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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14)

엄마의 엄마

by 메멘토 모리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를 뵈러 갈 때 늘 빨리 걸었어요. 그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 것을 초등학생인 나는 따라잡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왜 그리 빨리 걸으셨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지난 설 명절 안면도에서 부모님이 계신 강릉으로 먼 길을 재촉했다. 5시간 정도 소요되는 350km의 먼 거리다. 몸져누우신 엄마가 보고 싶고, 형제들이 죄다 타지에 있어 명절 준비를 아빠가 하셨기에 뭐라도 도와야 했다.

휴게소에 한번 쉬고 5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한 부모님 집은 늘 아늑하다. 누워계시면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시는 엄마를 뵈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엄마는 그런 사람 같다. 늘 거기서 나를 기다려 주는 유일한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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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홀로 계신 엄마의 엄마를 뵈러 가는 마음도 내가 안면도에서 강릉으로 엄마를 뵈러 가는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외할머니는 엄마가 시집온 지 3년 만에 홀로 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무 위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 외삼촌과 이모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출가를 하여 외할머니는 30년을 홀로 사셨다.

우리 집에서 8km 떨어진 외가는 감나무가 많았고, 집 앞에 작은 하천이 흐르는 소담스러운 곳이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외로움이 감처럼 주렁주렁 달려있고,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물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엄마의 손에 끌려 달려가다시피 도착한 외가는 홀로 계신 외할머니가 늘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 주셨다.

지금도 부엌에서 혼자 식사를 하셨던 외할머니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70~80년대 그 당시 농촌의 부엌이면 지금의 부엌과는 많이 달랐다. 식사를 하기에 불편했다.

엄마가 외가에 가시는 날은 안방에 밥상을 차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셨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나 이렇게 세 명이 식사할 때 외할머니는 웃으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만나러 갈 때 그렇게 성큼성큼 걸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외로운 것을 알고 계셨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지독한 지도 아셨다. 외로움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재촉하고 움직이는지 나도 경험해 보아서 안다.

석양이 질 때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때부터 엄마의 마음은 엄마의 엄마 마음과 닿아 있다. 두 분 모두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외할머니는 신작로 앞까지 배웅을 나오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또 성큼성큼 걸으신다. 이따금씩 뒤돌아 엄마의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외할머니가 흐릿하여 보이지 않을 때, 두 분에게 외로움이 가장 진하게 드리우는 시간이다. 시내버스에 오르며 엄마의 긴 한숨을 본다. 엄마는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보이지도 않는 엄마의 엄마에게 손을 흔든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다. 나는 그것을 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뵈러 가는 날 늘 노래를 부르셨다. 두 분이 식사하며 나누는 정겨운 대화는 그림 같고 영화 같았다.

외삼촌이 외할머니를 서울로 모셔갈 때까지 30년 동안 엄마는 늘 엄마의 엄마를 돌보셨다. 아니, 엄마의 엄마가 엄마를 돌본 지도 모른다. 그 지독한 외로움을 두 분이 나누어야 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엄마 집에 가면 나의 막냇동생과 외할머니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외할머니를 닮아 간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30년을 두 분이서 외로움을 달래고 나누었기에 더 그런 것은 아닐까?

내가 태안 안면도에서 강릉까지 엄마를 뵈러 달려간 350km의 거리와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그리며 달려간 8km의 거리는 그리움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나는 거리가 아니다. 엄마가 외할머니의 외로움을 같이 느끼셨기에 두 분 마음의 거리는 아마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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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외할머니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시내버스에서 보이지도 않는 엄마의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던 나의 엄마를 회상한다. 그 지독한 외로움도 같이...


엄마는 엄마의 엄마로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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