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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11. 2019

오래된 연인

부부. 나이듦에 대해.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이든 저녁이든 싱크대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 생전 부엌을 들어가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느때 부터인가 주방출입이 잦으시더니 설겆이며 음식물 정리며 하나하나 간섭하기 시작하셨다.

심지어 이른 아침부터 돌려대는 청소기 소리로 온 식구들을 깨우고 걸레질, 빨래널고 내오기, 집안 정리정돈은 도맡아 하신다.  아침식사도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요리는 가급적 간소하게.  어느때 부터인가 최대한 간소하고 깔끔하게 살자는 원칙이 생기셨는지 치우고 또 치우고를 반복하신다.



거실바닥에 떨어진 먼지, 머리카락, 눈에 보이는 것들은 늘 쓸고 닦고 치워야 마음이 편하신 걸까. 후련하다고, 할일 다하신 것처럼 뿌듯해 해 하신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뭔일이 생기다고하지만 어르신 소리를 듣는 70대를 맞이 하시면서 집안 일에 하나하나 간섭하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오래 해오시던 사업에서도 서서히 손을 떼시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종일 집에 있다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고 쓸모 없는 물건이나 쌓여있는 먼지와 묵은 때가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손에 익던 물건이나 아끼던 물건들은 간직하고 싶어하고 익숙한 상태에서 불편한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엄마가 그렇다. 내가 아가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며  골동품 항아리, 수십 년은  넘었을 옷들을 감히 버리지를 못하신다. 어떻게  함부로 버리느냐며 오히려 버리는 일을 꾸짖을 정도다.  그러니 엄마방은 정리가 안된 채  쌓아둔 옷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어 둥근 동굴마냥 둘러 쌓여 밉상스럽다. 깔끔하게 정돈 된 아버지의 방. 두 분이 서로 각방을 쓰시면서 최대한 서로의 공간을 간섭하지 않기로 하셨지만 아버지의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는 습관이 이제는 엄마와의 심각한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엄마는 아버지의 몹쓸 정리벽을 흉보시고 아무것도 건드리 지 못하게 방어하는 엄마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늘 언성이 높아진다.



어릴적 기억속 엄마는 아침이면 집안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활짝 열어 환기시키고 청소에 온집안을 들었다 놓으셨다. 그런 깔끔함이 내게 지금도 영향이 미쳤는지 늘 내 방이든 주변이든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정리하고 청소하는 예전의 기억은 잊으신걸까  만사 귀찮아하신다. 몸이 힘들고 고달프니 주변정리에 눈이 가지않고 그저 몸을 최대한 편하게 그리고 자신을 가꾸는 일에 여념이 없으시다.


두분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거의 50평생을 넘게 사시면서 남남인듯 때론 오래된 연인처럼 지내신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영역이 있고 엄마는 엄마만의 방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다. 한번은 엄마가 병원에 며칠 입원해 계시는 동안 아버지랑 엄마방을 왈칵 뒤집어 몇 다발의 옷을 아파트 옷수거함에 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퇴원 후 옷정리함을 뒤집으면서까지  도로 찾아오셨다.

순간 이상한 집착이라 생각되다가도 자신의 영역에 손대는 일을, 누군가 내 물건을 아무리 가족이라도 손을 댄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내 생각만을 이야기한다. 한번도 내가 '그'라면 '그녀'라면 입장을 염두에 둔적이 없었다.

 '다름'의 원리를 알지 못해서일까  그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외면하기만 한다.


불같은 성질이 여전한 그 남자 아버지. 완전한 성년을 한참 지난 나는 이제는 기성세대를 지나 속된말로 '꼰대'같은  어르신이 되어가는 그분의 속내를 모르다가도 조금씩 알것 같기도 하다. 나또한 고집스러운 말이나 행동이 은연중에 딸에게 그대로 전달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걸 지적해주는 딸이 아주 밉다가도 고맙다.



나는 그러지말자고 다짐을 해도 치밀어 오는 틀에 박힌 행동들, 반성하면서 상대에게 배우고 나를 점검한다. 아버지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엄마에게서 배신감을 그리고 딸에게서는 서운함과 고마움을 상기한다.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 피붙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개인의 공간은 자유이고 자신의 의무이다. 어느때 부터인가 남은 안되고 가족은 내맘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무례함을 범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엄연한 사회가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비단 여자뿐만 아니라 각 개인에게 모두에게 필요하고 가꾸어야 할 '나만의 방' 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서 투영되는 모습에서 오늘도 나를 다시 세우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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