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미케이 Jan 22. 2019

[리뷰] '고문 포르노'의 진화? 영화 <베스와 베라>

영화 감상기 #005

"I like to write stories (전 이야기 쓰는 것을 좋아해요)." - Beth(베스)


<시놉시스>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끔찍한 일을 겪은 어린 ‘베스’와 ‘베라’. 
  
사고 이후, 언니 ‘베스’는 자전적 소설을 출간하며 성공하지만, 동생 ‘베라’는 여전히 그날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괴로워한다.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절규하는 ‘베라’ 곁으로 다시 돌아온 ‘베스’. 하지만 끝내 끝나지 않고 되풀이되는 악몽 같은 현실과 엇갈린 진실은 두 자매를 점점 더 깊은 혼란에 빠뜨리는데…



영화 <마터스>로 국내 호러 마니아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파스칼 로지에가 돌아왔다. <마터스> 이후 전작에 비해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주를 이뤘던 <톨맨>이 있었고, 거기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거진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마터스>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었지만 그마저도 아주 죽을 쑤었다는 듯하니, <마터스>가 안겨주었던 충격과 공포, 그리고 마니아 층 한정 희열(...)을 잊지 못했던 이들에게 원작 감독의 귀환은 상당히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마니아 층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번 <베스와 베라>는 마터스에서 한층 힘을 뺀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대중과 마니아 사이에서 대중의 방향으로 아주 조금 노선을 튼 느낌인데, 이는 단순히 고통을 묘사하는 연출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 <베스와 베라> (출처 : 다음 영화)

호러라는 장르 속에는 다양한 하위 장르들이 존재한다. 그중 신체 훼손과 피, 가학성을 중점으로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영화들을 흔히 고어, 스플래터, 슬래셔 장르라고 부르곤 한다. 대표적인 고전작으로는 히치콕의 <사이코>가 있다. 저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하여 흥행과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도 한 몫하였는지, 이러한 장르의 영화가 2000년대 한창 양산되면서 붐이 일었고, 이때 만들어진 해당 장르의 영화들로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제임스 완 감독의 <쏘우>,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 라스 폰 트레이의 <안티크라이스트>,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파스칼 로지에의 <마터스> 등등이 있다. 그중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특징은 피해자가 상당히 무력하고, 영화의 분위기 중화를 위함인지 섹시한 여성 캐릭터가 많으며, 최종적으로는 발악만 하다가 결국 당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는 배드 엔딩이 많다는 점. 점점 이 장르가 영화에 중요한 다른 요소들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얼마나 잔인하고 참신하게 신체를 훼손하는지, 얼마나 비주얼적으로 충격적으로 만들지, 다시 말해 일종의 '쾌감'을 주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는 것이 타 장르 감독 혹은 평론가들의 의견이었고, 이러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 낮춰 부르기 시작한 단어가 바로 본 글의 제목에도 나온 고문 포르노(Torture Porn) 혹은 고어와 포르노의 합성어인 고르노(Gorno)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스와 베라> 역시 극 중 두 여성 주인공이 폭력과 흉기에 노출되며, 그 연출이 상당히 노골적이라는 점 등을 생각하면, 같은 맥락의 '고문 포르노 작품'의 하나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딸 베스와 어머니 콜린 (출처 : 다음 영화)

하지만 적어도 <베스와 베라>는 단순히 '고문 포르노 작품'으로 낮춰 부르기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단순 가학적인 요소는 <마터스>에 비해 상당히 순화(?)되어 진입장벽을 정말 한껏 낮췄다는 점과 더불어,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통찰이 저변에 깔려 있어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는 작품이어서, 공포영화로는 드물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그에 따라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에게 주어지는 물음표들은 모두 제각각이 된다. 누군가는 호러 영화의 근원에 다가감과 동시에 진화한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의 연출에 감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수많은 인형들을 보며 인간 착취에 대한 성찰을, 누군가는 여성주의적 성장기라는 해석 혹은 정반대로 이 영화가 여성 혐오 그 자체라는 해석을, 누군가는 극 중 등장하는 '작가들'이 영화 전체에 갖는 의미를, 또 누군가는 감독이 뿌려놓은 수많은 복선과 뚫어버린 제4의 벽을 해석하기에 여념이 없을 수도 있다.


영화의 묘미이자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이 너무 극 초반에 등장해 모든 해석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자니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위 문단의 키워드들이 본 작품 관람에 있어 이해를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기억해두고 보길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파스칼 로지에 감독 작품의 대전제 : 호러영화는 불편, 불쾌해야 한다.



정말 그렇다. 필자가 시사회를 다녀오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이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편해진다. 파스칼 로지에 감독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갑툭튀'가 많아 관객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류의 영화가 아니다. 천천히 스며들어 와서는 미간부터 찌푸리게 만들고, 불쾌함에 손발이 떨리고, 심장 어딘가를 바늘로 쿡쿡 찔러대듯 괴롭게 만드는 류의 영화에 가깝다. 그것이 단순히 비주얼과 비위의 문제일지, 사상 불일치의 문제일지, 혹은 그 이외의 다른 부분에 대한 것일지는 저마다 다를 것. 거기다 어째선지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의 상황과 감정, 충격과 고통마저도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한 이 먼치킨급 연출 능력은 너무나도 탁월하다. 공포영화를 잘 못 본다면 저 능력이 너무나도 싫어질 것이다.


과연 나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인가, 나의 비위는 얼마나 강한가를 알고 싶은 이들과, 호러 장르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단련을 하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남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파스칼 로지에야말로 당신이 찾던 감독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마터스>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적 경험 삼아 한 번쯤은 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선택은 여러분의 자유.


논란의 중심이 될, 그러나 다양한 해석을 발견할 수 있는 진화형 호러 영화 <베스와 베라>는 오는 24일 목요일 개봉한다.


물론 갑툭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마음의 준비는 해 둘 것. (출처 : 다음 영화)



P.S. 더 파고들지 못한 여러가지 '해석' 중에 가볍게 하나 던져본다. 영화를 혹시 보고 왔다면 맨 첫 줄에 있는 베스의 대사를 곱씹어보자. 무슨 생각이 드는가?

작가의 이전글 [리뷰] 영화 <더 서치>, 생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