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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r 14. 2021

<재수생 육아일기> 너나 잘하세요.

꼰대 인정해주기


 아이가 다니는 재수학원은 토요일 정규 수업이 6시에 끝납니다. 그래서 저녁 먹고 바로 스터디 카페를 가죠. 스터디 카페보다는 그냥 학원에서 더 다 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지만,  강요 하지 않기로 했으니 일단 그것도 그냥 하겠다는 대로 둡니다.

정말 '노터치' 하려고 엄청 노력 중이죠.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10시면 어김없이 들어와야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아직도 딴 짓하고 다닐까봐 노심초사하는 맘, 티 많이 나죠?)


  며칠 전에 학원에서 보는 주간평가 성적표를 가져왔는데, 그날너무 피곤해서 제가 먼저 잠이 들어 제대로 못 봤요. 아침에 학원을 보내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전반적으로 지난번 봤던 것보다 좋지 않게 나왔더라고요. 특히 국어가.

슬며시 화가 났죠. 참지 못하고 당장 읽지도 못하는 톡을 보내 놨어요.


"이번 시험 좀 심각하네. 학원에서 보는 주간 평가라도 이러면 안 되지."


일과가 끝나는 10시에 전화가 왔요. 엄청 냉랭한 아드님 목소리.

"맨날 잘 볼 순 없잖아요. 그리고 핸드폰 받자마자 이런 문자 보면 기분이 좋겠어요?"


깨갱...

그래요. 맨날 잘 볼 순 없는 거죠.

맞아요. 핸드폰 받자마자 저런 문자 보면 기분도 나빴겠어요.

듣고 보니 상전님 말씀이 다 맞네요.

 그래도 엄마로서 위엄을 갖춰 두어 마디 더 하다가 결국,

"알았어. 조심히 와. 배는 안 고프고?"

슬며시 목소리에 힘을 빼고 말았네요.


시험을 못 봐도, 시험을 잘 봐도,

이래저래 상전!


그 상전님이 오늘 공부하고 들어오는 길에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 잠시 얘기를 하다 왔대요.

 무슨 꼰대 짓을 하다 오셨는지 너무 궁금했죠.

"뭔 얘기를 그리 했어?"

"나처럼 절대 재수하지 말라는 말이지 뭐. 학교 생활 잘하라고."


재수 두 달만에 꼰대가 되신 우리 아드님, 얘기 듣다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네요.

"그대나 잘하세요."

제 딴에도 두 달만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긴 했나 봐요.

공부를 하든 안 하든 하루 종일 재수학원에서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는데... 슬며시 후회도 하고 그러나 봐요.


 재수생 육아일기를 쓰면서  아의 생활과 생각이 궁금해서 아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었어요. 재수생 일기를 한 번 써보라고. 공부하면서 힘든 일이나 깨달은 점이나 공부방법 같은 소소한 일상을 틈틈히 적어보는거죠.

"나중에 너랑 엄마 일기썼던 거 교환일기처럼 바꿔 읽어보면 이 힘든 시기도 엄청난 추억이 될 거 같지 않아... 어때?"


그래서 우리 상전님도 지금 매일은 아니지만 엄마처럼 간간히 재수생 일기를 쓰고 있답니다. 일기를 쓰다 보니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고 하네요. 그 일기장 안에 얼마나 많은 꼰대 같은 얘기들이 들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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