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파 트레킹
사파에서 가장 많은 소수 민족이 산다는 흐몽족의 라오까이 마을 트레킹, 한 겨울 변덕스런 날씨에 우비에 트레킹화에 이것저것 야단법썩을 떨었지만 날씨가 아주 맑다.
사파는 베트남 북부 중국과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고산지대로 18세기무렵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여러 소수민족들이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소수 민족들 특히 흐몽족,오몽족, 꽃몽족 들은 자신의 특유의 복장으로 서로를 구분한다.
오늘의 가이드 람, 아이 셋의 체구가 작은 26세의 흐몽족 여인. 특유의 오색가득 체크 무늬 머리띠와 남자 한복의 긴 대님 모양의 검정천을 종아리에 묶은 전통 복장을 했다. 문득 그녀들의 익숙해 보이는 체크가 유명브랜드의 스카프 문양과 너무 닮아 이들에게 디자인을 도용했나 할 정도로 몽족의 문양은 독특하고 색감이 아주 뚜렷하고 세련됐다.
호텔을 돌며 만난 미국, 이스라엘, 말레이지아, 파키스탄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 동네 한바퀴 돌 듯 다들 가볍고 산뜻한 복장이다. 람은 오늘 코스를 안내하며 빠른 길로 갈 지 먼길로 갈 지를 물어 본다. 기왕에 다랭이 논밭과 마을을 맘껏 보고 싶어서인지 힘든 길을 처음부터 자처한다. 그렇게 웃고 시작한 트래킹 투어, 생각지도 못한 고불고불 진흙탕길이 끝없이 끝없이 펼쳐졌다.
오르고 내리고 그녀들이 말하는 머드 밭을 질척거리며 휘청휘청 이거 장난이 아니다. 따라 붙는 몽족 여인들은 이때구나 싶게 손을 잡아주며 한발 한발 밟을 길을 안내한다. 덩치 큰 남자도 그녀들의 손에 이끌려 징검다리 건너 듯 어쩔줄 몰라한다. 결국 뒤에 혼자 따라오던 한 남자는 고꾸라져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훌륭한 썬 크림을 발랐다고 히죽 웃는 람, 그녀들은 샌들과 장화를 신고도 깃털처럼 가볍게 게다가 진흙도 거의 묻히지 않는다. 아기를 업고 바구니를 지고도 요리조리 발 디딜 곳을 찾아 안내한다. 보통 마을에서 걸어오면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길을 그녀들은 정말이지 단숨에 거뜬이다. 등에 진 바구니가 무거워 보여 뭐냐고 물으니 부끄러운 듯 selling things 라고 말한다. 도착하면 손수 만들었다는 공예품을 엄청 풀어 놓을 기세다.
땀 나고 갈증 나고 도무지 끝나지 않을 오르막 내리막 길, 도대체 언제 도착하냐고 물으니 이제 다 왔단다. 입버릇처럼 그녀들은 늘 다왔다고 바로 저기라고 말한다. 팍팍해진 무릎을 만지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소 우리가 있는 언덕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생각난 듯 모두들 화장실을 찾지만, 나무 뒤에 가서 알아서 해결하란다. 다들 다음 코스 공용 화장실이 있는 곳까지 참기로. 화장실때문에 물을 마실 엄두도 못낸다. 극기훈련도 아닌데 어서 코스를 완주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걸까 바로 다시 걷기에 돌입했다.
해발 15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 끝없이 이어진 밭길은 얇은 팬 케익을 켜켜이 겹쳐 놓은 것처럼 부드럽기만하다. 어떻게 가파른 산을 가꾸어 밭과 논으로 일구어낸 걸까. 게다가 열매를 따 직물에 색을 입히고 문양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솜씨는 예술가 이상이다.
여기저기 풀어놓은 가축들과 살이 통통 오른 닭들, 어슬렁 소들, 눈길이 가는 곳 어디든 평화롭고 조용하다. 산과 밭을 놀이터 삼아 겅중겅중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3시간 동안 씩씩거리고 드디어 라오까이 마을에 도착했다.
꿀맛같은 점심시간. 흰 밥에 두부조림, 베트남식 롤튀김, 야채볶음과 곁들인 돼지고기, 강한맛 없이 깔끔하고 속도 편안하다. 람도 배가 고팠는지 밥 두 공기를 뚝딱,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 갔다.
몽족여인들은 보통 15세에서 18세 사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그래서인지 소녀같은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를 셋 이상 낳고 서른이 넘어가면 중년 여성처럼 나이를 부쩍 먹어 보인다. 평생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는 그녀. 어릴 때부터 길위에서 배워 온 영어가 유일한 삶의 무기다, 그래도 유창하게 하고픈 말을 잘한다. 관광객에 단련되어 닳고 닳을 법도 하지만 솔직하고 해맑은 표정이다. 자신의 아이들은 마을 학교에 다니며 몽족언어와 베트남어를 배운다고 한다.
'도대체 몽족 남편들은 뭐하길래 안보이는 거지?'
'밭일하고 요리도 하고 나무를 베지. 불피우고 모든 집안 일이 남자의 몫이야'.
남자와 여자의 할일이 구분되어진 곳이란 의미일까. 그러면서도 여자들이 할일이 더 많아 솔직히 힘들다고, 대부분 남자들은 오토바이를 갖고 싶어하고 술도 좋아해서 온전치 못한 가정도 있단다. 보통 일이 끝나면 오토바이로에 아내와 아이를 줄줄이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혼생활의 팍팍함과 고달픔이 여기라고 별다른 건 아닌가 보다.
평생을 한곳에서 사는 그녀들, 타지에 대한 궁금함과 동경이 있을법도 하지만 그다지 가고 싶은 곳은 없단다. 어쩌면 돌볼 아이들과 자신의 터전이 전부여서 다른 세상은 엄두도 못내는 것인지도.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하롱베이를 가고 싶단다.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바다가 물이 그리울 법도 하겠다. 내겐 그들의 모습과 삶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어쩌면 우리와 똑같이 돌아가는 한결같은 일상. 사는 곳이, 모습이 좀 다르다고 특별한 건 없다. 소소한 행복과 기쁨도 다 내 몫이다.
내년에 다시 와서 자신을 만난다면 아이가 넷 일거라며 씩 웃는 람, 체구 작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니 딸인듯 친구인듯 따듯하다.
2019.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