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re you? I'm Cinderella
흔히, 남자 잘 만나 시집 잘 가 팔자 핀 여자를 우리는 신데렐라라고 한다. 그러면서 부러움의 대상으로 그리고 시기의 대상으로 간혹은 비판의 대상으로 이야깃거리가 된다.
어릴 적 디즈니를 통해 본 신데렐라는 그냥 못된 계모의 핍박에도 착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살던 여자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시집가는 동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히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고, 그저 동화 속 이야기였다. 그 와중 항상 동화 속 주인공은 예쁨. 이건 동서 막론하고 전 세계가 마찬가지인 듯)
지금도 나는 신데렐라보다는 최근 나온 알라딘 속 쟈스민 공주(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며 당당하고 진취적, 현명한 쟈스민 술탄은 모든 여자의 로망 아닐까?)의 삶을 꿈꾸지 신데렐라의 삶을 꾸진 않는다. 그리고 알라딘을 볼 땐 도둑질이나 하던 알라딘이 여자 잘 만나 팔자 핀 건 왜 거론되지 않을까 싶었을 뿐.
암튼, 상대 잘 만나 팔자 핀 사람들을 이야기하고자 신데렐라 영화의 리뷰를 작성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신데렐라는 의외로 강심장이며 대범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신데렐라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도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주변을 사랑하며 건강하게 자란, 누구에게나 웃어줄 줄 아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어머니와 두 새 언니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변화를 회피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된 계모와 언니들의 핍박에도 씩씩하게 견뎌낸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엘라
신데렐라 이름은 원래 신데렐라였을까?
어릴 적 신데렐라 이름은 '엘라'였다. 매일 어떻게 엘라를 괴롭힐지 궁리만 하는 듯 훌륭하게 그 업무를 수행하던 계모와 언니들은 작명 센스 또한 훌륭했다. 바로 엘라의 얼굴에 묻는 재를 보곤 바로 재투성이라는 뜻으로 엘라를 '신데렐라'라 부르기 시작했으니
이름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이름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 내게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의미를 갖게 된다는 시처럼, 이름은 누군가를 정의하고 힘을 준다.
한 순가에 사랑스러운 엘라에서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된 엘라 역시 부엌에서 눈물을 삼킨다. 마치 정말 자신이 재투성이의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된 느낌이다. 더욱이 그 이후 세 모녀는 엘라를 항상 신데렐라로 부른다. 아마 들을 때마다 점점 더 신데렐라의 속은 무너졌을지 모른다.
당신 탓도 아니죠
답답함에 뛰쳐나간 숲에서 신데렐라는 왕자의 첫 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둘은 영화처럼 첫눈에 빠진다. 왕자는 매력적이면서도 자신의 할 말을 다하는 신데렐라에게, 그리고 신데렐라는 매력적이고 자신에게 위로를 준 왕자에게
신데렐라의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건넨 '당신 탓도 아니죠'라는 왕자의 말은 신데렐라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해 줬을까?
갑자기 전 포스팅 영화 '굿 윌 헌팅'이 생각났다. "It's not your fault" 윌의 단단한 벽을 무너뜨린 한 마디. 자신의 탓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탓하고 무너진 자존감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을 엘라에게 왕자의 말은 커다란 파동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다 그런 거라 해서 옳은 건 아니다
"왕자는 공주와 결혼해야 해."
왕자와 공주로 태어난 존재는 어쩌면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살지 모른다. 실제로 나도 부럽다.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마냥 그렇지만도 않나 보다. 마치 거래를 하듯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혼마저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왕자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지만, 포기도 해야 했던 왕자에게 신데렐라는 '다 그런 거라 해서 옳은 건 아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물론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 말은 왕자에게 큰 힘이 되었나 보다.
우리도 평소 이런 상황에 많이 놓인다. 안 해도 되지만, 암묵적으로 해야 하는... 맞다. 다 그런 거라 해서 옳은 건 아니다. 그 쉬운 걸 우리는 잊고 산다. 그리고 강요된다.
암튼, 첫 만남에 서로에게 푹 빠진 청춘남녀는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찾는다.
왕자는 결혼 상대를 고를 무도회를 열고, 엘라는 성의 견습생으로 알고 있는 키트(왕자)를 만나기 위해 무도회에 참석하기로 한다.
물론, 쉽게 함께하자고 할리 없는 세 모녀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할 뻔 하지만 친숙한 '비비디 바비디 부~'의 주문으로 마치 공주처럼 변신한 엘라.
따뜻한 마음과 용기
신데렐라에게는 주문 같은 것이 있다. 바로 따뜻한 마음과 용기. 어릴 적부터 엄마가 마치 유언처럼 남겼던 '따뜻한 마음과 용기'는 항상 신데렐라에게는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극적으로 나타난 요정 대모에게 신데렐라는 밤 12시까지의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저도 충분히 감사하며 자신에게 나타난 행운을 그대로 받는다.
이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난 행운을 덥석 받을 수 있을까? 사실 이 미친 상황은 뭐지? 하고 의심 속에서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신데렐라는 그 마저도 용기로 마주한다.
기회를 놓지 않는다는 것.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
우리 두 직진 남녀는 무도회에서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직진한다. 절대 빼는 일도 숨지도 않는다.
자신이 찾던 남자가 '견습생'이 아닌 '왕자'임을 알았을 때도 신데렐라는 놀랐을 뿐 도망치지 않고 둘 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담력도 있다. 어쩌면 요정 대모의 마법으로 인한 용기 일 수도 있다. 12시의 종이 울리자마자 도망쳐 나왔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놓고 간 유리구두를 갖고 자신을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신데렐라는 현실을 마주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감동받았고, 제일 설레었던 장면.
있는 그대를 보여주는 것,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
자신을 찾아온 왕자에게 가는 중. 신데렐라는 벽에 걸린 거울과 마주한다. 무도회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아닌 낡은 옷차림에 흐트러진 머리, 지친 얼굴 속 여자는 숨길 수 없는 자신.
어쩌면 자신을 미스터리 한 공주님으로 알고 있을 왕자에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자신이었고, 그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라 믿었을 테니.
그리고 왕자는 묻는다. "who are you?"
숲 속의 시골 처녀가 아닌 무도회에서 본 아름다운 공주가 아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누구냐고
신데렐라는 답한다. "I'm Cinderella" 자신은 공주도 아니고 그저 신데렐레라고. 그러면서 말한다. 자신이 비록 시골 처녀이며 공주가 아님에도 받아줄 수 있다면 결혼해달라고.
그래서 난 신데렐라가 다르게 보였다. 단순히 능력만으로 오르기 힘든 신분제의 사회에서 한 순간에 왕자비로 신분 급상승한 신데렐라가 단순히 남자 잘 만나 팔자 핀 여자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용기 있으며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물론 부럽기도 했다. 저렇게 주변을 보지 않고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건 부러운 일이니까.
영화를 다시 보고 난 후,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나한테 오는 큰 행운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리고 내 본래의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