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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Mar 24. 2022

어쩌다 대청소

봄이구나. 

봄은 봄인데 새봄 같지 않은 봄이 와 있었구나.

모를 리 없지만 무심함이 자리하니 건성건성 보여도 보이지 않아 가슴에 차지 않았구나.

날씨가 따듯했다가 쌀쌀했다가 오락가락 쭈뼛거리며 두서없이 엉킨 탓이다. 

뒤죽박죽 이상한 기후 탓이다. 아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겨울 탓이다.

탓, 탓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다 내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뾰족 솟은 새순들은 싱숭생숭 바람을 타고 봄의 소리는 지천에서 아우성이다.


투명한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니

웬만큼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 애써 모른 채 넘겨버렸던 뽀얀 먼지들이 눈에 밟혀 꽂힌다.

요즈음 와서 방치해버린 시간을 구제해줄 구실이 생겼.

오래간만에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벌인다.

편의상 갖다 붙이면 봄맞이 대청소다.

제일 만만한 냉장고부터, 책 정리, 옷 정리, 베란다 창고까지 들쑤시고 보니 버릴 게  무더기가 다. 

달인까진 못되어도 겉멋은 낼만큼 자신 있는 깔끔 떨기 정리정돈이다.

본 것은 있으니 냉장, 냉동고 속은 자잘한 플라스틱 정리함과 유리병들로 차곡차곡 줄을 세우고 찾기 쉽게 내용물 스티커를 붙여 다시 제자리에 둔다.

나름 정리를 하고 산다 해도 세 식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어쩌다 보면 제멋대로 자리를 이탈해서 엉뚱한 가 다. 특히나 요리 솜씨가 일취월장하고 있는 남편이 주방을 사용하는 횟수가 늘고 있어 뒷감당을 안 하면 말 그대로 엉망이 되는 건 순간이다.


 정리는 버리는 일부터 시작이다.

한차례 정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쌓여있다.

버리면 버린 만큼 채우기를 반복하니 어쩔 수 없다.

가뜩이나 벽면을 차지한 책장들로 막힌 방이 정리를 안 하면 정신이 사납다.

이번엔 남편에게 떠넘긴다. 제발 버립시다!

전공책이고 뭐고 먼지 쌓인 사회과학 책부터. 꼭 집어 말하고 보니 머쓱했지만 별수 없다. 

책은 재산이라고 툴툴대던 남편도 단념한 듯 니책내 가리지 않고 손이 덜 가는 책들을 골라낸다. 끈으로 묶고 보니 2백50권이 넘는다. 전에는 기증할 책이 많으면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에 연락을 하곤 했지만 최근엔 주로 재활용을 이용한다. 이번에는 남편 아는 분이 중고서점을 한다 하여 수거 여부를 알아보니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서점으로 보낸다고 하니 버리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창고는 일시정지가 이뤄지는 곳이다.

켜켜이 올라앉은 먼지를 눈으로 스캔한 후, 손을 댈까 말까 망설여지는 곳. 창고다.

버릴  새로 산 물건 박스가 대부분이다. 청소는 빈 박스만 치우는 걸로 오케이.

쌓인 먼지 닦고 문 닫으면 끝. 창고는 치워도 창고다.


옷 정리는 철마다 치르는 행사다.

계절을 보내는 작별 인사이고, 오는 계절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일쯤으로 여긴다.

철 지난 옷과 입을 옷의 교체는 각자가 챙기지만 세탁이 필요한 것은 한꺼번에 모아서 할 일이다.

세탁물을 분류해 놓고 순서는 세탁기에 맡긴다. 세분화된 세탁기의 기능과 성능은 말해 뭐하랴.

주무르고, 삶고, 말리기까지 일시에 해결해주는 만능이 아닌가.

말끔해진 옷들의 뽀송뽀송한 느낌이 좋다. 개운하고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어질러진 집안을 쓸고 닦는 일은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며 해주니 고맙지만, 보이지 않은 구석구석은 사람의 손이 가야 하니 뒤처리는 내 차지다. 뒷심은 약해도 마무리는 확실한 내 손이 가야 결국 끝이 난다.


날마다 어슷비슷하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상황을 굳이 구분해서 뭐하랴 싶다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똑같은 날은 없었다. 일상의 조건 반사 작용의 같은 되풀이도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하루는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모습의 일면이다. 그 안에 희로애락이 숨 쉰다.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오늘 하루 어쩌다 대청소로 마감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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