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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록씨 May 02. 2023

이찬혁 LEE CHANHYUK [ERROR]

미리 요절한 뮤지션의 다잉메시지


96년생. K팝스타 우승자. YG의 악동뮤지션.


내는 곡들마다 좋은 반응을 받으며 지난 쇼미더머니10 머드 더 스튜던트의 불협화음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신드롬처럼 퍼져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천재' 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지난 10월 악뮤가 아닌 그만의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블로그에서 이찬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긴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 전까진 내가 그의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ERROR 앨범을 계속 들으면서 여러가지 소재들이 생각이 나서 한 번 글을 꼭 쓰기로 생각을 했다. 10월 이후로 내 사고를 굉장히 풍부하게 만들어준 앨범이기도 했고 내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가졌던 마음가짐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읽는 사람도 없는 블로그를 쓰는 사람이지만 이 글은 기록이기도 하며 한 편의 감상문이다. 리뷰나 평가를 할 자격은 없으니 나는 음악과 엮어 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악동 걔잖아 뮤지션" : '목격담', 'Siren'





https://youtu.be/-LJvZl6rJm8







때때로 내가 내 삶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으스대는 순간 신은 강력한 철퇴를 내린다. 그 순간, 지금껏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중요한 걸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진솔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껏 내 중심으로 돌아갔던 사회가 나를 빼고 돌아가며 이에 불공평함을 느낀다. 그는 파란불에 신호도 잘 지켰다. 잘못은 저 멀리서 중앙선을 삐뚤빼뚤하며 달려온 저 자동차였다. 헐떡거리는 숨 속에서 그는 목숨을 구걸하게 된다. 오직 나만을 위해서 세상이 이기적이게 행동해줬으면 좋겠다. 안비키는 건 다 밀고 가줬으면 좋겠으며 방지턱도 다 무시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달리고 있는데 평화로운 도로는 너무나도 불공평하다.




죽음을 당면한 자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자신의 손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운명을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그 순간. 시선이 온통 바깥으로 향하게 된 그는 '쟤 걔잖아?' 라며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찰칵 사진이 찍힐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모든 삶의 선택지를 내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죽는 날도 내가 정하고 죽는 모습도 장례식도 다 내가 정해놨는데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가 있을까? 거짓말이 아닐까? 꿈이 아닐까? 고작 이런 상황 속에 죽을 순 없다며 손이 떨린다.




이찬혁 '파노라마' MV 중


'목격담'과 'Siren'은 앨범의 포문을 여는 두 곡이다. 마치 소설의 시작처럼 한 가지 상황을 청자에게 제시한다. 유명한 가수 '이찬혁'이 횡단보도를 걷다가 사고를 당해버린다. 그는 슈퍼맨처럼 날라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눈 앞에서 죽어간다. 96년생의 그가 '죽음'을 화두로 꺼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죽음은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이 중에 그 누구도 죽지 않을 순 없다. 예기치 않은 죽음에 살고 싶다는 감정 또한 모두가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고서 삶에 간절해보기로 했다. 또한 시선을 자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의 바깥까지 옮겨가는 과정,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삶의 흔적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 파노라마





https://youtu.be/cbuGu98NtWs





https://youtu.be/Y7C8qIpo7Dg





파노라마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보자. 마치 긴 악몽을 꾼 것처럼 잠시 그는 기억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나는 게 뭐가 있을까? '가족', '지금껏 못해본 것' 만약에 나에게 하루만 더 허락된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사과나무라도 심을 것인가? 파노라마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발표하며 죽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는 아무리 고민하고 방을 헤집어놓아도 확연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인정하면 나는 죽어버리는 게 될까봐 계속 도망친다.



살고 싶다고 말해 !






그래, 그렇구나! 나는 지금까지 인생 다 산 것처럼 살아왔지만 너무나도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인정해버리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유언이라도 한 마디 뱉게 해줘,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줘, 그동안 잘 해주지 못한 엄마를 만나게 해줘. 파노라마 속에서 도망치자, 뛰어나가자. 세상의 거짓말같은 순리에서 벗어나자.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가장 진솔한 고백을 담은 비명이 실린 곡이다. 살면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살고 싶어!' 라고 외칠 수 있는 순간은 흔치 않다. 간혹 죽다 살아나면 세상을 열심히 살 수 있게 되는 힘을 얻게 되는걸까? 라는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 다른 관점으로는 한번 죽었다 살아났는데 인생 뭐있냐며 구태여 열심히 살지 않고 다 즐기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찬혁은 그동안 자유로운 이미지의 대명사였다. 농담처럼 유행하는 밈처럼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며 대중들은 그의 자유를 허락해줬고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그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하든 내 신발에 침을 뱉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자유를 간직했던 그는 한 가지 오류에 당착하게 된다.




