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
지난 2020년 9월 27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이를 국가 간 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내전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고 더러는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는 이 두나라의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다루려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들어 반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역사를 천년으로 압축할 때 전쟁이 없던 평화의 시기는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인간과 전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보다 미래 전쟁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이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은 21세기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전쟁을 변화시킨 두 가지 발명품
전쟁이라고 하면 총 들고 전장을 누비는 상상을 한다. 적군과 대치하면서 총으로 교전하고 때로는 포병의 포격 요청을 하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형화되었다. 특히 TV나 영화를 통해 한국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모습을 보고자란 세대라면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는 전쟁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어제까지는 맞는 이야기지만 오늘은 아니다. 적군과 대치한 상태로 벌이는 총격전이나 더 높은 지역을 점령하려는 고지전은 이제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현재 전쟁을 나눈 두 가지를 꼽자면 기관총과 폭격기를 들 수 있다. 먼저 기관총은 인간의 전쟁 양상과 틀을 완전히 바꿔버린 물건이다. 기관총은 1890년대에 개발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기관총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원거리 사격을 하다 달려가서 백병전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헐리우드 영화 "패트리어트"에서의 전투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기관총이 전장에 도입되니, 병력이 대규모로 달려들어 싸우는 모습이 사라졌다. 기관총은 그전의 총기와 달리 재장전의 시간이 들지도 많고 짧은 시간에 수 천~수 만발의 총알을 날려 보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을 피하기 위해서 참호를 파기 시작했고 전선은 교착상태에 머물렀다.
이 기관총 사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탱크(TANK)다. 철갑을 두르고 무한궤도를 사용해서 참호 위를 자유로이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탱크 덕분에 교착된 전선을 뚫어내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기관총만큼 전쟁사를 바꾼 발명품은 폭격기다. 비행기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정찰 용도나 조종사가 폭탄을 들고서 적진 위에서 던지는 정도의 원시적인 역할만 수행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다량의 폭탄을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비행기 성능이 발전했고, 나치 독일군은 이를 이용한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 '전격전'은 공중에서는 폭격기로 전장을 초토화시키고 땅에서는 탱크를 일렬로 세워 밀어붙이는 전술로 예전 보병을 통해 전쟁하는 시기에 비해 진격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시즈탱크와 레이스를 조합해서 밀어붙이는 격이다.) 서유럽 최강자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무릎 꿇릴 정도였다.
재래식 전쟁의 종말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전쟁과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서 재래식 방식의 전쟁은 종말을 고했다. 더 이상 보병이 총을 들고 치열하게 싸우는 일은 전장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로 보아왔던 제2차 세계대전, 월남전쟁, 한국전쟁 같은 모습은 모두 과거의 일일 뿐이다.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제공권을 장악하자 전쟁은 끝났다. 공중을 내어준 중동국가들은 이스라엘 전투기가 자국의 영공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했고,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라크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걸프해안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주요 방공체계를 정밀 타격하고, 연달아 전투기와 폭격기가 날아들어 주요 거점을 폭파시켰다. 그 결과 침공 2주 만에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 현대전에서 지상군은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아닌 점령지를 확보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바뀌었다.
전쟁의 게임 체인저: 드론 공습
드론(Drone)은 친숙한 물건이다. 이제는 집집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다. 사용처는 놀이에 그치지 않고 전문 방송영상을 만드는데도 사용되고 있고, 미래엔 택배 배송업무까지 맡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의 삶에 가깝게 자리한다.
장난감 같기만 하던 드론은 군사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혔다. '고작 드론 가지고 무슨 전쟁을....'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손바닥 만한 드론으로는 기껏해야 정찰 정도가 전부일 것 같다. 하지만 사이즈를 키우고 정밀기계를 장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미국은 2000년 초반부터 글로벌호크라는 무인 정찰기를 운영했고, 지금은 프레데터와 리퍼 같은 공격형 무인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드론은 그 효율성을 여실히 증명해 냈다.
미래 기계 전쟁의 도래
전쟁은 상대국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자국 언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던 결정적 이유가 국내 여론 악화였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하비 덴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군인들을 가득 채운 차가 폭발해도 세상 사람들은 전혀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부 다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조커가 틀렸다. 이제는 전장에서 군인이 죽어나가도 사람들은 동요한다. 생명이 오가는 전쟁에서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드론은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않기 때문에 인명손실이 없다. 조종사의 체력 부담 없이 장시간 운영할 수 있고, 설사 격추되더라도 조종사가 인질로 잡힌다거나, 살해되는 끔찍한 장면이 전파를 탈 일도 없다. 반면, 성능은 확실하다. 실제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위험에서 하지 않았을 임무도 아무런 제약 없이 맡길 수 있다. 더욱이 드론 조종사 양성은 보통의 조종사 양성보다 기간도 짧고 비용도 적게 든다. 보통의 전투기와 비교해 드론은 모든 면에서 월등한 효율을 보이는 것이다.
역사는 이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을 미래 기계 전쟁의 서막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싸구려 중국제 드론을 전장에 투입해서 상대방 장비와 병력에 치명타를 가하는 드론의 파괴력을 전 세계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무인 기계를 사용해 전쟁의 승기를 가져오면서도 비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이 전투 방식은 머지않아 전 세계 군사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관총과 전격전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랬다. 충격이 강한 만큼 전파는 더 빠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군은 미래 전쟁에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