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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Feb 26. 2019

쇼호스트의 말하기 6

- 나는 뱅뱅을 입는다

뱅뱅 PT 중

나는 뱅뱅을 입는다

20대 후반의 새파란 신입 쇼호스트였던 나는 방송 상품 공부를 하다가, 지금도 홈쇼핑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대한민국 쇼호스트 1호 선배님께 질문했다. 


“선배님, 방송하는데 어떤 상품은 도저히 제 마음에 차질 않는데 이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모든 상품이 다 네 마음에 들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상품이 꼭 필요할 거야. 그런 마음으로 준비해~”

“아~!!! 네... 알겠습니다^^”


간략한 말씀이었지만, 내가 아는 한 쇼호스트의 일과 홈쇼핑에 대해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신 선배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머리로는 이해된 듯 하지만 가슴에 깊숙이 와 닿지는 않았었다. 언뜻 알 것 같으면서도, 그런 상품을 만나면 방송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가 고민이었다. 담당했던 많은 상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어떤 건 너무 싼 티가 나고, 어떤 건 소비자가 왜 이걸 사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떤 건 상품설명서보다 기능이 별로였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서 그냥 열심히 방송한 게 수년이다. 


어떤 쇼호스트는 전략회의 자리를 벗어나 쇼호스트실로 돌아오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보기엔 쓸모 있어 보이는 상품인데, 이런 걸 대체 어떻게 파냐고 신경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소비자들은 뉴스 댓글 창에 홈쇼핑과 홈쇼핑 상품을 조롱하기도 한다. 저런 걸 대체 누가 사냐고 비웃는다. 


20대의 나는 침묵했겠으나,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그것을 원치 않고, 수준이 낮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상품이 꼭 필요한 ‘사정’과 ‘눈’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살아온 가정환경과 형편, 소비에 대한 가치관 때문에 그 상품이 안목에 차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냉장고를 백화점에서만 판다면, 외벌이 가장은 딸보다 나이가 더 많을 정도로 오래된 냉장고를 바꿔야겠다는 아내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명품 브랜드 시리즈 스토리까지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 기본 스타일과 편안함 그리고, 가격적인 메리트를 갖고 있는 홈쇼핑 의류에 찬사를 보낼 일도 만무할 것이고. 

부품을 사서 직접 조립할 정도인 ‘덕후’나 전문가급 사용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가성비가 좋은 홈쇼핑 컴퓨터를 파는 쇼호스트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구입할 일도 없다. 


요즘에는 프리미엄급 상품들과 저가의 상품들이 구색을 갖추며 홈쇼핑 방송에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란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소비에 대한 ‘가치관’을 갖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사는’ 행위를 한다.


나는 뱅뱅을 입는다. 오프라인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내셔널 진 브랜드이지만, 홈쇼핑에서 주된 고객인 40~50대가 남편, 아들, 아버님 입히려고 대단히 많이 구매하는 청바지 브랜드다. 패셔니스타들이 입는 ‘핫’한 브랜드나 핏은 아니지만,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은 원단과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 패턴의 청바지를 매 시즌 다양하게 선보인다. 정말 편하다. 


집에서는 내가 팔았던 냉장고에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고, 내가 소개했던 TV를 보고, 내가 팔았던 에어프라이어로 맛있는 간식을 해 먹으며,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내가 팔았던 운동기구 위에서 땀을 흘린다. 밤이면 내가 판 베개와 매트리스 위에서 숙면을 취하고, 아침에는 내가 판 건강식품들로 하루를 연다. 아내는 내가 판 물걸레 청소기와 무선 진공청소기로 살림을 하고, 나는 지금 내가 판 노트북 자판을 눌러가며 글을 쓰고 있다. 

생활의 모든 부분을 홈쇼핑 상품으로 채울 수 없지만, 내가 판 상품들이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잘 사용되고 있다. 


큰 맘먹고 샀던 한 벌에 20만 원 하는 청바지도 있지만, 3종 89,000원 하는 뱅뱅을 비롯한 홈쇼핑 옷들도 많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홈쇼핑 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청바지 브랜드는 뱅뱅이다. 내가 판다. 10년 전에도 뱅뱅을 팔았지만, 지금 뱅뱅을 더욱 ‘잘’ 파는 사림이 되었다. 막연하게 가성비가 좋다는 마음으로 팔던 시절보다 일상을 함께 하며 그 진가를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된 사람의 외침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즐겨 써보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가서 하는 말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고, 비교적 수입이 많은 쇼호스트 중 일부는 ‘자신의 눈’으로만 상품을 바라보고, 판단을 내린다. 무작위로 주어지는 일이니까 방송은 하되, 진심이 담긴 방송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말을 하기에 앞서, 이 상품은 누구를 향해 있는 가를 알아야 하고, 자세히 알아야 한다. 자세히 알려면 즐겨 입고, 쓰고, 물어야 한다. 명품을 향유하는 사람도 일반적인 홈쇼핑 상품을 잘 소구 할 수 있다. 그러나, 명품만 쓰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다.  


나는 ‘뱅뱅’을 입는다. 뱅뱅이 당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뱅뱅을 입어야 하는, 입으면 좋을, 사람들에게 내 느낌과 생각을 말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뱅뱅을 입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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