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재활용이 될까
아파트 분리수거 날. 경비 아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캔.종이.병.비닐.플라스틱을 담을 커다란 자루를 주차장 한 켠에 달아 놓는다.
이튿날 아침까지 집집마다 들고 나온 술병, 택배 상자, 온갖 포장 비닐과 종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알맹이만 쏙 골라내고 미련없이 버려지는 것들에 그 집에서 먹고 사는 모습이 보인다. 오만가지 쓰레기들을 끌어들이고 안고 사는 사람들.
후라이 팬, 바퀴 빠진 아기 보행기, 선풍기, 다리가 부러진 의자, 안마기, 전기 밥솥, 수십 년은 됐슴직한 빛 바랜 자개 농, 노끈으로 싸매진 책들, 험한 인생살이 만큼이나 고단하게 세월을 끌어 안았던 도구들도 보인다. 이사가는 집들은 주차장 한켠에 그동안 쓰던 세간 살이들을 몽땅 버리고 간다. 빨간 딱지 붙이 듯 폐기물 처리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한쪽 구석에 대형 결혼 액자, 액자 가장자리가 깨지고 유리에도 금이 가 있다. 아마도 이혼이라도 하고 정리를 한 것인지 사진속 해맑게 웃으며 두 손을 잡은 부부의 손이 무색하다. 결혼 전 수순으로 했을 값비싼 웨딩 촬영, 생애 최고의 미소와 돈으로 범벅한 껍데기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포장된 미소가 허물을 벗고 각자의 유효기간을 끝으로 버려지고 만걸까. 하루,일주일, 한달, 기간 내에 먹고 사용해야 하는 유효기간. 언제부터 인간은 정해진 기간 내에 먹고 사용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은 한 두 해도 아니고 유효기간이 없는 평생을 약속한다는 건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런 걸 여기다 함부로 버릴까.'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다.
생소한 그날의 표정, 나 막 결혼했소라고 알리 듯 집집마다 걸려 있을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들. 첫 아이 백일사진, 돌사진, 졸업사진들, 시간이 지나면 손타지 않아도 결국 버려질 애물단지들이다.
언젠가 버려 질 물건들, 언젠가 죽어 태워 질 육신. 뭐 하나 다를 게 있을까. 인간은 환생이라도 하면 모를까 죽으면 그만이나, 재활용 물건들은 어쨌든 새 것 아니 다른 것으로라도 만들어져 잠시나마 다시 쓰일 것이다.
누군가가 그런다. 인간이 지나간 자리는 온통 쓰레기 투성이라고.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여도 늘 버릴 것들이 나온다. 인간이 지나간 자리, 인간이 만들어 낸 창조물들에 둘러싸여 파묻 힐 지경이다. 버려지는 것들은 잠시 잠깐 좋았다가 내팽개쳐져 결국엔 버려진게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 오고 만다.
그동안 먹고 사는 것에 얼마나 많은 욕심을 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도, 만나는 일에도, 목청 높여 핏대 세운 대화에도 너도나도 욕심을 냈다. 집착과 애증으로 닳을 대로 닳아버린 마음. 마음만이라도 되돌 릴 재활용 방법을 익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