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숙 Jan 03. 2025

우연한 감염*

우연한 감염   

  


신발 끈을 묶으려 네가 잠시 웅크려 앉았을 때  

너의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어 

잊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네 얼굴도 더듬었지 

너의 이마와 코끝에 남은 그 아릿함 말이야   

      

어둠 속에 넘어진 채 너의 이름을 울며 부르던 

나는 네가 흉터인  

오래되고 먼 시간  


이제 너에겐 바다가 없구나

너와 밤바다를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어 기억은 아스라하고

가벼운 바닷바람이 얼굴에 닿는 건 어떤 느낌일까 

둥글어지는 목소리로 

나는 충분히 울었어, 내가 총총 돌아설 때 

네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문장을 데리고 모래처럼 흩어져버릴 때      


너의 무수한 믿음이거나 슬픔이거나 

무수한 너의, 너의, 너의...       


이건 습격과도 같아, 보이는 세계를 다 놓치고

푸르나 희거나 창백하거나 

문득 펼쳐지는 장미 정원의      


새까매지도록 바람에 나부끼는    


     

  

*허수경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에서 제목 차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