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마지막...일까요?...
50번째 글을 쓰기까지 수없이 많은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 수많은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수없이 많은 날들이 지났다. 그 날들이 지나야 비로소 당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내게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늘, 그토록 절실하고 간절하게 당신을 원했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할 수 있던 그 순간부터 나는 늘 당신과의 마지막 순간만을 준비했다.
나는 당신과의 영원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당신과 함께하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당신과의 영원을 꿈꾼 적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당신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당신과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당신을 떠났다가 당신에게 돌아오기는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순간은 바로 당신 옆이라는 것을.
덕분에 나는 당신을 보내기가, 당신을 떠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어쩌면 한편으로는 미련이었는지도, 한편으로는 집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비참한 그 시간을 당신과 함께 했기에, 그래서 나는 당신을 놓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기다린 당신과의 마지막이기에 나는 조금 더 솔직해보려 한다. 나는 당신과의 마지막을 생각했으나 사실은 단 한 번도 당신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오래 살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막상 정말 죽음을 생각했을 때, 그때 나를 잡아서 일으켜 세워준 건 당신이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비참하고 처절한 시간을 보낼 때 나를 버티게 한 것이 당신이었음을 알았다.
당신과 함께한 그 모든 순간들은 내게 기쁨이었지만 고통이었다.
내가 종종 당신을 떠났던 이유는 바로 사람 때문이었다. 당신과 함께 하면서 만난, 당신 옆의 사람들은 나를 너무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상처를 받고 당신을 떠나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내게, 인간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내게, 그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내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이토록 깊은 상처에도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도저히 당신을 떠날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게 당신은 전부였다. 내게 당신은 나였다.
어쩌면 당신과 나는 지금 그 마지막을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당신과 나는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을 쓰면서 평소처럼 글을 써야 할지, 편지글을 써야 할지, 꽤 오래 고민했어요. 한편으로는 더 멋있게 잘 쓰고 싶은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더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이 둘 다 있기도 했고요. 그렇게 고민하면서 오래오래 쓰다 보니 사골국같이 진솔한 이야기에 가까운 글이 된 것 같아요.(착각일까요?...) 그래서 글이 조금 길어졌어요.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신 분들은... 혹시 알고 있으셨을까요. 어쩌면 혹시 눈치를 채셨을까요?
제가 당신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함께할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은데, 첫눈에 운명이라고 믿었는데, 그럼에도 제가 당신과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요.
얼마든지 그만둘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걱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일을 그만두지 않았어요. 가족들이 걱정한 건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이 일이 특성상 단기간에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생계유지가 쉽지 않았거든요.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해온 저를 두고, 누군가는 제가 우직하다고, 또 누군가는 제가 성실하다고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우직하지도, 그렇게 성실하지도 않아요. 다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혹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이 일이었던 것뿐이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일을 했냐고 물으시겠죠?
이것밖에는 답이 없네요. 제 운명이 저를 이 일 앞에 데려다 두었거든요.
이 일을 하려면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갈 정도로 힘든 그런 순간들을 거쳐야 했어요. 이 일을 하기까지만 해도 쉽지 않았던 제 삶이 이 일을 하게 되면서는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풀리고는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운명이라고 포장하고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하게는 지금도 운명이라고 믿고 있고 여전히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한 번에 그만두기는 참 어렵네요.
중간에 여러 번 그만두고 돌아오기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거든요. 이 일 자체를 그만두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굳이 말하면 이 일과 같은 분야지만 제 직위와 역할이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새로운 역할을 위해서 그동안 해왔던 일을 잘 정리해야 하는 순간인 거죠. 그런데 그 정리라는 것이 제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아요. 이 일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제 마음의 문제도 컸던 것 같아요. 미안함과 아쉬움 탓이죠. 이 일을 더 잘 해내지 못한 아쉬움과 그 시간 동안 저를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이 늘 문제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며칠 밤을 새우더라도, 앞날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더라도,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순간들이 좋았거든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침 선을 보고 결혼을 생각하게 된 사람, 짧게 만난 "당신들"이 있고는 했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적당한 당신들과 적당하게 결혼하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제와 보면 그 적당한 당신들과 결혼하지 않은 게 제 인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을 돌린다면 그때 만난 그 누구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일을 하면서 만난 그 지독한 사람들이 끔찍하게도 싫었고 여전히 싫어요.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만났어요. 그런데 지독한 사람들은 제게 주기적으로 상처와 충격을 주었고, 그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는 도저히 상쇄될 수 없었어요.
어떤 상사의 막말은 제게는 여전히 상처가 되네요. 꽤 오래전 일임에도 제가 그 막말을 듣던 그 순간이 여전히 생생할 만큼이요. 다행히도 제가 들었던 그 막말이, 기분이 행동과 말이 된, 프로답지 못한(이렇게라도 험담합니다) 상사의 잘못임을, 제 잘못이 아님을 알아주던 동료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상사는 제 일을 훔쳐갔어요. 아마도 대부분은 그 상사의 작업인 줄 알고 있을 그 보고서는 제가 오랜 시간 공들인 결과물이었어요. 이런 일이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고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기는 한다고 그렇게들 말하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힘드네요. 다만 막말과는 다르게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 이 되기는 했어요, 제가 나태해질 때 마다요. "그 도둑놈 따위에게 질 수 없다"라는 마음으로 일을 했거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제가 이 일을 해온 건 제가 그만큼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요. 이 일을 할 때의 제가 가장 반짝인다는 사실을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물으실 수도 있으실 테고 어쩌면 누군가는 짐작되는 일이 있으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말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해왔음에도 저는 아직 저렇게 지독한 상사들에 비하면 을이라서요.
언젠가 제가 니테오라는 이름 대신 제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죠?... 아마 50번째 글을 썼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좌 클라리스 벡켓(Clarice Beckett, 1887-1935), <세인트 킬다 로드의 오후(Evening, St Kilda Road)>, 1930년경, 33.8x39.5 cm,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Sydney)
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장미가 있는 과수원(Orchard With Roses)>, 1911-1912년, 캔버스에 유채, 110x110cm, 개인 소장
50번째 글을 쓸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글을 쓸 수 있어서 오랜 시간 함께 해오던 일을 잘 정리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조금 더 정리된 상태로 쓰고 싶었는데 정리를 하기엔 복잡한 상황들이 많네요.
저는 아직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이 캄캄한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이것마저도 미화된 것 같아요, 아마 진흙 구덩이에서 어떻게 올라올지 고민 중이라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가 봐요, 50편째의 글을 쓰기까지 제게는 여전히 클라리스 벡켓(Clarice Beckett, 1887-1935)의 그림, <세인트 킬다 로드의 오후(Evening, St Kilda Road)>가 안개가 낀 새벽으로 보여요. 제목을 보니 노을이 진 오후인 듯하여 놀랍더라고요. 제 마음 탓이겠죠.
그럼에도 저는 다음 50편의 글을 쓸 수 있을 때 즈음에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그림 <장미가 있는 과수원(Orchard With Roses)>처럼 장미향 가득한 그런 순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해볼까 해요.
글을 읽어주신 분들의 시간들도 장미향 가득한 순간이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