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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검사

건축가의 공간읽기

by 윤소장



100-081 준공검사


<우주를 짓다>에서는 건축의 시작을 ‘건축주와의 만남’으로, 마지막 장면을 ‘사진 찍는 날’로 그렸다.

하지만 건축사의 실제 마지막 의무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바로 사용승인, 즉 준공검사를 통과하는 일이다.


사용승인은 건물이 허가도면대로 정확히 시공되었는지,

위험 요소는 없는지,

이를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다.

감리자의 준공검사 → 관청의 사용승인 절차로 이어지는 구조이지만

실무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문제는 ‘검사’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다.

위법이 없어도, 해석의 미묘한 차이 하나로 곧바로 보완지시가 떨어진다.

민원과 비슷하다.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못 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특검"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느낌상 특별검사같은

그만큼 사용승인은 일종의 권력 행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용승인 현장은 크게 두 종류다.


눈에 불을 켜고 흠을 찾는 타입

– 도면의 한 줄, 규정의 한 단어까지 들추며 보는 검사.

– 이런 경우는 설계자와 시공자 모두 긴장도가 올라간다.


‘집 구경하듯’ 보는 타입

– 동료 건축사가 보더라도 설계가 정교하고, 시공이 성실한 집은 금세 티가 난다.

– 이럴 때는 묘하게 여유가 흐르고, ‘아, 잘 지었구나’ 하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 물론 절차는 지킨다. 하지만 눈빛에 감탄이 살짝 섞인, 그런 검사.



평담재는 그 두 분위기가 절묘하게 뒤섞인 케이스였다.


평담재의 준공: “이런 황당한 요청은 처음이야”

평담재 건축주는 이미 이사 날짜를 딱 맞춰놨었다.

문제는 현장 정리가 이사 직전에야 끝났다는 것.

결국 이사 이틀 전에 온라인으로 사용승인 신청을 넣었다.

보통은 대리 건축사 지정하는 데 며칠,

현장심사까지 또 며칠이 걸린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아예 없었다.

사용승인 전에 입주하면 불법이 되니

건축주와 나는 거의 필사의 마음으로 군청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 결과, 그 자리에서 바로 대리 건축사가 지정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건축사님께 내가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송구한데…

내일 바로 현장 심사를 해주셔야 합니다.


상대방의 숨이 ‘하아…’ 하고 길게 들렸다.

목소리만 봐도 표정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뭐 이런 무례한…’)

게다가 설계자인 내가 전남 지역 건축사도 아니고 서울에서 왜 시골의 집을 설계했냐며

당연히 속으로는 ‘참 기가 막히는 요청이네’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약속대로 일찍 오셨다.

보통 설계자가 동행할 필요는 없지만

건축주와 내가 직접 안내하며 설명을 드렸다.


그러다 문득, 그 건축사님 표정이 부드러워졌는데

나중에 들으니 우리를 보며 친척이라고 착각하셨다고 한다.


왜냐면:



둘이 닮았고 (흰머리가 있는 것이?)

서울에서 설계했고

사정이 급한데도 둘이 너무 절박하게 설명하니

“아… 집안일이구나…” 하고 오해하신 것.

우리는 정정할 틈도 없이

그 ‘이모네 집 설계한 조카’ 역할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덕분에(…) 건축사님은

거의 집 구경하듯 천천히 둘러보시고

당일 바로 사용승인을 내주셨다.


그날 평담재는

이사도 지키고, 법도 지키고,

건축가와 건축주는 갑자기 친척이 된 하루였다.


오늘이 평담재 준공일이라

그때의 황당하지만 사랑스러운 추억을 꺼내본다.

이모네 집 같은 평담재의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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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윤주연

호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건축사무소 적정건축ofaa 창립자

<우주를 짓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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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o4a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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