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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Mar 24. 2019

오늘을 쓰다

매일의 나를 만나다

가끔 일요일 오전 도서관이나 출판단지 서가에서 이책 저책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책의 한 구절. '쓰기는 자아가 하는 행위'이다. 도대체 자아가 있기는 한 걸까. 자아는 의식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허상 일 뿐.하지만 쓰는 행위가 내게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사실 지난 해부터 쓰기는 나에게  매일의 숙제이고 임무라고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일기 형식이든 독후감이든 여행기록이든 생각을 써보자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여행을 하다, 어떤 구절(갑자기 번뜩이는 문장이나 글감)이 머리속에서 맴돌고 차지할 때면 잊지 않으려고 기억 저장소에 쏙  밀어 넣어 글의 모티브로 챙기자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펜을 잡으면 나오기도 전에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만다.

생각을 글로 끄집어 내기의 어려움 그것을 제대로 완성 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 여지껏 쓰는 행위를 뒤로 밀어 두었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  글을 즐겨 쓰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행왕에서 10년 모임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난해 문집을 내 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가움과 걱정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말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각자 글을 한 편 씩은 써야 하는데 누구는 아무렇지않게 술술 풀어 쓰는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행위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굳이  '왜' 써야하는 지와, '써야한다'라는 의견때문에 글의 양과 형식에 있어 천차만별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쓰는 일이 죽을만큼 싫은 사람도 있다. 기록과 흔적을 남기는 것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정신의 노동이다. 거기다 나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이 작용하면 감추고 포장하는 글이 되고 만다. 원고일이 다가올수록 압박해오는 부담감, 머릿 속에 둥둥 떠다니는 구절들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급기야  써달라는 독촉까지 해가며 한편의 글을 짜내는 것에 포기하는 이도 생겼다. 좋아서 해보자는 일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어찌  글을 받아 교정을 하면 다양한 생각과 표현들, 때론 어린아이같은 미소를 짓게하는 글들이 모여졌다. 책의 가치를 생각하면 글의 내용이 편집자의 수준에 못 미치겠지만 어찌됐든 이제 제대로 담아 내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교정본으로 인쇄한 자신의 글을  바라보며 부끄럽지만 뿌듯한 모양이다.

내게 쓰기란 무엇일까. 글 쓰기가 자아의 활동이라면 생각의 움직임과 흔적을 나타내는 내면의 조용한 음성을 듣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신체 일부인 뇌의 자극과 활발한 움직임의 결과이겠지만 이러한 자극이 스스로에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훈련이 된다고 믿고 싶다.

때론 쓰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어정쩡하고 못난 글이 될 때도 있다. 그래도 멈추지 말자고 약속한다. 삶을 밀고 나가는 힘, 그 힘이 여지껏 나를 살려왔고 앞으로도 살게 할 것임은 분명하니까.

나를 가다듬는 일이 신체의 활동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운동과 명상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라면 쓰기는 나의 생각을 가다듬는 정신의 활동이다. 더디지만 꾸준한 삶처럼, 쓰는 일, 행위가 그 속에 담겨있다. 그래서 오늘도 끄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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