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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공간의 디테일

건축가의 공간읽기

by 윤소장

거주 만족도의 기준을 꼽으라면, 집 근처에 맛있는 빵집과 커피집, 그리고 산책할 공원이 하나씩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 기준에 딱 맞는 베이글집을 최근 호남대 근처에서 발견했다. 이름은 미세스 베이글. 학교 교수님이 선물로 주신 베이글과 학교 행사에서 간식으로 나온 스콘을 먹어보고 바로 ‘어, 이 집 좀 된다’ 싶었다. 베이글도, 크림치즈도, 스콘도, 음료까지 전부 맛있었다. 이 정도면 한 번쯤 찾아가볼 만한 맛집이다.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라 어느 날 마음먹고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매일 지나는 길인데 간판이 없는 데다가 골목 안쪽이라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곳이다.
막상 들어가 보니 빵의 종류가 꽤 다양했다. 플레인부터 올리브까지 5가지 정도의 베이글이 있고, 스콘과 샌드위치, 크림치즈도 종류가 여러 가지. 거의 베이글 전문점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첫 주문은 베이글 세트였는데 감자스프도 괜찮고 커피도 맛있어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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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기다리며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우드와 화이트톤의 단정한 인테리어, 곳곳에 놓인 식물, 전창 너머로 들어오는 따뜻한 자연광. 높은 층고 덕분인지 공간이 더 넓어 보이고, 흰 벽에 붙어 있는 작고 앙증맞은 그림엽서들이 은근히 시선을 붙잡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물 마시는 곳에 있는 티슈가 날아가지 않도록 올려둔 조그만 돌 — 그게 알고 보니 ‘작은 베이글 모양을 직접 구워 굳힌 것’이었다. 아, 이 집 주인장의 손길이 이 섬세함에 다 담겨 있구나 싶었다.

바닥은 갈색 콩자갈인데, 그 선택이 아주 탁월했다. 만약 흔한 타일이나 에폭시였다면 차갑고 딱딱했을 텐데, 이 콩자갈 바닥 덕분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주문받는 창도 리프트업 방식이라 개방감이 좋고, 어딘가 푸드트럭 같은 캐주얼한 온기가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사람은 역시 꼼꼼한 사람이었다. 주문을 받을 때도 말투가 부드럽고 느긋해 급한 기색이 전혀 없다. 12시간 숙성된 베이글처럼 그 공간 전체가 포근하고 차분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도 자연스레 ‘느긋하게’ 즐기게 된다. 어떤 공간은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빨리 먹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여기는 오히려 한 템포 쉬어가라고 말해주는 듯한 여유가 있다.

동네에 이런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이 참 반갑다.
살면서 누리는 만족도는 결국 이런 작은 발견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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