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기안 밸리(Phyrigian Valley)를 찾아서
'지금처럼 많은 관광객이 많기 전의 카파도키아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카파도키아에 머무는 내내 들었다. 바위를 파고 들어간 집에 살면서 저 신비로운 풍경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겠지?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동네 애기들이 유적들을 직접 탐험하고 뛰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뺑뺑이, 정글짐 등 '강한 자만 살아남던 90년대 생의 K-놀이터'에 대한 자부심이 사그라들면서 카파도키아 옛 애기들이 부러웠다. 아피온카라히사르 교외에 위치한 아야진(Ayazini)이란 작은 마을을 방문하고 난 이후에는 카파도키아를 자유롭게 뛰놀았을 옛날 애기들이 부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아야진(Ayazini)은 아피온카라히사르 주 ihsaniye 지구에 있는 작은 마을로 황금손 미다스 왕으로 유명한 프리기아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여행 계획 당시 구글 지도가 아피온 근처에 이런 곳도 있다며 추천해 준 곳으로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듯 다른 풍광에 마음이 동했었다. 하지만 구글리뷰가 600건 정도밖에 없고 그 마저도 한국인 리뷰는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아피온카라히사르에서 차로 30분이나 떨어져 있었다. 마땅한 대중교통 방법도 검색되지 않았기에 운전면허도 없는 필자에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포기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피온카라히사르만으로는 3박 4일 일정을 채우기 버거웠다. 즉, 생각보다 할 게 없었다. 커다란 돌산 위에 위치한 아피온카라히사르 성을 등반하고, 독특한 목조 모스크인 Afyonkarahisar grand mosque와 구옥 거리까지 구경하고 나니 예상보다 빠르게 일정이 끝났다. 그래서 다음 날 일정이었던 호텔 수영장과 터키식 사우나까지 느긋하게 즐겼다. 방문한 장소들도 다 너무 아름답고 독특했으며 호텔 서비스까지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하루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자꾸만 불편했다. 내일은 뭐 해야 하나...
남동생과 단 둘이 하릴없이 호텔에 박혀있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아피온카라히사르 여행 계획 당시 포기했던 아야진(Ayazini)을 동생에게 슬쩍 꺼내봤다. '우리 내일 할 일이 없잖아? 그런데 알아보니 차로 30분 거리에 미다스 왕으로 유명한 프리기아 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동네가 있다고 하더라. 한 번 가볼까?' 하고 사진까지 보여주며 주절주절 어필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매사에 누워있고 싶어 하고 뭘 하든 의욕이 없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동생이 '그래 한 번 가보자!'며 좋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피온카라히사르 호텔 침구가 너무 푹신해서 기분이 좋았던 걸까? 뭐가 됐든 동생 마음이 변하기 전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은 아야진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Ayazini, Dolmuş, Bus 등등 온갖 검색어를 동원했지만 영어 자료는 찾을 수 없었고 튀르키예어 자료만 조금 찾을 수 있었다.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린 결과 '아피온(Afyon)에서 23 km 떨어진 아야지니(Ayazini) 미니버스를 타고 프리지아 계곡(Phrygian Valley)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Ayazini 마을 미니버스는 중앙 차고에서 출발합니다.'라는 어색하게 번역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검색한 결과 'Afyon-Ayazini 마을버스 일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당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니버스 및 운행 시간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니 그리 오래된 시간표는 아닌 듯했다. 이 시간표 대로 운영이 되는지, 버스 정거장이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돌무쉬가 있다는 거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다음 날 대책 없이 Afyon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하지만 Ayazini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 여기서는 버스를 탈 수 없고, Park Afyon이란 쇼핑몰 앞에서 Ayazini 행 미니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설명해 주신 분은 터키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 남매를 위해 Park Afyon까지 향하는 버스(11번 버스입니다)에 직접 태워주시기까지 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도 귀인이 아닐 수 없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Ayazini까지 가는 방법까지 아는 분이라니!
