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 경주
끝을 모르는 듯 올라가는 집 값, 막힌 대출, 막막하다는 취업,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흔히 말하는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건물주? 이들도 나름의 어려움은 있겠지...
감사하게도 코로나 시국에 일은 하고는 있으나 불안정한 회사와 그 외 여러 일들로 스트레스 속, 몸이 망가지고 병원 치료만 이어지던 중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휴가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안전하고 아직은 뚜벅이 생활 중인 나를 위한 여행지 후보들 중, 최종 선택은 아끼는 여행지 '경주'.
몇 년 전 다녀온 경주는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또 한 번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 있었고, 다시 한번 다녀온 지금 역시 고스란히 남아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내가 경주를 좋아하는 이유, 고즈넉함 속에서 계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경주 월드, 엑스포, 보문단지 등 충분한 즐길거리도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주는 천천히 걸으며 눈길 가는 곳곳에 옛 발자취가 남아 있고 관리하고 꾸준히 이어오는 것.
2박 3일 일정은 짧았고 아쉬움 가득이었지만 몇 년 만에 두통 없이, 개운한 머리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소소한 행복 가득한 일정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혼자, 뚜벅이로 여행을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꼭 '경주'를 추천하고 싶다.
경주 시내에는 흔히 알려진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월정교, 교촌마을 등이 다 모여있다. 걷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다 걸을만한 위치에 있다 보니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걷기 딱 좋다.
23개의 고분이 있다는 대릉원은 요새 포토존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방송에도 나왔던 만큼 친구들, 연인, 가족 할 거 없이 다들 모여 인증을 남길 거 같아 나는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릉원에 들어서서 우측에는 천마총이 있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정리도 너무 잘 되어 있어 천천히 보고 나와 쭉 걷다 보면 고분들 위 새들이 쉬는 것도 보인다. 평일이라 특히 더 조용하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대릉원 후문으로 나가 걷다 보면 바로 첨성대로 연결되어 있다. 첨성대는 밤에 조명을 켜놨을 때 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야경으로 봐도 좋을 듯.
첨성대는 천문관측을 위해 선덕여왕 때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한다. 실제 안에 들어가서 올라가 앉아 별을 관측하기 좋다는데 평생 해볼 일 없겠지만, 그 안에서 보는 별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아, 그리고 경주의 좋은 점 또 하나. 일찍이 동네가 조용해지기 때문에 서울 도심보다는 별 보기가 좋고 공기가 맑다는 점.
아쉽게도 내가 첨성대에 올라앉아 별을 볼 순 없겠지만, 꼭 별 잘 보이는 곳에 가서 가만히 누워 별을 볼 날을 만들어야겠다.
첨성대 주변에는 핑크뮬리나 코스모스 등이 피어 있고, 또 유채밭도 있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천천히 대릉원을 보고 첨성대를 한 바퀴 돌아 가만히 걷기 좋은 산책길도 있으니 잠시 머릿속 생각을 멈추고 싶은 사람들이 걷기 딱 좋다.
여기서 옆으로 빠지면 계림, 교촌마을과 월정교가 이어져 있으나 첫날에는 동궁과 월지 쪽으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나'였고 그냥 그 순간순간에 집중했다.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그때 그때 바로 목적지를 정해 움직였다.
날은 정말 좋았고, 적절하게 들리는 소음도 완벽했다.
동궁과 월지는 어두워지면 조명을 켜 두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다. 하지만, 낮에 조용한 이곳 분위기 역시 좋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두 번 다 가보길 추천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있을 테니.
엄청 넓지는 않다. 하지만 내 위치에 따라 보이는 각도, 구조들의 모습이 다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 급히 돌지 말고 여유 있게 봤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다시 경주에 오기까지 6-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기는 여전히 시간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황리단길이 생기고 경주의 곳곳이 변하였어도 오래전 그 시간을 품고 있는 경주를 보며 복잡하던 마음과 내 시간도 남겨둔다.
황리단길은 대릉원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 않다. 천천히 둘러보고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황리단길로 향하는 길, 가장 해가 쨍한 시간을 벗어난 첨성대의 모습은 또 달랐다.
걸어서 하는 여행의 또 다른 장점이겠지.
간단하게 식사 후, 지난번 봤던 야경을 잊을 수가 없어 야경투어에 참여했다.
처음 경주에 왔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더 반가웠다. 월정교는 낮보다 밤이 더 예쁘다는데, 나는 다음 날 봤던 월정교도 나쁘지 않았다. 교촌마을과 이어져 있으니 월정교를 바라보며 잠시 쉬다 가도 좋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이 건축물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떠 만든 모습. 현재 실제 목탑이 있었을 곳은 터만 남아 있다. 황룡사지 청보리밭 떠올리면 될 듯.
이렇게 경주 여행 첫날은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