내가 당장 이 문을 나갔는데 죽어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양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삶을 간절하게 구걸하고 싶다. 말그대로 '살고 싶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내 생각들이 다 오류였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형편없다 말해도 좋아' : Time!Stop! ,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마지막 인사













 







그렇게 그는 파노라마에서 벗어나 단 하루의 삶을 허락받는다. (또는 그렇다고 치자)




신과 솔직히 터놓고 얘기해도 이것만은 자신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 않느냐. 피가 흘러넘치듯이 후회가 차오르는데 과연 누가 멈출 수 있을까? 반칙을 써서라도 나를 살려주면 안될까? 간절히 기도라도 하면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물음표는 순리를 관장하는 초월자에게 향한다. 나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지 괜한 심술도 부려본다. 커튼콜같이 박수갈채 아래에서 눈을 감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멋진 장면을 언제나 꿈꿔왔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이게 뭐야.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내 삶을 제멋대로 1부, 2부로 나누고 있고 그 기준에 따르면 지금은 아직도 막간에 있다. 나한테 유리할 때만 2막이 시작될 예정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기승전결을 찾고 희망 다음엔 고난이, 고난 다음엔 희망이 있길 바라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늘상 체감하고서 단 한 존재를 찾게 된다. (이전에 윤리 시간에 배운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가 떠오르는)




연인과의 사랑은 때론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가볍게 밀려나고 만다.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게 꽤나 소모적인 일처럼 느껴지고 이별한 이후엔 먼지처럼 바스라지는 감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살아난 그가 만약 딱 하루에 딱 한 명만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날 것인가? 후회를 통해서만 떠올릴 수 있는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 서로의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더 먼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만나 또 다른 운명을 기대해보고 싶은 사람. 단 하루의 시간이 의미가 있으려면, 지금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는 이 몸이 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당장에 만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제 아무것도 바꿀 순 없지만 '인사'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 인사는 모든 만남의 시작과 끝이다. 인연의 끝에 미련이 남는다면 그건 원하는 방식으로 작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조금 더 좋은 기억으로 진솔한 고백으로 덮어씌울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자존심을 내세워서 헤어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형편없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괜찮다. 상대방은 나를 잊었다고 궁금해하지 않을거라고 못을 박아도 나는 그걸로 괜찮다. 혹시나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내게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줬으면 좋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네' : 뭐가, 부재중전화







앞의 곡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라면 진솔한 후회에 대한 고백을 나누는 부분이다. 뭐가의 영어 제목이 'What The' 로 번역되는 것 또한 재밌는 요소이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나는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하고 싶은 건 다 해 봤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과거의 자신에게 향하는 불합리함이다. 아니야,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걸? 네 욕심은 끝이 없어. 지금 그 만족은 만족하고 있다는 감정에 취해있는 것뿐이야. 하지만 과거의 자신은 죽어보지 않았기에 평생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인식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 나의 세계는 내가 죽는 순간 끝나게 된다는 걸 느끼고 사실 '나의' 세계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한가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 내가 소중히 여긴 것들이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단 하나의 소원만이 남았다.




그렇게 꺼져가는 자신의 세상 마지막에 남게 된 그는 꺼져가는 불씨같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이 친구는.. 이 사람은.. 얘는.. 하면서 자신있게 찾아가기에 여러가지 조건을 찾게 되고 한명밖에 만날 수 없다면 이 소중한 시간이 소중한 사람과 보내야하는데 대체 누가 적당할까? 연락처 속에서 엄지손가락이 방황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가 목격하게 된 건 수없이 쌓여있는 빨간 부재중 통화 표시. 가족들의 연락이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사느라 이 연락처 속에 있는 사람들만을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내 뒤를 지켜주고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무 바빴다. 아니 사실 바쁘지 않을 때도. 지금까지 모든 게 나를 스쳐가고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스쳐가지 않은 것도 있기는 했구나. 내가 미안해야할 사람들이 남아있었구나. 지금껏 피해만 받고 살았다고, 외로움만 간직하다고 살았는데.







