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삼십대 일 때는 그렇게 결혼식에 갈 일이 많더니, 40대 중반이 되니 부고를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우리 일터를 떠난 동료 부친의 부고를 받았다. T맵에 송탄의 한 병원을 검색했다. 송탄은 어디 있는 곳인가. 지금 출발하면 1시간 35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아울러 지금 나는 청바지 차림에 검은색 점퍼를 입고 있어 장례식장을 찾기에 적절치 않은 복장이다. 발인은 모레인데, 내일은 전혀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지금 가자' 시동을 켜고 송탄에 달려가기로 한다.
며칠 전에도 상가에 다녀왔다. 전에 모시던 사업부장님 부친께서 작고하셨다는 부고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왔다. 환절기에는 어르신들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유독 많이 접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에도 잎이 달리고, 꽃이 피는 계절이다.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에 접하는 부고는 유독 슬프다.
한 분은 동료였지만 자주 어울리지 못해 그리 친하지는 않았고, 다른 한 분은 사업부장으로 모셨으나 코드가 너무 달라 함께 일하는 동안 별로 유쾌했던 기억이 없던 분이다. 그럼에도 한달음에 먼 길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문상이라는 행위가 요식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상주에겐 큰 위로이기 때문이다.
"경사(慶事)는 몰라도 남의 애사(哀事)에는 꼭 가보그라"
아버지 말씀처럼 철든 이후로 정말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애사(哀事)에는 꼭 참석하려 노력한다.
서먹한 사이고, 좋지 않은 관계라 하더라도 부친의 영정사진 밑에서 문상객을 맞이 하는 상주를 만나면 뜨겁게 손을 잡아주게 된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기도 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여러 애경사에 참석하게 된다. 선후배, 동료, 상사, '갑' 당사자들의 결혼, 그 이들의 가족의 죽음까지 찾아가 볼 일이 많다. 부조를 얼마나 해야는지, 거리와 시간문제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언제나 헷갈리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찾아가 상주를 위로하는 일을 선택한다.
모친께서 작고하신 지 10년이 되었다.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모친을 살뜰히 살피지도 못하고,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 못했던 것이 아직도 죄스럽다. 머리가 멍하고, 온몸의 세포는 서럽게 울기만 했다. 부음을 듣고 찾아와 준 동료들, 지인들이 아니었다면 그 3일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는 누군가의 부고를 접하면 형식적인 의무감에 장례식장으로 향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이후에는 조문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옛 동료와, 옛 직장 상사분의 손을 꽉 잡아 주는 동안, 내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졌길 바란다. 나와 얘기 나눈 짧은 시간 동안 고인이 되신 아버님에 대한 미안함, 자책감, 슬픔 모두 잠시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상주들도 나처럼 한동안은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면을 끓여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감정의 북받침에 통곡하기도 할 것이다. 상주를 찾아 위로하고 잠시 얘기 나누며 그이의 고통의 짐을 잠시나마 덜어 주는 일이기에 거리가 멀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다녀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한 것 같아 뿌듯하다.
"너는 뭐 그렇게 열심히 다니냐" 라고 묻는다면 난 상주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 그렇다고 답한다.
앞으로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갈 것이다. 지금처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낮에는 포근하다. 꼭 이 무렵이면 부고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부친의 건강이 염려된다. 안부전화라도 더 자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