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남용 지민파파 May 25. 2020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로 6개월 살기!

초목표: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기초반 수료하고 연수반 올라가기

책장에 드라마 관련 도서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 나도 왠지 대박날 것 같더라고...

드라마 작가를 꿈꾼 게 언제부터였는지 선명하진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난해 '사고'를 쳤다는 것이다. 사고라는 게 망생이(드라마 작가 지망생을 줄여서 이렇게 부르더라고...)라면 누구나 꿈꾸는 입봉이라면 참~ 좋았겠지만,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육원에 등록한 사실이, 나에겐 일종의 사건이자 사고였다.


한때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글밥 먹고 살아왔지만 드라마 대본을 쓰기 위한 작법을 배운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나에게 뜬금없이 찾아온 '드라마 작가'라는 화두... 하필이면 검색해서 읽어본 글이 다른 일을 하다가 지금 유명한 드라마 작가가 된 이들을 소개하는 글이라니... '아, 그렇다면 다음에 추가될 작가는 나?' 이제는 자그마한 사업장의 대표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나이 꽤나 먹어서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에는 애매한) 입장에선 쓸데없이 자신감만 뿜뿜 올라가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꿈 많은 망생이를 위한 교육기관을 찾아봤다. 몇 군데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실 것 같고 여기서 배우면 실력이 마구마구 늘 것 같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난해 봄, 신청기간을 착각해 하루 차이로 등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라며 애써 자위해 봤지만 6개월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왠지 대박날 것만 같아!>(손정현 지음)라는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이렇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강렬한 제목이 있었던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 작가의 높은 벽에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가을이 오면 이번에는 무조건 교육원에 등록하겠다는 전투력도 함께 배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을이 찾아왔다.




드라마 작법 관련 E-Book을 보는 시간도 늘었다...


#2 기초반 면접 보던 날...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의 과정은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 등 4단계로 나눠져 있었다. 시작단계인 기초반에 수강 신청하고서 면접 보는 순간까지 떨렘(떨림+설렘)의 연속이었다. 면접 당일, 차를 몰고 가며(건물 주차비가 너무 비싸서 이후 수업받는 중에는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예상 질문을 떠올리며 답하다 보니 금세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와 이유를 물어본다면? 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지도 물어보겠지?'


교육원 입장에서는 수강 신청한 이들을 모두 허하노라~ 하면 돈도 더 벌텐데 굳이 왜~ 라는 속물적인 생각도 들었고, 분야는 다르지만 그래도 글밥 먹고살았는데 내가 떨어지겠어~ 라며 자신감을 불태웠지만 대기실에서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까지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지. 5~6명의 이름이 불려지고 각자의 면접관님 앞에 앉았다. 그런데 나와 마주한 면접관님이, 세상에~ <열혈사제> <김과장>을 쓴 박재범 작가님이었다.


조금 전 차 안에서 셀프 면접을 보면서 준비한 답안지에 박재범 작가님과 그의 작품을 떠올렸던 나로서는 반가움과 신기함을 동시에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러 질문 중에서 작가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근사하게 포장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장은 꼬였던 것 같다. (이후 기초반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이 질문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다 나이도 많은데 이렇게 도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해하는 망생이 앞에서, 작가님이 보여준 리액션은 단호했다. 그런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지하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마도 앞으로 내가 계속 글을 쓴다면 박재범 작가님의 지분도 꽤 인정해 드려야 할 것 같은...? ^^


cf. 안물안궁: 박재범 작가님을 면접관으로서가 아니라 그전에 치맥하는 자리에서 볼 뻔했었다. 당시 <열혈사제>를 무척 흥미롭게 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전에 재미있게 봤던 <김과장>도 박재범 작가님의 작품이더라는 사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날 때마다 박재범 작가님을 너무 만나보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알고 보니 후배가 박작가님과 친분이 꽤 있었던 것. 박재범 작가님을 알현할 수 있었던 그 날 일정을 뺄 수가 없어서 참석하진 못하고 후배가 보내온 박작가님의 사진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 그날 그 자리에 나갔다면 면접 보는 날 서로 무척 놀랐을 듯?