'내 꿈의 성 먼 훗날 그곳을 위해서라면' : 내 꿈의 성, A Day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나의 행복이고 만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음을 당면한 이후, 못해본 것들이 많이 생각난다. 이것도, 저것도. 욕심을 확장해나가다보니 도달한 결론은 '아 그렇구나, 난 왕이 되고 싶었던 거야'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원피스 속 장면을 두 개나 가져오게 됐는데, 원피스 속에서는 해군은 '정의'에 대한 정의가 각자 다르고 해적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바다를 정복하는 해적왕이 되고 싶어한다. 그 중 주인공 루피는 그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해적왕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이찬혁은 이 앨범 활동을 통해 그 이전보다 더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을 한다. 기행인 이유는 사람들이 상상한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찬혁은 자신의 야망을 선언한다. '나는 왕이 될 거다!' 라는 상상지도 못한 발언을.




죽음을 통해 내가 더 좋아하는 것, 더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포기해야된다는 것 또한 느꼈다. 이찬혁이 상상하는 자신의 왕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외로워 메말라버려도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준다면 나는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해 살아가겠다.




사실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껏 누군가의 압력과 지배 속에서 살던 자신을 역전시키는 사고이기도 하다. 그를 구속해왔던 액자와 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속에 둘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하다. 죽음 이전의 나는 부모님, 친구, 주변 사람들의 사고를 흡수해 만들어진 나라면 이제 한 번 죽고 나서 세워갈 왕국은 모두 내 손으로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세워올린 왕국인 것이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나 또한 '왕이 되겠다' 는 웃긴 꿈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군주정치를 하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저 루피의 대사를 보고서 왕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자유롭게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누군가를 감화시키는 일,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왕국을 공고히 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는 그런 꿈. 쉽게 말하면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와 똑같이 '왕'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이렇게 멋있는 아티스트였기에 그게 허황된 생각이 아니라는 자신 또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죽음을 단 하루 남긴 상태에서 사랑한다는 진솔한 고백을 보낸다. 그동안 솔직하지 못 했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모습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진심' 이란 키워드는 정말 간단하면서 쉽다. 자신조차 속여 온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이 필요하기도 하며 다른 조건을 댔을 때 변하지 않는 마음 또한 필요하다. 죽음을 단 하루 남긴 상태라면... 죽음이 내 발 아래로 드리운 상태라면 그는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다' 라고 남기기로 작정한다. 남들한테 멋있는 척, 욕심 없는 척하지않고 자신의 욕심과 사랑에 솔직하며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해보기로.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 장례희망










제목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은 제목이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생각했지?




2009년 정말 어린 나이였지만 막 좋아하게 된 마이클잭슨이 죽는 장례식을 본 적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장례식은 엄청난 규모로 많은 추모 무대와 함께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면 파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이가 든 지금은 모두 펑펑 울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면 이 노래에서 묘사하는 장면 또한 그가 생전 계획하지 않은 부분이다. 환호성과 박수갈채보단 통곡과 눈물만이 가득찬 흔한 장례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르겠지' 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뒤집히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는 비록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자신이 천국에 있으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또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먼저 천국으로 간 그는 모두를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며 약속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게 많았다는 걸 인정한다. 사(死)자의 시선에서 조문객들을 바라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전에는 흐릿한 감정과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이 얼굴을 보이자마자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에겐 그저 희미한 무언가였는데 그걸 간직해 찾아와준 조문객들에게 그는 감사와 사과를 한다.




이 노래에는 가스펠도 섞여있는데 이찬혁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성스러운 분위기를 신스와 잘 어우러져 표현해주는 것 같다. 사운드 그 이상으로 소재가 주는 힘이 아닌가 싶다.







'천재' 라는 오류










미흡한 시선이지만 나의 이야기와 상상을 버무려 앨범을 매일 들으면서 생각한 이미지를 옮겨보았다. 마지막 소재는 이 앨범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퍼포먼스들을 다루며 마무리할 생각이다.




