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감염*
신발 끈을 묶으려 네가 잠시 웅크려 앉았을 때
너의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어
잊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네 얼굴도 더듬었지
너의 이마와 코끝에 남은 그 아릿함 말이야
어둠 속에 넘어진 채 너의 이름을 울며 부르던
나는 네가 흉터인
오래되고 먼 시간
이제 너에겐 바다가 없구나
너와 밤바다를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어 기억은 아스라하고
가벼운 바닷바람이 얼굴에 닿는 건 어떤 느낌일까
둥글어지는 목소리로
나는 충분히 울었어, 내가 총총 돌아설 때
네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문장을 데리고 모래처럼 흩어져버릴 때
너의 무수한 믿음이거나 슬픔이거나
무수한 너의, 너의, 너의...
이건 습격과도 같아, 보이는 세계를 다 놓치고
푸르나 희거나 창백하거나
문득 펼쳐지는 장미 정원의
새까매지도록 바람에 나부끼는
*허수경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에서 제목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