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한 퇴촌의 한 구멍가게에 마음이 끌려 20여 년 간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구멍가게를 그렸다고 한다. 펜으로 섬세하게 그린 수백 점의 구멍가게 그림을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시간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랄까.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中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가본 거 같은,
처음 보는 곳이지만,
어디서 본 듯한 구멍가게.
경기도 광주산골에서도, 무의도 섬에서도, 뭍에 나와 처음 살았던 숭의동 골목에서도 보았던 바로 그 구멍가게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구멍가게는 나에게 보물 창고 같은 곳이었다. 동전 하나만 들고 가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을 주었던 추억의 공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느껴지던 그 냄새가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듯했다. 쿰쿰하고 쾌쾌하면서도 달큼한 냄새가 배어있던 곳. 그 좁은 가게 안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고르며 행복한 고민을 하던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참 고민한 끝에동전 하나로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 것을 골라 들었다.
하얀 시럽이 발라져 있던 사탕. 깨물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해서 '돌사탕'이라 불렸던 불량식품이다. 돌사탕 하나를 입에 넣으면 오래오래 녹여 먹을 수 있어서 호사스럽지 않은 돈으로 호사스러운 달콤함을 천천히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 좋아했던 군것질거리 중 하나였다.
그 사탕을 입에 물고 우리는 해가 저물 때까지 땅따먹기도 하고, 고무줄도 하고, 비석 치기며 오징어 놀이를 했었다.
추억에 젖다 보니 어느 것 하나 눈길 머물지 않는 그림이 없었다.
그림 속 그 작은 구멍가게 앞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담겨 있는 잇 아이템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평상'이었다.
'구멍가게 앞에는 반드시 평상을 놓아야 한다'는 무슨 공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삼거리 슈퍼에도, 충남상회에도, 등나무 슈퍼 앞에도'평상'은 한결같이 놓여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구멍가게 앞에도 어김없이 놓여 있었던 '평상'.
그곳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푸근해진다. 평상을 보면 동네 아이들이 떠오르고, 거기 앉아 얘기를 나누던 어른들의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평상은 함께 앉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나눠 앉을 수도 있고 둘러앉을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다. .... 평상은 나눔의 자리다. 기다림과 배웅, 위로와 놀이, 고백 등 소소하지만 따뜻한 기억이 두터이 쌓인 장소가 바로 평상이다.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 앞을 지나는 사람 누구에게든 편견 없이 자리 한편을 내어주던 공간. 그 따뜻하고 정겨운 공간에 대한 추억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참 오래도록 그립다.
그래서일까.
거실 한편에 느닷없이 평상을 들여놓고 싶은 마음이 든 게.
사회적인 거리두기니, 5인 이상 집합 금지니 하는 것 없이, 두런두런 모여 좁으면 좁은대로 바투 앉아 얘기를 나누던 그때가 그립다.
반질반질한 노오란 장판이 깔려 있던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아른아른 피어오르던 더운 여름의 열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쭈쭈바를 빨아먹던 어린 내가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