사실 이 앨범에 내가 주목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M Countdown' 무대 전 인터뷰 영상이었다.




https://youtu.be/ROmd83YCnoE





이 인터뷰에서 그는 MC들이 하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텔레파시'로 생각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는 TV 무대에서 뒤돌아서 무대하는 퍼포먼스, 이 인터뷰와 삭발하는 퍼포먼스로 공연했는데 처음 접한 나로서는 '아니 이건 좀... ' 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었다. 좌우의 MC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이전의 가수들은 '신비주의' 컨셉이니까 방송 출연해서 아무말도 안하는 그런 컨셉도 있긴 했었다. 내가 느낀 이 불편한 감정은 사실 나만 느낀 건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토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왜 저런 행동을 했을지, 당연히 약속된 행동이지만 어떤 의도로 기획을 했을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저 행동에 선과 악의 가치를 따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옳다와 그르다의 가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누가 그걸 정할 수 있을까? 단 하나 정할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찬혁에게 아무도 선과 악의 가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며 노래와 무대로 응답하는 사람이다. 몇몇 사람들은 틀을 요구하지만 이찬혁은 일부러 틀을 깨부수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어느샌가 TV에 보여지는 모습은 약속처럼 정해져 있게 된다. 때로 세상에 충격을 가져다주며 왈가왈부하는 토론을 통해 발전해왔던 그런 행위들은 어쩌면 두려워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ERROR들은 교정되어져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그건 되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이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일이 그렇게 폄하받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는 가수로서 어떤 형태든 최선을 다한 무대를 해냈다.




https://youtu.be/uXVg9F-7Tqw





 '천재' 라는 타이틀은 굉장한 부담감과 기대감을 주는 꼬리표다. 사람들은 이찬혁의 독특한 행동과 만들어낸 좋은 노래들로 천재라는 이름을 붙이곤 한다. 10대 시절부터 이찬혁의 성장은 대중들에게 공개되어왔다. 그래서 간혹 이전의 악뮤 노래들이 그 때의 감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 또한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고 노래는 멈춰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처음 그 노래를 들었을 당시와 같을 수는 없다. 대신 10대에는 10대의 노래를, 20대는 20대의 노래를 할 수 있다. 아이유의 나이를 소재로 한 '스물셋' '팔레트' '에잇' '라일락'이 우리가 그녀의 시간을 함께했다는 증표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쇼케이스로 유리케이스 안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악뮤 걔잖아?' 라는 반응. 그 속에서 그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신을 본다. 어쩌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그는 어떤 걸 느끼고자 했을까? 온갖 시선 속에서 그는 '저는 죽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그는 실수 하나도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비하인드 영상에서 그는 그 부담감이 그를 정말 진심으로 무대에 임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누군가는 재미로 그걸 촬영하고 공유했을 수 있지만 눈이 마주친 누군가에게서는 감동을 공유하는 경험을 했다고도 말한다. 가수와 관객은 때로 일방적인 전달방식을 가졌다. 그는 그를 땅으로 내려보내 사람들 앞에서 길거리 강연을 하듯  조심히 이야기를 꺼냈고 그 마음은 누군가에겐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나는 천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꽤 고민해보았다. 어쩌면 이찬혁에게 붙은 꼬리표를 언젠가 변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고 때로 그에 대한 평가가 박해졌을 때 칼날처럼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찬혁이 이번 앨범을 통해 'ERROR' 라며 보여준 퍼포먼스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의 입장에선 완벽한 에러였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해본 무대와 소통 방식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만 골라서 하는 그는 우리와는 구별되는 선을 만든 것만 같았고 그게 경외심을 낳았다. 그리고 그게 그를 천재라고 느끼게 만든 요소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행동 양식들을 요구받으면서 무난한 태도를 학습받는다. 이래라 저래라 싶은 것들 말이다. 그게 우리를 보통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섰을 때도 그렇게 행동하고 싶을까? 내일 죽는다는 걸 아는데 출근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퇴근 후에 늘 먹던 밥을 먹는 거. 늘상 하던 것을 마지막 날에도 꼭 해야 할까? 그제서야 우리는 스스로도 속이지 않는 진심 속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특이한 행동들을 하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에겐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차근히 조심히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봐 그저 '나'로 살아보고자 하는 건 어떨까? 데미안의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라는 문장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나'라는 분야에서 천재가 될 수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건 나만 할 수 있다. 이미 남이 하고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것들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생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 그게 천재가 되는 방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이미 천재가 될 자격이 갖추어져있는 셈이다. 모두가 자신의 속에서 솟아 나오는 그 것을 찾아 다소 어렵더라도 살아보려고 하기를.




그리고 그 어떤 천재도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후의 순간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아마 욕심이 무한할 것이다. 그러니 죽는 그 순간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로서 죽을 수 있기를.




모든 사람은 죽는다.


천재는 죽는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라는 중명사 부주연 명제의 오류(Error)를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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