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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May 07. 2019

아바나

혁명은 계속된다.

늦은밤부터 시작된 거리의 노래가 잦아든 새벽, 새들의 노래 소리가 아바나의 아침을 맞아 준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된 몸과 머리는 자리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만 살짝 들뜬 이런 기분이 좋다. 20시간 이상 날아온 곳, 떠나온 곳과의 시간차이는 시간 여행을 하듯 늘 생소하다. 익숙해진 공간과 시간에 묻힌 몸은 정직해서 극도의 피곤함에 어쩔 줄 몰라했지만 시간을 기억하고 공간에 얽매인 몸은 차츰 새로운 현실 속에서 움직이며 이내 환경에 지배당하고 만다.


작은 손 드럼과 기타만 있으면 어른이고 아이고 최고의 가수가 되는 아바나 사람들.

간혹 핑크빛 올드카를 뽐내며 말라콘 해변을 질주하는 그 순간 만큼은 최고의 자존심으로 폭발된다. 게다가 게바라와 피델의 사진으로 도배해 놓은 거리와 상점들, 음식점. 그들에겐 이 혁명가들이 신앙처럼 가슴에 선명히 박혀있다. 혁명은 대를 이어서 진행된다. 빨간 스카프를 두른 초등 학생들은 교정 앞 쿠바의 독립을 이끈 호세 마르티의 흉상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논다.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 사유재산을 위한 치열함도 경쟁도 없이 그저 누구에게나 조금씩 골고루다. 억만장자가 되려는 꿈은 애초에 없는 듯하다. 그저 오늘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악습에서 벗어나려 했던 혁명가들이 원하는 세상은 거창한 것도 엄청난 세상도 아닌, 평등과 자유를 노래하고 매 순간을 사는 것이다. 물질의 욕심보다 자신의 감성 본성에 의지하는 그들. 사회주의 사상교육이 바탕이 된 통제와 억압이 이곳에 있을거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행객들이 뿌리는 사치에 자본주의의 물결에 밀려들 법도 하지만 적절히 조율이 되고 있다.

그 흔한 대형마트도 카페도 없어 일상의 편리함과 돈 맛에 길들여진 나는 여행 초반 불편함에 한동안 멍해 있었다.

자본주의 세상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 손만 내밀면 어디에선 쉽게 구할 수 있고 먹고 버리는 그 흔한 스타벅스 일회용 컵도 햄버거집의 맛을 이곳에선 찾을 수 없다. 신분을 증명하는 카드가 있으면 식재료와 교육,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곳, 삶에 필요한 최소 조건이외에 잉여물이 남지 않도록 조율이 되는 사회이다.

누구의 도움이나 의존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바쁠 것 없는 느긋함, 혁명을 이룬 힘이자 자존심, 쿠바인의 심장에 흐르는 리듬. 그리고 체와 피델의 삶은 그들에게 상징이고 살아가는 힘이 되고있다. 정복과 부로 범벅이 되는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삶이다.

여행 초반 어떤 연락도 문자도 흔한 SNS도 받을수 없는 벙어리가 된 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인터넷 카드를 구입해서 특급호텔이나 와이파이가 가능한 공원에서 잠시 맛보는 세상구경만이 있을 뿐이다. 와이파이 존에서 폰을 켜면 물밀듯이 올라오는 글들, 사적인 문자들의 홍수에 놀라다가도 그다지 중요할 것도 없는 아주 사소한 일임에 왜 이리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는지 문명의 기계에 여지껏 나를 밀어 넣은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들은 느긋하고 늘 줄을 서고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리다 자신의 앞에서 오늘 일이 끝나도 불만도 항의도 없다. 공무원들도 고객을 위해서 서두르거나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건 애초에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자신과 옆 사람과의 대화나 자신의 상대가 지금 일보다 더 중요하기에 바라보는 내 속만 끓는다. 그들의 대화에 악수에 몸짓에 녹아 흐느적거리는 리듬. 자본주의에 쇠뇌당한 나의 뇌는 매일밤 서민의 술 모히또 럼주에 취해 자본주의에 세뇌당한 스스로를 갈팡질팡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럼에도 그 속에 점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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