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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케이 Jan 21. 2019

[리뷰] 시대를 앞선 감독의 흔한 소재 <내안의 그놈>

영화 감상기 #003

"니 엄마를 사랑한다" - 동현(의 탈을 쓴 판수)


사실 이번 글을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가 이미 지지난주 개봉해서 이번 주는 상영관이 현저히 적어지고 관심이 비교적 시들해졌다는 점과(요즘 브런치 조회수를 먹고 산다), 영화 <내안의 그놈>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지만 사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이 영화를 만든 강효진 감독이라는 점. "글을 써도 관심 갖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관람으로 이어지기는 할까?" 같은 고민 끝에 결국 내린 결론은, "뭐,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지 뭐"였다. 마치 저 몸으로 "니 엄마를 사랑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고백을 내뱉는 동현처럼. 하여튼 그러므로 영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잊을만하면 스멀스멀 다시 나오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마스터>, <범죄도시> 같은 전형적인 한국형 '범죄 액션 누아르.' 지난 글에서 다룬 <미래의 미라이>와 같은 '시간여행,' <내안의 그놈>과 같은 시기에 개봉한 <말모이>와 같은 '감동실화' 등등. 영화 <내안의 그놈>이 다루는 소재 역시 '바디 체인지'라는 익숙한 소재인데, 필자와 비슷한 또래인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태어난 이들은 아마 가장 먼저 청춘스타 정준의 <체인지> (1997)을 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거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센세이셔널한 흥행작 <너의 이름은.> (2017)과, 일본 드라마 <아빠와 딸의 7일간> (2007), 한국 드라마 초 흥행작 중 하나인 <시크릿가든> (2010)까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만큼이다. 심지어 <체인지>의 원작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82년 일본에서 개봉한 <전학생>이란 영화이니, 꽤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소재다. 요점은 결국 흔하디 흔하다는 것.

밑도 끝도 없는 바디 체인지란 소재는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소재가 아니기에 결국 승부는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걸려 있다. <내안의 그놈>의 선택은 단순했고, 효과적이었다. 소심한 고등학생 '동현'과 중년 조폭 겸 사업가 '판수'사이의 간극에 중점을 둔 코미디, 전문 용어(?)로 갭 모에(?)라고도 표현하는 이 무시무시한 이질감을 진영, 박성웅 두 배우를 포함하여 조연 역할의 라미란, 이수민, 이준혁 배우의 훌륭한 연기로 소화해냈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오는 웃음 포인트 호흡이 적당한 간격으로 쭉쭉 이어져, 시사회도 아니고 관람객이 적은 평일 저녁 극장에서 여기저기 거리낌 없이 빵빵 터지는 진귀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 어려운 걸 <내안의 그놈>이 해냈다. 이 영화, 웃길 줄 안다.


하지만 따악 거기까지. 그 이하의 아쉬운 영화도 아니고, 그 이상의 특별한 영화도 아니다. 킬링타임, 팝콘 무비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소화하나, 꼭 한번 봐야 하는 영화의 반열까지는 올라서지 못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나, 생각보다 분량이 적었던 박성웅 배우와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이준혁 배우를 제외한 타 캐릭터들은 평소 배우들의 이미지에서 크게 바뀌지 않고, 연기 면에서도 기대치를 충분히 채우기는 했으나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데이트, 가족 영화로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저 캐치프레이즈는 사실 현실에서도 무게가 상당한 문장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사실 <내안의 그놈>보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강효진 감독 쪽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사실 '<내안의 그놈> 감독이 이걸?'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당시 흔치 않던 여성 원톱 영화로, 신은경 배우 주연 <조폭마누라>의 각본을 시작으로 감독은 본인의 작품 세계를 주로 여성 배우 중심으로 만들어 왔으며, 다루는 소재 역시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복수, 강간, 노인 등 결코 가볍지 않고 현실적인 소재가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시리즈물로 만들어진 <나쁜 피>가 있는데, 1편은 강간과 복수를 다루고, 2편은 복수에 이어 학교 폭력을 다루는 데다가 흔히 봐 왔던 구조인 남학생 가해자, 여학생 피해자 구도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무거우면서도 참신한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그뿐이랴,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해 이종격투기(!)를 배워 남편을 쓰러트린다는 내용의 <펀치 레이디>와, 여성 노인을 주축으로 생각지도 못한 '은행털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육혈포 강도단>까지. 영화의 만듦새와 완성도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이야기할 수 없다만, 간단한 필모그래피를 살펴본 바로는 다루기 어렵고 무거운 소재, 그리고 아무도 다루지 않는 소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르들을 보고 있으면 <육혈포 강도단>과 <패밀리 맨>을 제외하고는 바로 그 전작인 <양아치 느와르>까지 이전 작품들은 <내안의 그놈>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언급된 모든 영화들은 사실 최근 영화계에 불고 있는 '강인한 여성상''성 역할 개념 타파'의 바람이 한국에서 불기도 전부터 제작되고 개봉한 영화들로서, 어찌 보면 강효진 감독은 설령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감독이었다. 물론 요즘 나오는 영화들과 함께 이러한 관점에서 비교해본다면 상당히 범위가 넓고, 깊이가 다르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식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효진 감독이 몇 년 전부터 여기에 주목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서도 현시대에 흐름에 높게 평가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많은 독립영화가 그렇듯 흥행은 크게 하지 못했고 또 당시에는 저평가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이나, 지금의 시대에 맞추어 다시 한번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작품들이 아닐까라고, 아직 영화를 직접 본 것도 아닌 필자가 감히 이야기해본다 (어서 시간을 내 강효진 감독의 전 작품들을 감상해 봐야겠다).






흥행 대박 나시길 바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한 감독이 같은 색을 유지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매너리즘은 물론이고 본인이 본인의 작품 세계와 능력을 가둬놓는 일로 연결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주목하는 본인의 결을 유지하면서 <미쓰 와이프>나 <육혈포 강도단>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감독 본인의 '감을 살려두기 위한' 노력이지 않을까. 물론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 본인이 원하는 작품만 만들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안의 그놈>은 비록 소재는 아쉬울지언정, 감독 본인에게 있어서는 호흡을 바꾸는 중요한 단계의 하나이자, 각본만 맡았던 <조폭 마누라>를 제외하면 흥행면에서도 진입 장벽이 낮아 타 작품보다 앞서 나가는 듯 보이니, 본인 그리고 관객들에게 있어 좋은 작용을 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훑어보고 있으니, 다음에는 어떠한 이야기로 찾아올까, 하루빨리 강효진 감독의 다음 작품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계속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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