그분의 상냥함 덕에 무사히 Park Afyon 앞에 도착했으나... 그때부터 본격적인 난관에 봉착했다. Ayazini 행 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그 자리에서 계속 대기해야 했다. 한 40분 정도 기다리면서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키가 큰 호감상의 튀르키예 아저씨가 '너네 아야진 가니? 여기 버스 시간표가 있어!' 라며 말을 걸었다. 아저씨가 해석해 주는 시간표를 들으면서 정말 정말 감사하면서도 이걸 어쩌나 아야진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시간표를 확인했을 때의 시각은 11시였고 다음 아야진행 버스는 14시에 출발 예정이었다. 얼빠진 우린 남매가 안쓰러웠는지 아저씨는 차나 한 잔 하자고 제안하셨다.
담배 쩐내가 가득한 누추한 찻집에 들어가자 튀르키예 아저씨들이 튀르키예 어로 온갖 질문을 던져댔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인입니다. 남쪽? 북쪽? 남쪽이요.(제일 먼저 배운 튀르키예어가 Guney Core다ㅋㅋㅋ) 여긴 왜 왔어? 튀르키예 여행 중이고, 아야진은 프리기아 유적이 보고 싶어서요! 너네 부부야? 커플이야? 아니요! 저희 남매예요! 이 모든 대화는 구글 번역기와 바디랭귀지의 힘으로 진행됐다. 튀르키예 아저씨들은 우리 남매가 북한 사람일까 봐 긴장했었다고 말했다. 정말 편견 없는 사람들이라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귀엽게 느껴졌다.
하여간 카페의 모든 아저씨들이 온 힘을 다해 우리에게 아야진에 가는 법과 버스 요금까지 설명해 주셨다.(구글 번역기와 구글 지도 만만세!) 정리하면 '오후 2시에 너네 호텔(Doubletree by Hilton Afyonkarahisar) 건너편 도로를 지나가니까 호텔에서 쉬다가 2시 좀 넘어서 건너편 도로로 가서 아야진행 버스를 타도록 해! 요금은 둘이 합쳐서 50 TL야'였다. 친절한 아저씨는 '호텔까지 내가 데려다줄게!'라고 제안해주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었고 2시에 출발하는 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절한 아저씨의 제안을 사양하고 찻집을 나와 짧은 인연과 작별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둘의 찻값은 아저씨께서 계산해 주셨다.
찻집을 나온 후에는 아야진까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냥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탔다ㅋㅋㅋㅋㅋㅋ! 아저씨 많이 도와주셨는데, 알려주신 대로 안해서 죄송해요! 그치만 아야진에서 아피온으로 돌아올 때 아저씨가 알려주신 시간표와 지리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Park Afyon에서 아야진까지 편도로 택시비 700 TL(2024.2.2 기준)가 들었다. 택시 기사님이 '여기 교통 불편한데 내가 기다려줄까?'라고 하셨지만, 너무 비싸기도 하고 뭔가 또 어떻게든 될 것만 같은 마음에 호기롭게 '우리 미니 버스 탈 거니까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택시를 내렸다. 하지만 아야진 어디에 미니 버스가 서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호기롭고 대책 없이 어떻게 숙소로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아야진에 도착해 버렸다!
그렇게 모두의 도움을 받아 야생의 카파도키아라 할 수 있는 대책 없는 아야진(Ayazini) 탐험이 시작됐다!
* 혹시나 아야진(Ayazini) 여행 가실 분들 아래 링크 참고하세요!
프리기안 밸리에 대한 개괄적 내용1
https://www.haberlerafyon.com/afyon-frig-vadisi-nerede-nasil-gidilir/
프리기안 밸리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 2 (1보다 좀 더 자세)
아피온 상공회의소 공식 추천관광명소
https://www.afyonkarahisartso.org.tr/index.asp?s=95&t=2&a=15
한 기자의 아야지니 마을 관광 후기
https://azgezmis.com/ayazini-koyu-afyonkarahis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