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의 갑질
아들을 군대 보낸 지 3주가 흘렀다.
돌아오는 10월 30일, 수요일이 퇴소식이다. 매주 수요일은 학원에 나가서 아이들 논술수업을 하기 때문에 원장님께 수업이 어렵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알겠다고 하시며 수업료 1회분을 덜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3년 동안 근무하며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내 개인 일로 수업요일을 바꾼 적도 없었고 항상 업무시간보다 일찍 출근했다. 이번은 아들의 퇴소식,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렸고 크게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 못했다. 문제가 된다면 원장님께서 내가 말씀드렸을 때 바로 안된다, 곤란하다고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3주가 지나고 급작스럽게 원장님은 나를 원장실로 불렀다.
“선생님, 제가 보니까 우리 학원에서 마음이 많이 떠난 거 같은데요.”
네?
“정규수업일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무단으로 수업 못하시면 안 됩니다. “
네??
“30일 수요일에 수업 빠지시면 안 됩니다.”
퇴소식이라고 미리 말씀드렸고 그때는 괜찮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 말에 대답은 없다.
“수업 펑크 내지 마세요. 논술 수업해서 얼마 남지도 않는데 학부모에게 제 입장 곤란하게 만들지 마세요.”
원장은 사업가스타일이다. 교육자 스타일은 아니다. 나에게 학부모 상담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계속 다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학교생활과 학원생활이 힘들어 ‘자살’하고 싶다고 한 5학년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어머님께 전달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학원을 전부 끊었고 (내가 다니는 학원은 종합학원이다. 그 아이는 논술 영어 수학 모두를 내가 근무하는 학원에서 듣고 있었다.) 원장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야말로 난리를 쳤다. 나는 책임을 지고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원장은 무슨 말이냐며 관둔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냐며 그만 두지 못하게 했다. 선생님이 자주 바뀌면 학부모님들이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수학과 영어선생님은 내가 있는 3년 동안 여러 번 바뀌었다.
원장님은 이번에 새로 인수한 학원이 있는데 그 학원에도 논술선생님을 새로 뽑았다며 그분이 당장 여기도 나와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는 말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하면 그분께도 챙겨드릴 수 있는 페이가 작으니 이틀 하실 수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나 대신 그분이 여기 오시게 하겠다며 ‘수업을 펑크’ 내는 나 같은 사람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말을 다시 덧붙였다. -수업펑크란, 미리 공지 없이 무단으로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무단으로 수업을 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원장은 예전에 내가 제안드렸던 것들을 다시 들먹거렸다. 선생님이 원장도 아닌데 왜 의견을 내시냐. 내가 정한대로 원장인 내 의견에 따르는 것아 맞다. 무조건 따르라는 이야기.
아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 낸 의견들 작년 재작년에 냈던 의견들까지 몽땅 이야기하며 함부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가슴이 벌렁거렸다.
제 의견 정도 는 이야기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선생님이 원장하시던지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여러 가지 맞지 않는 일들이 있어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붙잡았던 원장.
교재를 준비해 주시는 지사장님을 통해 다른 학원으로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안이 있어도 사양했던 나.
나름 도리를 지켰던 결과가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힘들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집에 와서 문자를 드렸다. 원장님 말씀대로 그만두겠다고.
그랬더니 다시 또 붙잡는다. 인수인계 안 하면 수업펑크입니다.
인수인계 하겠다는 내용을 분명히 남겼는데 무슨 소리인가.
원장님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 선생님께 업무 인수인계를 하겠다라고 한 것이 수업펑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계속되는 카톡 폭격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원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테니 수업펑크라고 제가 한 적도 없는 일에 대해서 사과해 달라고 했다. 미리 합의된 사안에 대해 번복하시며 대체교사를 구하라고 하시는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말씀드렸다.
사람을 미리 구해놓고 당장 관두라고 하시는 것은 부당해고인 것 같다고도 말씀드렸다.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미안하다고 하신다.
마음이 한풀 꺾인다.
마음이 약해 금방 풀어지고 다시 다가오면 잘 받아주는 내 성향이 이럴 때 참 답답하다.
어떻게 하면 ‘잘’ 관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