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혜 May 10. 2020

#1. 발레 슈즈, 어른의 취미.

어릴 적 나의 꿈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연히 본 발레의 첫 느낌은 예쁘다 였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몸짓 하나, 고운 선 다 예뻤으나 무엇보다 무대에서 반짝이는 발레리나들의 옷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다고 발레리나가 되고 싶던 건 아니었다. 그저 예쁜 발레복을 입고, 발레 슈즈를 신고 나도 한 번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겐 '발레를 배우고 싶다' 그 말이 참 어려웠다. 집 안 형편을 아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발레를 취미로 하고 싶다 말하기에는 난 애어른이었고, 발레복이 예뻐서, 발레 슈즈가 신고 싶어서 하고 싶다 말하기에는 소심했다.


 그 후, 접하게 된 만화책 속 발레리나의 이야기, 지나가듯 보게 되는 발레 공연 포스트, 그리고 발레 음악이 들릴 때마다 한 번쯤은 나도... 하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으나 누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유연하지도 않은데, 내가 춤을 어떻게 춰, 나랑 안 어울릴 거야, 공부해야지, 좋은 직업을 갖고 성공해야지'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외면해오던 나의 어릴 적, 어쩌면 하나의 로망이자 꿈이었던 발레복을 입고 발레 슈즈를 신은 건 마지막 이십 대 어느 여름이었다.



 그저 열심히만 살던 중 회의감이 들어 주위를 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나도 취미를 갖고 싶어 졌다. 취미 생활마저 열심히 찾고 찾던 중, 발레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사회생활 n년차. 티끌 모아 티끌이라지만(어느 순간엔 그래도 티끌은 벗어나겠지...) 발레를 배울 티끌은 되었다. 사회 물을 먹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게 되며 소심함은 벗어났다지만,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레 학원을 들어갔을 때 첫 느낌은 '작다'였다.


 학원의 규모가 아니라 멀게만 느껴지던 그 공간, 그리고 뭔가 커 보이고 거창한 느낌의 발레가 아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첫 수업, 처음으로 갖게 된 내 발레 슈즈는 내가 무대에서 보던 발레리나의 '토슈즈'도 아니고 그저 연습용이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야 갖게 된 발레 슈즈. 그리고 나의 발레 복. 


 당장에 음악에 맞춰 동작을 외우고 춤을 추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기초 중의 기초 자세를 잡고 하나 배우는 것만도 힘들고 따라주지 않는 몸에 삐걱 다 녹슬어 버린 로봇 마냥 움직이지만 그래도 그게 뭐라고 참... 위로되는 기분이었다.


 누가 나를 억지로 누르는 것도 아니었으나, 틀에 나를 두고 맞추듯 아끼고 열심히만 살아왔던 어린 나한테 주는 그런 위로.

 


 비록 5개월 배우고, 터진 코로나와 좋지 않은 몸상태로 잠시 쉬고 있는 요즘이지만, 어떤 도전보다 나에게는 어릴 적 나에게 주는 별 거 아닌 위로이자, 선물이었던 발레.


 다시 발레복을 입고, 발레 슈즈를 신고 (곡에 맞춰 춤을 추기보다는 스트레칭과 자세 잡기뿐일지라도) 거울을 마주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4.5, 힐링영화] 리틀 포레스트 ep.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