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미 Oct 24. 2024

추억

어떤 기억

학교에 일찍 간 어느 날이었다.

3학년, 10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일찍 가서인지 교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남자아이들 몇 명이 교문 앞에 모여있었다.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나를 쳐다본다.

“교문 안 열렸어. 못 들어가.”

“…….”

남자아이들이 모여있어서 뭔가 쑥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

“너 왜 이렇게 일찍 왔냐?”

나를 남자아이로 생각하는 듯했다.

머리가 짧은 커트어서 그때만 해도 나에게 남자니 여자니 묻는 어른들도 있었다. 궁금한 것도 많지. 왜 그런 질문을 자꾸 하는 건지.

”야. 우리 담 넘어갈래? “

헉! 다른 아이들은 넘으려는 준비를 하는데 어쩌지. 못 넘을 거 같은데.

그때 수위아저씨가 교문을 열어주셨고 나는 아이들과 같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뭐 하고 놀래? “ 자연스럽게 같이 노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땅따먹기, 구슬치기등 이것저것 하며 놀았다.

나는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했었어서 잘 어우러져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너 여자냐 남자냐?”

한 아이가 물었다.

서로 이야기는 안 했지만 당연히 남자아이로 생각하고 대하는 느낌이었고 나도 남자아이처럼(?) 놀았던 거 같다.

사람들에게 남자아이처럼 보인다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도 느꼈고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어서 짜릿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때 나 여자야 라고 하면 이때까지 함께 놀았던 시간이 다 거짓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장난하냐. 당연히 남자지!”

과장되게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여자 같은데… ”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눈빛이었지만 확인할 방법도 없고 본인이 남자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주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남자의 우정이 쌓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항상 짧게 잘랐었다. 직장에 나가시는 엄마는 머리를 말려줄 수도 묶어줄 수도 없으니  짧게 자르라고 하셨다. 짧아도 좀 예쁘게 자를 수도 있었을 텐데 귀 옆과 목뒤를 밀어서 남자 커트를 했다.그런 나에게 항상 따라오는 말은 너 남자야 여자야? 였다. 문방구에 가도 슈퍼에 가도 길을 지나다니다가도 듣게 되는 말이었는데  싫었다. 목욕탕입구에서 여탕에 들어가려다 제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남자애가 왜 여탕으로 들어가려고 해라고 말이다.

다른 여자친구들처럼 웨이브진 긴 머리에 분홍 그물리본핀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그런 매 순간이 가혹했다.


남자아이가 되어 보니(?) 마음 편했다. 친구들과 다른 아이가 아니라 다르지 않은 그런 아이라는 느낌이 신이 났다.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우겨서 겨우 중학생 때부터 단발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6학년, 졸업사진조차도 내 모습은 짧은 커트머리였다. 커트머리로 지냈던 스트레스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남자애로 놀며 나는 원래의 나보다 더 까불었던 거 같다.


브런치 팝업스테이에서 본 글감 첫번째, 추억을 주제로 뭔가 멋들어진 추억을 떠올리려고 생각했는데  왜 이 일이 생각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말했던 적 없던 추억(?)에 대해 적는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이 떠난 거 맞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