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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Jan 30. 2024

5년 만의 치앙마이와 단상

걷기와 사색하기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걷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구태여 무언가를 탈 수 있는 환경에서 걷기를 자청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짐을 옮기는 일을 제외하고 최대한 걸어보기로 했다.

따로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매연 때문에 콧구멍으로 포카리가 들어오는 듯한 공기도 아니지만 -이보다 코딱지가 까매지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도 두 발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눈을 뜨니 꽤나 아침시간으로 스스로 정의하는 7시였다.

졸리기도 했지만 1분 만을 외치며 무언가를 미루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부스스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기까진 한참이 걸리긴 했지만, 누워있기보다는 건강히 먹고 올드시티 구석구석을 밝을 때 걸어보고 싶었다. 어디에 가야겠다는 목적지 없이 하염없이 걷다가 좋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어떠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보다 평일 낮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형태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뭘보냐옹

지난날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인적이 드물어도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는 저 무우밭에 내가 묻힌다면..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경계심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아마 한 달 살기를 통해 무해한 곳임을 알아서가 아닐까.


올드시티라고 불리는 곳을 위해 느적 느적 걸었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동네백수임에 틀림없다. 버려도 무관해 보이는 흐느적거리는 티셔츠와 펄럭이는 바지와 나이키 슈즈.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글맵도 보지 않고 무작정 걷는 스스로가 한량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선선한 날씨에도 한낮은 꽤나 더워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왜 걸어간다고 했을까-하는 후회는 들지 않았다. 목적지와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보이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보았다. 친구한테 보내주니, 쟤네들은 한 번도 일 해본 적이 없겠지 하며 화를 내는 게 웃기면서도 안타까웠다. 이곳의 아이들은 불행해 보이지도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유롭고 유유자적해 보일 뿐. 


#1. 걷기와 생각들 


치앙마이의 지도를 멀리서 보게 되면 네모지어진 부분 안, 올드시티가 보인다. 

한 달을 살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갑작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이 역시도 계획도시 혹은 그 시절 신도시였던 것일까.. 

알고 보니 도시를 보호하는 해자(성벽 주변에 인공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시설)라고 한다.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스스로와의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생각도 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질문들 혹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마치 해자에 대한 나의 궁금증처럼.


여행에 대한 정의는 각기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미리 알아본 후 '아는 만큼 보인다'일 수 있고, 누군가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일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에 가까운 듯하다. 

알아야 하기에 아는 것들이 아닌, 알고 싶어서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 지 새삼 느낀다.  


#2. 두 발을 땅에 딛는 감각

립스틱 묻은 신발을 신고 뚜벅뚜벅 걸었다. 


안타까운 일은 발의 아치가 온전치 못하여 한쪽 발에 벌써부터 물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새삼 문제가 되지 않던 내 자세에 대한 여러 지나간 선생님들의 코멘트가 떠올라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걸어본다. 10분도 되지 않아 결국 편한 자세를 찾아간 덕에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은 비명을 질렀지만 계속 걷고 또 걸었다. 


발의 통증과 함께 일상에서 무뎌진 걷기라는 행위와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고 나아가는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얼마나 편해지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인가. 물론 매일매일 이런 일들을 새로이 느끼면 제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고 익숙해진 일상 속의 당연하지만 소중한 일들을 걸으며 다시 배운다.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밀어내며 걷는 일, 있는 지도 몰랐던 엉덩이 근육과 배를 단단히 조이는 모든 일들이 새삼 처음 배운 것처럼 놀라운 감정이 든다. 


#3. 타인의 삶에 대하여

한참을 걷다 보면 한국에 두고 온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연료가 떨어지기 나름이다. 

그러다 보면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혼자만의 여행, 그리고 철저한 타자로서의 시각을 가지게 되면 발과 함께 머릿속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무용한 것들이다. 


내가 만약 이곳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까. 

하얀 머리핀을 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을까, 시장에서 귀찮은 듯이 파리를 쫓고 있는 상인이었을까.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의 정신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는 것들. 

때로는 희극이기도 때로는 비극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또 하나의 인생이라는 결론에 도착한다. 


다른 생각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다.

관광객이든 혹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든 그들의 표정을 보고 혼자만의 상상을 해본다. 

인상을 찌푸린 저 소녀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학교에 가기 싫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중일까, 혹은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잘 되지 않아서일까. 그런데 표정의 깊이가 은은하지 않을 것을 보니, 뭔가 지독하게 싫은 게 분명하다. 

혹은 그냥 햇볕에 눈이 부신 걸지도. 


그리고 누군가는 은은한 미소와 두 손을 곱게 모아 인사한다. 모르는 이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맛있는 점심을 먹을 생각인 것일까 어떤 신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작은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모든 태국인들이 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누군가를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마무리한다. 


#4. 뜻밖의 풍경들 

이곳에 대해 큰 공부 없이 한 달을 살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떠한 탐방 없이, 그저 지난 시간에서 비롯된 자신감 하나로 도착한 곳이다. 아주 유명한 곳들은 어쩌다 구글맵에 표시가 되곤 하는데 그 마저도 크게 보러 가야겠다는 뜻이 없어 그냥 골목골목을 걸었다. 


걷다 보면 아주 신기하게도 희미하게 기억 저 너머에 남아있던 풍경들을 마주할 때도, 아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도 있다. 어떤 곳은 사진까지 찍었던 곳이어서 마치 오랜 시간 연락하고 있던 동창을 우연히 만난 기분이었다. 긴가민가하면서 흘낏거리다 결국은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5. 새똥

요가 끝나고 40분 거리의 길을 기어코 걸어온 참이었다.

배짱 두둑한 여행자도 혼자라면 무서울 골목골목도 의연하게 잘 걸어왔는데, 밤인데도 엄청나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리는 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등골이 오싹했다. 저 정도의 소리라면 족히 30마리는 될 것이고, 그중 누군가는 배변의 욕구를 참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더욱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새하얀 바닥. 


그 어느 여행지에서도 뛰어본 적 없지만, 이번에는 심각하게 뛰지 않으면 머리에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새똥을 맞으리라는 강렬한 두려움이 생겼다. 며칠 전 세차를 한 날 새똥을 맞은 친구의 차와 등굣길 어깨에 새똥을 맞았던 오빠의 미간을 떠올리며 걷기보다는 뛰었다. 누가 보면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 

슬로우 시티 치앙마이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속도였다. 


다행히 새똥을 맞지 않았고, 그간 새똥을 맞지 않았던 경험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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