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쓰는가?
쇼호스트는 제품에 숨결을 입혀 상품으로 만든다. 때론 몸짓하나가 열마디 말보다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에 쉽게 파고든다.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매일 ‘시청자’를 ‘고객’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벌써 19년 째다.
처음에는 무척 쑥스러웠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두려운데, 짧은 시간 동안 고객에게 상품의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을 사도록 설득해야 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하나의 방송을 마무리 짓고 나면 내가 나랑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물었다. 쇼호스트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 나는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언론사 지망생이었다. 입사를 희망하던 방송사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실업자였고, 28살이라는 나이의 무게와, 노부모님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상품 소개 및 판매 방송이라 할 지라도 진행자의 역할은 비슷할 것이니, 아나운서 준비를 오래 해 온 만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마음으로 쇼호스트 시험에 응시했고, 현대홈쇼핑 1기 쇼호스트로 덜컥 붙었다. 인생은 참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홈쇼핑 방송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내가 홈쇼핑 방송의 진행자가 되다니.
살림도 모르고, 쇼핑에는 관심도 없으며, 영어공부, 상식공부, 방송공부만 했던 28살의 남자 쇼호스트가 직접 경험한 홈쇼핑 방송은 매우 높은 벽과 같았다. 손에 물 한번 안 묻혀 본 백면서생이 살림에 도가 튼 고객들을 상대로 청소기, 냄비, 프라이팬 등을 팔아야 하니 고객들 눈에 얼마나 어설펐을까. 마케팅 전문가인 홈쇼핑 PD와 MD들 눈에는 또 얼마나 애송이처럼 보였을까. 그 시절을 돌아보면 늘 쑥스러울 뿐이다.
그랬던 그가, 19년 차의 쇼호스트가 되었다. 이제 막 들어온, 그리고, 경력 2~3년 되는 쇼호스트 후배들이 방송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올 때마다 묻는다. 선배님, 어떻게 하면 선배님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방송을 더 잘할 수 있을까요?
방송 전날엔 스트레스와 긴장, 방송 준비 때문에 잠도 못 자던 그 총각이 어떻게 지금은 상품을 가지고 ‘놀며’, 고객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돌이켜보니 1년 평균 300회 남짓의 생방송을 했고, 어떤 방송은 두 시간, 세 시간씩이기도 하니 1년 동안의 평균 생방송 시간은 500시간이 넘는다. 17년이면 9000시간, T커머스 채널로 이적한 지 2년이 넘었고, 한 달 평균 20여 회의 녹화를 해냈으니, 500~600시간이 더해진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기에 그렇게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 1만 시간 동안 상품공부하고, 리뷰하고, 방송하고, 비판과 칭찬도 받다 보니 정신력이 강해지고, ‘말기술’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상품에 대한 데이터와 정보가 쌓였으며, 설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홈쇼핑 고객들의 삶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홈쇼핑의 주 고객층과 소통할 수 있는 비슷한 연배의 나이가 되었기에 후배들에게는 ‘잘’하는 쇼호스트처럼 보이는 것이리라.
후배의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사러 갔을 때 내 구매욕을 떨어트리곤 했던 매장의 담당 직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담고 싶었다. 스피치의 이론, 특히, 설득의 방법, 세일즈 화법 등에 대해서 공부해 왔던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5~7분 간 아무 간섭과 대본 없이 상품의 특장점을 설명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쇼호스트의 말하기다. 무엇이든 잘 파는 세일즈맨 쇼호스트의 말하기에 들어있는 스토리텔링, 설득, 말하기 구성의 방법을 보여주고 싶다.
제목을 ‘1조를 파는 세일즈 스피치 비법’으로 해볼까 생각했다. 벌써 17년 전, 40분 만에 에어컨 16억을 팔아보기도 했고, 전산화면에 찍히는 금액으로만 따지면 한 번의 보험방송에서 수십억 어치를 판 경험도 있으니 장사가 잘 되는 제목으로 포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쇼호스트의 스피치 하나만으로 그 미친 매출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잖은가. 쇼호스트는 상품 포장을 잘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거짓말쟁이’는 아니기 때문에 얌전한 제목으로 글을 시작한다. 처음 노트북 자판에 손을 얹었을 때의 결심처럼 ‘모든 것이 세일즈’인 시대에 후배들과, 무엇이든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데 ‘말’하고 설득하기가 힘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