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에서 사기당한 것에 대해 - 1

by soiemoie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이 원가로 사주지 않으셨던 DSLR이 너무 갖고 싶어 중고나라를 뒤졌던 적이 있다. 30만 원 정도의 한도를 생각하고 적당한 초보 카메라를 찾고, 혹시 택배 사기를 당할까 싶어 서울에서 원주까지 친구 기차비를 내주고 중고 DSLR을 샀었다. 그 이후로는 비교적 안전할 것 같은 전공 서적이나 무조건 직거래를 하는 방식의 물건 위주로 중고 거래를 했다.



그렇게 나름 조심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당근마켓이 나오면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커져버렸다.


특히 유아용품의 경우, 아이가 금방 자라나다 보니 다양한 품목의 중고 상품들이 많았다. 아이가 모든 물품을 입으로 빨지 않을 시기부터는 당근마켓을 종종 이용했다. 그중에서도 전집은 책을 오프라인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당근마켓, 중고서적을 이용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훨씬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당근마켓에 익숙해졌을 때 나는 대면하지 않고, 현관 앞에 물건을 두면 입금하는 방식, 이른바 '문고리 거래'의 방식으로 주로 거래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마저도 실물 상품을 확인하고 입금을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에 취해 신뢰도가 극도로 치달았을 때, 안일해져 있었다.




원하던 전집세트를 키워드 알림으로 설정해 두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일단 다 품절이었다 보니 본가에 갔을 때도 알림 설정을 하면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저렴하게 찾기 위해 지역도 넓혀갔다. 알림이 몇 번 뜰 때마다 연락을 시도했지만 늘 누군가 나보다 먼저 연락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꼭 다음번엔 "제가 1만 원 더 드릴게요"라고 말해야지 다짐하면서 다음 알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10시에 알림이 울렸다.

운명처럼..



그 시간에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었는데 어머니께 캡처 화면을 보내며 대리 구매를 요청했다. 이전에도 몇 번 나를 대신해 중고 물품을 사다 주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부탁이었다.


문제는 거기 상품 설명에 적힌 문장이었다. 지금은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인기가 많아서 먼저 입금해 주시는 분께 판매합니다'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이 말에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 회의에 지친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기다린 상품이었기에 혹했던 걸까.

다시 생각해 보면 선입금을 요청했으나 택배거래가 아닌 직거래였다는 점, 집 주소가 구체적으로 올라와 있었고, 판매자의 온도가 나보다 높은 45도에 가까웠다는 점과 좋은 리뷰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더 굳센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믿음은 나의 신속한 행위를 만들어냈다.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곧바로 입금하고 어머니에게 확인 메시지를 보냈다. 판매자는 입금 확인 후 "다른 물건도 보실래요?"라고 물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대충 회의 중에 곁눈질로 판매자의 상품 리스트를 훑어보았고 짐을 늘릴 생각이 들어 굳이 다른 전집들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회의 중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어쩐지, 그냥 무언가 이상했다.


물론 유아의 상품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빨리 처리하고 싶어서 살건 더 없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데 무언가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거치대에 올리기도 전에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그 판매자의 이름을 검색해서 들어갔다.





이용 정지 중인 계정이라는 게 보인다..

그렇다 사기였다.......




처음엔 살짝 멍했다.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배신감이 밀려오고 손이 떨렸다.

너 이 놈 시끼 잘 걸렸다 법원도 간다. 나는 끝까지 간다. 나는 시민덕희다.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내 내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하등한 인간. 내가 무언가에 홀렸나?라는 생각도 들고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했고

그리고 어머니에게 제일 미안했다. 이런 모자란 엄마라는 점도 아이에게 미안했고...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멈추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곧장 당근마켓에 신고하고 바로 더치트 앱도 깔았다. 또 토스로 들어가 입금했던 계좌를 다시 입력해 보니 아까 입금할 땐 없었던 '사기 계좌' 경고 알림이 뜬다. 더치트에도 검색해 보니 이미 4건 정도의 신고가 접수되어 있었다. 아마 내가 사기당할 때 다른 상품도 친 것 같았다. 품목도 다양했다.

전집 뿐만 아니라 골드바 100g, 핸드폰, 티켓 심지어 월세 가계약금도 있었다. 이 다양한 상품들은 당근마켓, 트위터, 일부 커뮤니티 등을 가리지 않고 범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치트에 들어가 당장 내 사기 후기도 쓰고 피해자 단톡방도 들어갔다. 내가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단톡방에는 이제 막 두 자릿 수의 사람들이 들어와 서로의 사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나도 더 늦기 전에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다. 우선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에 들어가서 온라인 민원서류를 작성하고 점심도 거른 채 곧장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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