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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Mar 20. 2021

회사, 남느냐 떠나느냐

#라이프이스고잉온 #2

입사하는 법은 자소서를 쓰는 방법부터, 면접 때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까지 자세하게 알려주면서 왜 퇴사할때는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려주는 곳이 없을까.


공중 화장실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처럼 첫인상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떠나는 뒷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퇴사를 마음먹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걸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한 것일까였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유독이나 사적인 대화가 오고가지 않아서 누가 나가고 들어오고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들은게 많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팀장님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출근 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팀장님께 잠시 미팅을 요청했다.


그 미팅을 위해 네덜란드로 가기 결심한 날 부터 아니 어쩌면 더 전부터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했던것 같다. 어떤 시간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무작정 저 그만둘래요 하면 되는 것인가? 어디까지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 생각을 수없이 반복하고나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저 이번달 말까지 근무하고 그만 두려고 합니다....'


항상 편하게 할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셨던 팀장님이셨지만 내가 한번도 미팅을 신청하거나 먼저 의견을 말씀드린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씀드렸을 때 부터 으레짐작 하셨을지 모르지만 다른 질문 없이 알겠다고 하셨다.


그냥 그렇게 끝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평소와 같이 업무를 하는데 팀장님께서 다시 부르셨다. 그리고 그 이후 대표이사님과 또 HR 상무님과도 미팅이 줄줄이 이어졌다.




퇴사를 통보한 회사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는다는 것은 나의 그동안의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러한 회사를 떠나겠다고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미팅을 하면서 오고간 많은 말 중에 '지금부터 다시 딱 1년만 버틴다는 생각으로 일해보면 어떠냐?'라는 말이 머리에 꽃혔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어쩌면 사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그 자리를 지키고 버텨나가는 과정이다. 매일의 삶은 반복되고 그 반복을 통해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업무에 익숙해가는 것이다. 커리어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그 지겹고도 반복되는 일을 버티고 삼키며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 지는 것임을 그렇기에 커리어를 쌓고 그 분야에서 대체될 수 없는 인력이 되는 그 과정의 가장 밑 바탕에는 '딱 1년만 해보자'라는 무수한 다짐의 세월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3년간의 회사 생활에서 깨달았다.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보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3년간의 회사생활을 겪고 회사를 10년,20년 다니신 분들을 보며 커리어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지겹고 힘들어도 그 반복되는 일을 버텨내고 삼키며 자신의 경험으로 만들어 나가야 비로소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전문가 되기 위한 지겹고도 힘든 반복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체 불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1년만 더 버텨보라는 말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1년 뒤에 오늘을 돌아보며 그 시간들이 의미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1년 뒤에도 또 다른 1년을 버틸 생각을 해야하는 걸까.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조차도 모르는데 언제 될지도 아니 진짜로 될지도 모르는 그 미래의 어느날의 내가 되기 위해 그 버티고 버티는 시간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네덜란드로의 이직이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니다.


아마 어디로 가든 무슨일을 하든 그 고민은 계속 될 것 같다. 그래도 2020년 11월 이번달 말까지만 일하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11월 27일 우연하게도 나의 2020년 생일에 나에게 퇴사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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