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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Mar 22. 2019

행왕의 화요일

행복한 수다와 공부


매주 화요일 행왕의 여인들은 분주해진다. 서둘러  집안을 정리하고 책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다시 한번 발제 할 부분과 해 맡은 부분을 점검하고 확인한다. 살짝 긴장되는 하루의 시작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일터와 학교에 보내고 늘어지게 아침 잠도 자고 뒹굴 거리고 싶겠지만 정해진 날의 공부는 전날 밤부터 긴장하게 만든다. 학업에 손을 뗀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공부라는 것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면 할 수록 이전과는 다른 기분이다.
다시 시작하는 영어 공부, 세계사, 현대 미술, 건축사, 기초 일본어, 중국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새로운 발견이자 앎의 여정이 되었다.


일명 굼벵이 학습법. 특정한 누군가가 주도하기 보다는 무조건 기초부터 차근차근이다. 정해진 요일에 만나 함께 읽고 복습하고 또 복습하며 알아가는 느림보 학습. 과정이 언제 끝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금씩 꾸준히 가다보니 한 권, 두 권 늘어가는 책들, 그 기쁨을 누가 알까.


'행왕'은 처음에 '행복한 왕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어른들의 독서 모임이 활성화 되면서 활기를 띠게 되었다. 20여 년이 된 지금은 일산에서 알만한 사람은 알 정도로 꽤 유명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었고, 서로가 자신의 시간을 꾸려나갈 줄 알게 되어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활용하는 게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늙어가는게 서러워  미용이나 건강, 쇼핑에 한눈 팔 법도 하지만 일찌감치 외적 사치는 저 멀리 던져 두고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일명 '자신을 다스리는' 공부에 눈을 돌렸다. 결과는 대 성공. 몸도 마음도 흐트러짐이 전보다 줄었다. 가족과의 관계는 따로 또 같이, 늘 간섭하고 부대끼며 사는게 아니라 서로의 공통 분모를 만들다 각자의 영역과 삶을 내어 줄 수 있는 생활의 요령과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요일마다 수업일정이 다르지만 화요반 수업은 현대 미원서 독해와 철학 '사유와 매혹' 읽기로 진행된다. 영어 사전만한 두께의 원서를 한 줄씩 소리내어 읽고 해석하고, 어색하다 싶으면 서로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를 찾아 볼까요.'
'문장이 넘 길어서 한번에 해석이 안되요.'

 '그럼 문장을 끊어서 해 볼까요.'


거의 평생을 아이들 영어 수업을 해온 심선생님 그리고 독해 실력 좋은 멤버의 도움으로 독해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이는 그림을 설명을 해주고 검색을 통해 찾은 자료를 공유한다.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작은 글자가 보이지 않아 돋보기에 의지하기도 따로 확대 복사해서 보기도 한다. 깨알같은 글자 속에 고개를 파묻고 한참을 앉아 있으면  목도 아프고 허리도 뻣뻣해진다.

그러기를 벌써 10년 째, 물론 10년이 되어가도록 실력이 확 늘거나 유창해진건 아니다. 다만 영어 해석에 좀 익숙해지고 두려움이 없어졌다. 게다가 그동안 번역 본에 익숙해 있던 스스로가 원서 본래 의미를 파악하는 매력을 알게 되었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뜻이 다소 왜곡된 경우을 알게 되는 어느 정도 해석의 감각이 길러졌다면 꽤나 큰 소득일 것이다. 그러니 미술관에서 몇 줄의 영어로 참고 문장이 나오면 한글로만 의지했던 것에서 영어로 읽기가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소리내어 읽어보기, 너무 완벽한 발음에 집착하지 않기,작가와 관련된 영어 동영상 흘려 보고 듣기에 익숙 해지기. 나름 자신에게 맞는 규칙을 정해두고 반복적으로 한다. 궁하면 열리는 법, 숙제할 때 시간을 투자해서 문법을 복습한다거나 단어를 따로 외우는 건 개인의 몫이다.

