추측되는 글이 발견되면 서로 공유하면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글을 신고하거나 인용을 남겼다.
글을 쓰는 수법은 정말 똑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기치지 않을 것 같은 품목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유아용품이 제일 많았던게 정말 괘씸하다. 그리고 어떻게 사기를 쳤는지 감도 안 잡히지만 부동산 중개인인 척 사기를 쳐서 가계약금을 받아냈다는 점이다.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했다는 점이 참 용서가 안 됐다.
어머니도 걱정이 되셨는지 스스로 여러 가지를 알아보신 듯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전달받은 주소지를 직접 찾아가셨고 그 집에는 어떤 할머니와 어린 아이가 살고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오늘만해도 3명의 사람들이 중고거래 때문에 왔다 갔었다고 한다. 아마 다들 사기 피해자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할머니께 사정을 잘 설명드리고 혹시 몰라서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고 했다.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참
신고가 워낙 많이 들어오다보니 경찰서에서도 해당 사건을 다중 피해 사건으로 분류하였다. 내가 사건을 청구한 경찰서에서 경기도에 있는 다른 경찰서로 해당 사건이 넘어갔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 계좌 주인이 있던 대구로도 넘어가고 또 사이버 수사대로도 이관하면서 서류만 이리저리 옮겨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분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단톡방에 있던 다른 피해자들보다 나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 경찰서에 연락을 하면 '아직 사건이 이송 중이라 담당자를 알 수 없다'라는 말만 들어왔다. 내 케이스는 우편으로 이송되고 있어 아직 전달되지 못했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의 번호도 알 수가 없어서, 해당 경찰서에 전화하면 담당 팀으로 연결해 준다고 하고 거기에서 또 담당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알려준다했다가 어느 팀으로 전화해보라 한다. 그 팀으로 또 전화하면 기다리라고 다시 연락준다하고. 정말 연락의 연락의 연락의 하루를 보냈다.
결국 혼자라도 해보자 하면서 반차를 내고 민사소송을 접수하기로 했다.
이름과 계좌번호, 핸드폰 번호를 아니까 일단 소송이라도 먼저 걸자. 피해보상에 대한 이자를 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