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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Dec 14. 2022

3. 2022년에 끝난 2번의 연애

발달 과업 이전에 챙겨야 하는 건 내 마음이다.

벌써 다음 주면 2022년의 마지막 달이다. 올 한 해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의미 있는 사건들을 곱씹어야만 할 것 같은 게 또 연말의 감성이다. 어김없이 생각에 잠긴다. 2022년에는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가끔은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얼마나 더 성장하고 느끼고 배우려고 일들이 빵빵 터지는 거지.' 생각했다.
두려운 것은 아직 찐으로 12월이 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놈의 의미 있는 일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이나 남아있다. 의미 있는 일을 왜 이렇게 싫어하냐고? 의미가 있으려면 평온했던 삶이 얼마간 뒤집어진다는 말이니까. 상황이 마무리되고 깨우침을 얻기까지는 눈물 콧물 쏙 빼야 한다는 말이니까.


2022년 나는 2번의 연애를 끝냈다. 2라는 숫자가 4번이나 반복되는데, 의도한 건 결코 아니다. 2022년이니깐 2번의 이별을 해야겠다고 계획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1월에 한 번, 8월에 한 번 해서 총 두 번의 이별이다. 1월은 4년을 만났던 사람과의 연애였다. 8월은 7개월을 만난 사람과의 연애였다.
4년의 장기간에 이루어진 연애가 끝났을 때 더 아팠을 거라고 예상할 거다. 실제로 장기연애가 끝났다는 말을 전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근데 아니었다. 4년의 연애가 끝나고 나서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 사람이 듣기에는 서운할 수 있는데, 울지도 않았다. 헤어지고 나니 마음이 허하긴 했는데 그뿐이었다.
7개월의 연애가 끝나고 나서는 내가 한 사람 때문에 이토록 많이 울 수 있음을 알았다. 너무 많이 울었다. 헤어지기로 다짐한 날, 말한 날은 물론이고 며칠 전까지 펑펑 울었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두 연애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으니 이런 시답잖은 분석 글을 써본다. 의미 있는 두 이별을 통해서 내가 배우고 느끼고 성장한 점을 써본다.

4년의 연애를 마무리하고 나니 너무 혼란스러웠다. 비슷한 감정을 언제 느꼈나 되돌아봤는데, 첫 임용시험에서 떨어졌을 때였다. 막막했다. 이제 누굴 다시 만나서 다시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할까. 그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사람과의 헤어짐은 그간 내가 갖고 있었던 인생의 청사진이 사라진 거였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니다. 가정 교과서에는 스턴버그라는 사람이 사랑의 삼각형을 열정, 헌신, 친밀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이 조금 흐려질 수 있지만, 헌신과 친밀은 굳건했다.
다만 내가 그와의 연애에 부여하는 의미는 사랑보다 안정감이 더 컸다. 이별의 슬픔보다 헤어짐의 혼란스러움을 더 크게 느꼈던 이유다. 사랑이 덜해도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연애했다. 오랜 기간 만났고 서로가 산전수전을 겪는 시간을 옆에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편했다. 그와 그리는 미래는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싶었다. 나는 계속 결혼하자고 설득했다.
헤어지고 나니 혼자가 되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불안정한 시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4년의 연애가 끝나니 벌써 28살이야! 빨리 결혼할 사람을 만나야지! 지금 시간이 없다고!

그땐 조급해하는 내가 불안한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연애와 결혼은 나에게 당연한 거였다. 그건 인생의 통과의례였고, 발달 과업이었다.
이놈의 발달 과업. 발달 과업은 인간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 발달 단계에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라고 하비거스트가 정의한 개념이다. 이 발달 과업을 잘 성취하면 행복하고, 다음 단계의 과업을 원만하게 수행할 기초를 마련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장차의 과업 수행이 곤란해진다고 했다. 임용 시험 공부할 때 언제 출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며 밑줄을 긋고 별표를 많이 친 내용이어서, 달달 외웠다. 너무 달달 외웠다. 개념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도 그 '발달 과업'이란 걸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었다.
나는 '과업'이라는 표현에 얽매여 있었다. 그 행동들을 수행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내 마음에 결핍요소가 있을 줄 몰랐다. 연애할 때의 나는 연인에게 집착하지도 않고,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자부했다. 나만큼 안정적이고 편안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오해했다.
불안했지만 불안한지 몰랐던 나는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거의 곧바로 다음 연애를 시작했다. 너무 행복하고 황홀했다. 그런데 그만큼 혼자 있을 땐 너무 외로웠다. 남자친구의 존재에 의지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 외로움을 감당하고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거든. 그 근육을 키우지 못했거든.
그러다 켜켜이 쌓여가는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을 나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는 과오를 범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야겠다. 내가 찾아낸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면 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후로 줄곧 부산행을 부르짖었다. 영화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처럼 말이다. 수년 전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본 건 올해의 복선이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래서 행복한 연애를 내 손으로 잘랐다. 만화영화를 보면 제정신이 아닌 캐릭터의 눈망울이 회색빛으로 표현되는 때가 있는데 내가 그랬다. 외로움 귀신에 씌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지금 난 혼자다. 당분간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마음이 없다. 그러니깐 '2022년에 끝난 3번의 연애'는 없을 예정이다. 연애,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힘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세우는 일이라는 걸 수없이 울고 나서야 깨달았다. 외로움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감정이다. 모두가 다 외롭고 고독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은 그 외로움을 잠시 잊는 순간일 뿐 언제든지 난 다시 외로워질 수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다.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보고 나의 외로움을 맞춰주는 사람은 없어.
만약 지금 스스로 외로움을 감당하는 방법을 깨닫지 못하면, 또 이런 순간을 맞이할 거다. 그럴 때마다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진다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그러니 안정감과 편안함을 나 밖에서 찾으면 안 된다. 나 혼자의 힘으로 삶을 감당하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씩 연습해봐야 한다. 혼자서도 삶의 외로움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을 때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가 된 거다.

2022년 진짜 의미 있다. 이만큼 의미 있을 줄이야. 인생 슬픔을 겪었고 인생 교훈을 얻었다. 예상 밖이었지만, 오케이 잘 성장했어. 이 교훈을 지금이라도 알아차려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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