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라이팅클럽 2주차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오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손님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비 와서 출근길도 힘들 텐데 괜찮으면 하루 쉬고 내일 출근할래? 빗소리에 잠에서 깬 현은 내심 쉬고 싶으면서도 돈은 벌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침 일찍 와있는 문자에 고민하다가 커튼을 열고 한참 동안 밖을 바라봤다. 습기를 머금어 머리카락이 꼬불거리는 것도 싫고 꿉꿉한 건 극히 혐오하는 터라, 하루 쉬고 내일 출근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왕 쉬는 거, 늦잠이나 자야지. 무료한 휴가를 얻은 현은 여느 휴일과 달리 침대에서 보내기를 선택했다. 비가 와도 남들은 다 출근하는 월요일에 가만히 누워 핸드폰만 하던 것이 화근이 될 줄도 모르고.
선재, 이번에 로스쿨 합격했다더라. 희주 기억하니? 왜 니들 어릴 때 같이 캠핑 갔었잖아. 삼성전자 붙었는데 연봉이 얼마 래더라. 조금만 하면 우리 아들도 충분히 붙을 것 같은데. 너도 공부 잘했잖아. 네가 학벌이 부족하니, 젊은 놈이 못할 게 뭐 있어? 자신감을 가ㅈ… 주파수 맞지 않은 라디오를 켜 논듯 준석의 말이 지지직거리며 튕겨 나갔다. 현은 계속 신경 쓰이던 손끝의 거스러미를 잡아 뜯었다. 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느낀 준석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늘어지는 잔소리를 참지 못하고 현은 결국 삭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 한 번도 자신감 없었던 적 없어. 좋은 대학 나와서 적당히 알만한 회사 들어가고, 괜찮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애는 한 둘쯤 낳고.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했잖아.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축의금 많이 내는 거면 다 부질없는 거야 그거. 다 아빠 욕심이라니까?
내뱉은 만큼 삭히지 못한 감정에 결국 집을 나섰다. 여전히 내리는 비에 바짓단이 금세 축축하게 젖어 든다. 한숨 쉬던 준석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웅덩이에 둥둥 떠다녔다. 갑자기 등 떠밀려 낭떠러지 앞에 선 기분. 그저 모든 게 가벼웠으면 좋겠다. 피해 갈 수 없이 큰 웅덩이를 마주한 현은 크게 숨을 내쉬곤 조심히 발을 담갔다. 발이 젖는 게 끔찍이도 싫었는데, 정강이까지 잠기자 묘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온몸이 잠기면 더 편안할까? 생각하던 현은 발가락 틈으로 스며드는 모래를 씻어내려 발을 휘저었다. 움직일수록 가라앉아 있던 모래가 떠올라 웅덩이는 탁해졌고 모래가 발 전체를 덮었다.
치열하게 살지는 않아도 매 순간 성실했으니, 부끄러움은 오로지 준석의 것이라 생각했다. 현은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살을 견디지 못해 다리가 휘청였고, 체험 삶이 곧 종료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 이번 삶은 결국 물이 되는 건가. 아직 인사 못한 존재들로 놓지 못한 내일, 넘실거리는 물속에서도 현은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힘을 주면 줄수록 답답함이 목을 죄어왔다. 현은 스스로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온몸에 힘을 뺐다. 이내 형언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그를 감쌌다. 마치 정말 물이라도 된 듯, 현은 자유롭게 그곳을 유영했다. 무엇을 어떤 이유로 억누르며 살아왔는지 잊어버린 채 현은 그렇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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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비라이팅클럽의 2주차, <체험 삶의 현장>을 글감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