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시간째 달리고 있다. 아침에 시라쿠사를 출발했는데 아직도 이동 중이다. 넓은 들판 사이로 뻗어있는 길은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다. 차를 탄 채로 배를 타고 (기차도 차를 그대로 싣고 간다고 한다.) 1시간 동안 바다를 가로지르며 흥미롭게 시작했던 여정은 이제 조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는 길을 4시간째 달리고 있으니 지겨움이 조금씩 고개를 들 수밖에!
작은 마을들을 들르며 이동했다면 운전도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을텐데, 오늘은 아쉽게도 한눈 팔 시간이 없다. 목적지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하는 마테라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마테라에서 보내고 싶어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액셀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주어보지만, 조급한 마음과 달리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구글 맵 상으로는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눈 앞에 목적지라고 생각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멀리 마을이 보이면 기대해보지만 야속하게도 네비는 그냥 지나졌다. 시간이 흐를 수록 초조함이 더해지고,.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도 스물스물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조금씩 퍼져가기 시작할 때 즈음, 마테라의 모습이 보였다. 눈앞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마테라는 기대했던 그대로 독특한 모습이다. 마을에 진입해서 구불구불 놓여있는 돌길을 따라 중간쯤 올라갔을 때 구글맵이 호텔이 근처에 있다고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 좌우를 훑어보지만, 보이는 건 돌벽들 뿐이다. 보통의 도시에서 생각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길 한 쪽에 그리 크지 않은 검정색 철판이 보였다. 호텔 이름이 써 있었다.
죽기 전에 가야 할 호텔에 선정된 동굴 호텔이다. 동굴 호텔이라는 낯선 곳에 대한 궁금증이 큰 것 이상으로 기대도 컸다.
마테라에 있는 여러 동굴 호텔 중에 가장 좋은 호텔이다. 이 호텔에서도 가장 크고 멋진 방을 예약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 가장 큰 방이 가장 동굴 같은 느김이 강했다. 이왕 숙박을 한다면 조금 더 비싸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 숙소는 대부분 저렴한 곳을 이용했었는데, 마테라에서만큼은 무리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같이 여행하는 일행과 함께 쓰기로 해서 그나마 부담이 줄지 않았다면 예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생애 가장 비싼 방이다.
낮은 담 사이에 있는 허리 높이 되는 작은 쇠창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포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타나서 짐을 계단 위 방으로 날라줬다. 입구 옆에 있는 동굴에 자리하고 있는 리셉션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보이는 동굴 안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고, 동굴이 주는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한편에는 다른 동굴로 이어지는 연결 통로가 있었다. 건너편 동굴을 흘깃거리며 살펴보니 테이블들이 놓여있었다. 아마도 식당인 것 같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거대한 열쇠 형태의 방 키를 건네주었다. 중세 배경의 영화에서나 봄 짓한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열쇠다. 리셉션을 나와 돌길을 따라 방으로 이동했다. 돌벽 중간에 나무문이 있었다. 자물쇠 구명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어마어마한 방이었다. 아니, 동굴이었다. 동굴 형태로 만든 방이 아니라 진짜 동굴이었다. 옛날에 사람이 살았다는 동굴을 그대로 방으로 만들어서인지 천장도 아주 높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바로 앞에 놓인 긴 테이블 위에 예쁘게 놓인 과일과 외인이 맞이했다. 그 뒤로 동굴 2개로 만들어진 방이 보였다. 얕은 왼쪽 동굴은 침대가 오른쪽 동굴은 어둠이 있었다.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천연 동굴이지만,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지저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벽을 이루는 바위 곳곳에는 조명이 은은하게 밝히고 있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이 책을 읽는 여유를 즐기기는 어렵게 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오른쪽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니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세면대가 있었다. 수도 꼭지가 있기는 하지만 자연 느낌이 난다. 더 안쪽을 보니 변기와 샤워기가 보였다. 동굴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이것들은 완전히 현대식이다. 다만 벽이 없이 오픈된 형태로 있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 안쪽으로도 방처럼 막혀있는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예쁜 디자인의 하얀색 욕조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천연 동굴의 분위기와 현대식 시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생각보다 더 독특한 호텔이다. 예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선택할 수 없겠지만, 이런 곳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경험에 가치를 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