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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8. 2023

나는 발견가이고 싶다

내 친구 삐삐 불라불라 롱스타킹을 소개합니다

삐삐는 발견가다.

길에 굴러다니는 모든 걸 보물처럼 여기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행복 수집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쓰레기일지 모르는 아니 눈에 띄지조차 않는 무가치한 것들이 삐삐에게는 엄청난 발견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가치있는 물건이 된다.


삐삐 롱스타킹의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다.

세상은 재미로 가득차 있고,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삐삐는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열정가다. 삐삐에게는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이상하다. 그래서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삐삐 불라불라 롱스타킹을 보고-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일상을 책으로 읽고-있으면 웃음이 난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거부하는 삐삐. 거부라기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산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누구나 하니까 누구나 먹으니까 누구나 그렇게 사니까 따라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신나고 재밌는 걸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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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삐삐에게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고 힘이 세고 겁이 없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다. 같은 조건이 주어진다면 나도 삐삐처럼 살 수 있을까? 아마 가진 재산을 움켜쥐느라 쓰지 못하고 힘이 센 걸 어디서 써먹어야될지도 모른채 있는 듯 없는 듯 살지 않을까?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는 무시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건 조건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니까! 마음이 향하는 곳에 내가 가 있다. 물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공간 말이다.


삐삐를 보고 있으면 어른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앞에 가면 1학년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보통은 엄마)를 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엄마는 직진만 하는 반면 아이는 주위의 신기한 것들을 보고 만지느라 자주 발걸음을 멈춘다. 엄마는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아이는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느라 바쁘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길 위엔 어제는 없던 고양이가 있고 지렁이가 있고 들꽃이 피어있기 때문에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로 가득한 것이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어른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이에겐 보인다. 아이는 신기하고 재밌어할 것들이 어른에겐 사소하고 지루하고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 된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에겐 보이고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는 것은 멍청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이 아니다. 그건 관심이며 여유이며 사랑이다. 그걸 찾고 볼 시간에 차라리 유익한 일을 찾으려는 어른들이 과연 그 유익함으로 더 행복해진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유익함으로 빵을 하나 더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만을 쫓는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발견가이고 싶다.

위에서 말한 어른처럼 살고싶지 않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 곱게 컸다, 세상의 쓴맛을 모른다 할지 몰라도 메마른 어른으로 사는 것보다 생기있는 아이로 사는 것이 더 낫겠다. 내가 사는 세상은 발견가의 천국이며 호기심 유발자 천지이며 누구의 참견에도 아랑곳 없는 나만의 유토피아로 남겨 놓으련다. 현실과 이상, 이딴 비교를 한다해도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면 그까짓거 뭐 대충 무시하고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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