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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Nov 04. 2023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쿵푸 팬더>의 뚱보 팬더 ‘포’는 태생이 의심되는 거위의 아들로 동네 만두집 후계자에서 우연찮게 세상을 구하는 ‘용의 전사’가 된다. 용의 전사로 추앙받으며 악의 무리에 대적할 제자를 양성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포는 능력의 한계를 체험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팬더인지 거위인지, 과연 용의 전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때마침 친아빠 팬더가 나타나고 포는 자신과 똑 닮은 팬더들의 고향으로 가게 된다. 팬더 마을에서 어떤 걸 먹고 어떤 걸 잘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때 진짜 팬더다운지를 깨닫게 된 포는 남들이 원하는 용의 전사가 아닌 뚱보 팬더 포로서 세상을 구하게 된다.  


나는 누구일까?

미혼인데 애인도 없고, 퇴사만 생각하는 회사원이며, 한국에 사는 노처녀? 독서와 클래식, 여행을 좋아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조용한 사람? 의지박약에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무능력자? 이런 걸로 나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면에 감춰져 나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내가 진짜가 아닐까?


드라마를 쓸 때 인물의 겉과 속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상반되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에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비친다. 단지 겉과 속이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신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 불쑥 나타날 때 인물은 당황하고 그건 진짜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본인이 알고 있었던 ‘나’와 다른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건 속에서 반복되는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는 걸 겪다 보면 인물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부터 ‘다른 나’도 나라고 믿었던 ‘기존의 나‘ 속에 흡수되고 ’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 이건 단지 드라마 속 인물만의 얘기가 아니다. ’ 진짜‘가 어떤 모습이든 그건 잘 보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로 드러나는 진짜를 목격하게 되면 그때부터 나는 혼란에 빠지고 진짜를 거부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한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나는 그에게 매달리기보다는 단칼에 자르는 쪽을 택했다.

그건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헤어지자고 하면 그를 얼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는 게 나라고 생각했었다. 만나는 동안 한 번도 싸운 적 없고 헤어지자고 말하기 전날까지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그가 엄마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겠다고 말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처음부터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하고 결혼 날짜도 잡았지만 언제든, 어떤 이유를 대서든 결혼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그의 엄마는 그와 더 잘 어울리는 여자가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사람이니까. 그걸 은연중에 내게 표현했었으니까. 아빠 없이 자란 그가 엄마의 말을 거역한 건 나를 만났을 때뿐이니까.’ 그래서였을까? 그만 만나자는 그에게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러자고 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후회할 일 없게 상대방에게 충실했던 나다. 그가 서운해할 말은 아끼고 그가 만나자고 하면 내 할 일을 포기하고라도 만났다. 바보처럼 져주고 바보처럼 주기만 하는 사랑을 했다. 그렇게 모질지 못했던 내가 일생일대의 엄청난 사건 앞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를 포기한 건 놀라운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파혼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혼란스러움 때문에 더 견디기 힘들었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비울 수 있는 사람이다.

열여덟 첫사랑 이후로 20년 동안 여러 번의 사랑을 하면서도 몰랐던 사실이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고 싸운 적도 있지만 옆자리가 비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채워져 있는 게 익숙했고 당연했다. 비울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 남자가 된 그 사람과 헤어지면서 비워짐을 처음으로 경험했고 지금은 비워짐에 익숙해졌다.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이는 현실이 아니라 비워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아니, 오히려 채울 수 있어서 더 충만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 이상 누군가를 만나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단해졌다고, 지금의 나에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살아간다. 다가오는 사람까지 마다하고 말이다.


진짜 나는 누굴까?

약해 빠진 과거의 나, 단단하다고 믿고 있는 지금의 나, 어떤 진짜를 보여줄지 알 수 없는 미래의 나. 팬더 포처럼 세상을 구할 일은 없겠지만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건 포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계속 목마르고 계속 배고프다. 죽을 때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나만의 진짜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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