'How to read a mordern  painting' 

보통 한 쳅터에 한 명의 화가가 소개되는데,  예를 들면 데이비드 호크니같은 영국화가의  작품과 그의 일생이 간략하게 앞부분에 소개된다.  그 부분을 소리내어 읽고 해석한다. 그리고 작품의 배경과 내용, 온갖 미술사조의 용어가 난무하는 문장을 탐험한다. 사실 매끄럽게 이해하긴 어렵지만 전시관이나 도판에서 보았을 그림들을 설명과 작가의 의도( 물론 작가의 의도 보다는 해설사의 의견이 포함 되어있는)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보는 눈이 플러스가 된다고나 할까. 학창시절  미술 책에서 본  마네,모네, 고흐 등 인상파 화가에 익숙해졌던 시선이 확 틀어졌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림이 있었는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세상, 몰랐던 분야가 얼마나 우리를 긴장시키고 놀라게 했는지 모른다. 잘 그린 그림이란 무조건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그림의 기준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시간. 그림 앞에 서성 거리다 그 스토리를 이해했을 때의 즐거움, 어쩌면 그림을 공부하고 감상하려는 행위는 지적 사치 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그저 알아가는 즐거움이다.

이 책을 읽는 데 꼬박 이 년이 걸렸다. 도대체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감격이란.  그래서 책거리 기념으로 조금씩 모아 둔 여행적금을 깨 도쿄 미술관 투어도 감행 했다.  학위를 따는 것도 성적을 얻는 것도 아닌 자발적 학습. 공부해서 나와 상대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공부해서 남도 주고 나도 좋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쓸데 없는 잡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중년 여성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이라던가 갱년기를 그나마 가볍게 지나거나 건너 뛰기도, 그러고 보니 어느 한 곳에 집중하는 행위는 돈 버는 일과는 별개이지만 스스로의 자립과 정신 건강에 엄청난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지적 스트레스는 다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비해 감수할 수 있기에 이젠 이런 긴장감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지치거나 지루할 때면 잠시 학습 휴식기도 가지고 여유가 된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다시 복귀하는 자유로움. 결국 공부는 개인의 자유이고 선택이다.


한 시간 반 수업 후 사유와 매혹(일명 사매)시간, 정해진 부분을 읽어 오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그리스 철학부터 계보대로 읽고 순서를 기억해도 늘 새롭고 그 이론이 그이론 같아도 밀어 붙인다.

중요한 건 주입식이 아닌 토론 수업. 학창시절에  해보지 못했던 의견 나누기, 우리에겐 일명 떠들기 수업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를 에피쿠로스의 정의를 내리다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더불어 쾌락 얘기를 하다가 먼 길로 빠져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 들다 주제를 한참 벗어 났다가 휘감고 다시 돌아오기를 몆 번, 수업 후엔 자신과 상대의 의견 생각을 곱씹게 된다. 단 한 줄의 내용이 여러 개의 가지를 쳐서 생각들을 끄집어 낸다. 논리적이거나 어설픈 의견이 될 지라도 몰입 할때의 '나'와  '상대'의 말과 생각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녀'를 새롭게 알아가고 '그녀'의 언어를 배우고 사랑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철학의 개념 정의와 이해는 여전히 어렵다. 철학공부는 평생 진행중일 듯.


열띤 수업이 끝나면 각자 하나 씩 준비해 온 먹거리로 점심을 차린다. 열기가 달아오른 공부상이 화려한 성찬 식탁으로 변신한다.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사춘기로 온 집안을 긴장시키는 아들, 취업 난에 힘들어하는 딸, 군대간 아들, 남편의 실업, 치매 걸린 친정 엄마, 대학에 입학 한 딸, 바로 내 곁의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고 위로하고 축하해주는 시간이 된다.

 공부만 하고 각자 헤어진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관심을 갖는 시간이다. 그래서 행왕의 여인들은 행복한  공부와 수다로 매 요일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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