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익숙해지기
낯선 환경속에서 어떻게 사나 싶다가도 몸은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한다. 문만 열면 요란한 경적소리, 온몸에 달려드는 모기떼로 팔다리는 성할 날이 없지만 환경은 환경일 뿐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다. 어찌되었든 먹고 살아간다. 작은 부엌 한 켠에서 커피도 내리고 누룽지도 끓여먹고, 한낮의 열기가 식은 늦은 밤 옥상에서 바라 본 잠잠해진 바깥 세상과 하늘은 여느 곳과 다를 바없이 고요하고 사랑스럽다.
문득 낯선 곳에 첫 발을 디딘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이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 하루가 버거워 도망치고 싶다가도 밤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리고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을까 생각 해본다. 서울 도심, 델리의 어느 도시, 멀리 우주에서 바라보면 작은 티끌처럼 점점이 움직이는 사람들. 하지만 밤하늘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어디서든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델리 기찻길과 도로 주변,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리의 사람들. 알몸의 아이들, 사리로 온몸을 싸맨 여인들이 물끄러미 지나는 차들과 순례자를 응시한다. 찻길에는 오렌지색 옷을 입고 화려한 치장의 깃대를 어깨에 둘러매고 맨발로 수행하는 젊은 무리들을 볼 수 있다. 힌두교 남자라면 누구든 통과해야 한다는 일종의 성인식이자 순례길. 플라스틱 물통에 성수를 담아 옆구리에 매고 먼지 속을 한없이 걷고 걷는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만나야하는 신들, 하지만 그들의 신은 그저 소박한 운명을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최고의 부와 가난이 뒤섞여 있는 곳. 어쩌면 그들의 삶을 보며 현재의 나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죄악이며 자기 착각인지. 외부의 환경과 기준에 삶을 비교하는건 부질없다. 결국 가진 돈에 의해 가치가 달라진다는 의미일 뿐. 오히려 수많은 신들의 가득한 은총을 받고 있다는 그들은 물질을 바라고 꿈꾸며 살기보다 하루에 만족하고 그날을 온전히 살아간다. 비록 하루의 양식을 구걸하는 거리의 사람들일지라도.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작은 배낭 하나만 갖고 거리에서 먹고 잤다고 한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남이 보는데서 아주 당당하게. 스스로를 개처럼 산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의 본성에 따라 하는 일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도덕적 사회적 편견 때문에 남을 의식하는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거라고. 본래적인 것에 충실한 삶, 스스로에게 온전한 삶이야말로 최선의 삶일 것이다.
성실하고 충직한 택시 기사 라지브. 델리 여행 내내 나의 든든한 두발이 되어 주었다. 성가시게 이런저런 말을 붙이지도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한다. 자신의 소유한 택시, 백미러에 매달린 시바신과 가족 사진, 운전대 옆 작은 공간에 마련한 신의 제단, 그의 손이 닿는 부분은 신성한 자신만의 공간이다. 여행객에게 최적화 되있는 그의 삶. 스스로를 바이샤 라고 인도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카스트제도를 드문드문 이야기 해준다. 문명화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우리사회 구조에서도 드러나는 갑질과 상위계층의 폐혜가 이것과 뭐가 다를까. 한 나라의 모습은 하나의 우주이고 세상. 우리에게 내 스스로에게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고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수 있는 곳.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대상과 대상과의 만남이다. 끔찍히 싫어지다가도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애증이 서린 사람과의 관계처럼 여행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물러서고 다시 다가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조금씩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