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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Sep 04. 2023

9월을 시작하며

[오늘한편] 기록하는 이유

1.

8월 한 달간 글을 한편도 쓰지 않았다.


2019년부터는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한 달에 한편은 쓰려고 했는데 그게 깨진 건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이랬던 적이 없는데 피곤했던 건지.


피곤했다는 건 핑계가 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글을 썼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뿐이다. 굳이 기록할 만한 일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일들은 많았지만, 오히려 그 압박감에 질려 도망 쳐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기억 속에 잘 묻어두고 언젠가 꺼내어보고 싶을 때 비로소 글로 쓰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먹었는지도.


2.

물론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기록까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출근을 하고, 운동을 했다는 아주 담백한 사실밖에 쓰지 않지만 아무튼 매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일기를 미처 못쓰는 때도 있고, 귀찮아서 쓰지 않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방학 숙제를 몰아서 하던 것처럼 그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몰아서 쓴다. 역시나 내용은 간단하다. 일을 했고, 운동을 했을 테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삶이 너무 단순해져서 글을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의 삶이라 생각한다. 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 그러나 인간은 기어코 쓰고야 만다. 삶은 언제나 결핍과 좌절을 낳기 마련이므로.


3.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완벽한 만족이란 결코 마주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내 삶이 그렇게까지 단순하냐면 마냥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일은 일 나름대로의 복잡함과 어려움이 있고, 운동도 그날 그날의 깨달음과 배움, 그리고 고통이 있다. 일과 운동 이외에도 나의 삶을 채우는 것들이 또 있지 않겠는가.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그래, 책도 읽고 영상도 본다. 이 모든 것들을 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글로 써야겠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필요라기 보다는 욕망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이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을 남겨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그 절박함이 사라졌다. 그냥, 아, 잘 읽었다. 자기 만족으로 끝난다. 애써 글을 써봐야 누가 읽을까. 적당히 내 머릿속에서 정리만 되면 그뿐인 것을.


그래도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 싶었던 건 침착맨의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4.

https://www.youtube.com/watch?v=2WLKHX-LS3I

평소에도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은 자주 챙겨 보는 편이다.


가끔 이 아저씨가 헛소리를 하는 것 같다 싶으면서도 그야말로 인생의 핵심을 관통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침착맨의 헛소리는 단순한 헛소리가 아니다. 그야말로 헛소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랄까.


특히 지난주 토요일, 9월 2일에 올라온 영상을 오늘에서야 보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이 양반, 정말 난 사람이군.



출처 - 침착맨 유튜브 중 "더욱더 짙어지는 옥냥이와의 술자리" 중

침착맨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에 대해서 아마 다른 영상에서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말하는듯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없이 정리해서 말하는데, 평상시보다 그 울림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이 순간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놓지 않으면 사라지고야 만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가닿은 두려움이.


침착맨의 그것과 내가 생각하는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은 조금은 성질이 다를 수도 있다. 아무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덧없이 사라지고야 마는 한 줌의 생명.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나 소년만화를 좋아하고, 창작자들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바꾸고 마침내는 세상까지 변화시키는데다가, 창작자들은 세상에 무언가 남기니까.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넓은 의미의 창작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엄밀하게 말해서 돈을 받고 세상에 무언가 남긴 사람들을 창작자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셈이다.


출처 - 침착맨 유튜브 중 "더욱더 짙어지는 옥냥이와의 술자리" 중

그래서 일기를 쓰고, 또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이라도,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두고 싶어서. 비록 내가 죽으면 사라지고 말겠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어서.


그래서 가끔 예전에 쓴 일기를 보면 별것 없는 문장이라도, 나중에 보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굳이 시간을 내서 일을 했다. 운동을 했다. 그 한 문장을 적는 게 아닐지.


5.

한 문장보다는 한 문단이, 그리고 한 문단보다야 한 편의 글이 기억의 농도가 더 짙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존재의 밀도를 일기장에 고스란히 옮겨놓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기장이 아니더라도, 블로그의 게시글이라든지, 영상이라든지.


옛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의 일부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는데 그럴만도 하다. 순간을 붙잡아둔다는 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내 존재의 일부라도 그곳에 남겨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나도 오늘, 나의 영혼의 일부를 담아 이 글을 쓴다. 뭐, 좀 빠져나가면 어떤가 싶으면서도. 그래, 이게 볼드모트의 호크룩스 같은 것이군 하고 생각해본다. 영생이니 불멸이니 하는 것은 믿지 않지만, 내가 오늘 하루, 이 순간을 살았다는 사실을 이 글로써 증명할 수 있다면 내 일부가 이곳에 담기더라도 그리 손해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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