매주 고통스러운 만큼 쾌감을 안겨준 과제들...
작법이라는 기술적인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기초반 수업 때 적은 노트...


#3 한계 속에서 울고 싶었던 날들...

지난 6개월 동안 매주 일주일의 시작은 금요일이었다. 내가 속한 기초반은 매주 금요일 2시 수업이었고, 다음 주 화요일까지 과제를 제출하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일주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곤 했다. 서른 명이 조금 넘는 동기들 중에서 남자는 나 포함해 달랑 두 명... 솔직히 말해 처음에 심각한(?) 성비의 불균형에 위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인 집단에서 성별, 나이, 직업 등 각자 다르게 살아온 환경은 서로의 꿈을 키워가는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살짝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이어진 자기소개와 <나에게 드라마란 무엇인가>라는 첫 번째 과제로 6개월의 기나긴 항해는 시작됐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과제는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통해서 그 가치를 구현하려고 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정리하는 것. 이때부터 종강하는 날까지 카페에 과제를 올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업시간에 각자 발표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선생님은 저마다의 인사이트를 키워주신 것 같다.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보니 합평하고 조를 짜서 스터디하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이 과정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초반에 몸 담은 망생이에게 주어진 과제는, 6개월 동안 70분 단막극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제목을 만들고, 주제를 정하고, 기획의도 및 작의를 써 내려가고,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줄거리를 채우는 과정은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고통(?)을 동반했다. 함께 몰려오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보너스였다고 할까? 대본을 쓰기도 전에 기본적인 설계에서부터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답답함에 울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게 고작 두세 줄이라니... 오죽했으면 회사에서 멍~한 모습으로 대본집을 옆에 놓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실장님이 이렇게 위로(?)했을까. "그냥... 고시공부를 하세요..."




누가 뭐라고 하든, 생애 첫 대본을 탈고한 날은 그 완성도를 떠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4 심장이 뜨거운 사람들...

계절이 바뀌면서 시놉시스는 시퀀스와 씬 구성표를 만드는 단계로 넘어갔다. 창작(이라는 단어를 아직 함부로 쓸 정도의 레벨은 결코 아니지만...)이라는 게 한 번 막히면 언제 뚫릴지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보니,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탄생시킨 캐릭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한 주가 금방 지나가곤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잊을만하면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스터디하는 멤버들은 단톡방에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가장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몇 번 휴강이 되는 가운데, 지난 3월 6일(금)은 개인적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루로 '평생' 기억될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라마 대본이라는 걸 탈고한 날이 바로 그날이니깐... 씬 구성표를 만든 후, 첫 번째 씬을 쓰기 시작하고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글을 쓰는 동안 집중하고자 휴대폰의 전원까지 끄고서 저녁 이후 켜는 걸 반복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변으로부터 안부 문자도 많이 받기도 했었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허점과 빈틈이 많은 대본이지만 생애 첫 대본을 완성하는 순간, 느꼈던 희열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경험도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물론 그 흥분이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다. 이후 선생님의 냉정한 평가는 들떠 있던 자신감을 이내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왠지 대박날 것 같은 대본을 내가 쓴 게 아닌가 하는 착각 또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으니... ^^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의 영원한 드라마 선생님...
기초반 수료증 받던 날, 코로나19 여파로 포옹 대신 주먹악수로 대신했다...


Epilogue.

쓰고 싶은 마음을 가슴 깊숙 새겨주신 선생님과 드라마 작가라는 목표를 위해 열정 넘치는 동기들이 선사한 자극 덕분에 기초반을 무사히(?) 수료하고 이제 연수반 개강을 앞두고 있다. 연수반에서는 70분 단막극 과제를 두 개를 완성해야 하며, 전문반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에서 10등 이내의 성적표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실력이 되어서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쓰지 않으면 오히려 힘들 것 같아서 선택한 연수반이니 즐기고 또 즐겨야겠다. 캐릭터, 소재, 이야기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던 망생이 동기들의 앞날에 언제나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며... 건필!!!

매거진의 이전글 카메라를 사던 날, 인생이 바뀌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