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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8. 2022

 <도올주역강해> 일단 사자

이스탄불에서 마흔둘

<주역>을 처음 접한 것은 7년 전쯤이었다. 공부하던 인문학 공동체에서 <주역> 강의를 하시던 우웅순 선생님께 주역의 기본을 배웠다.


20대 초반, 대학 2학년 때였나? 아마 그쯤일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서울대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를 다니던 내 친구가 삭발을 한 선배 한 명을 소개해주었다.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연수원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는 과선배였는데, 그는 입소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주역>을 공부하고 있다고 친구가 내게 소개했었다.


내가 30대 중반에 <주역>을 만났을 때, 문득 든 생각은 세상에 나가기 전에 <주역>을 공부하던 내 친구의

선배였다. 삭발을 한 20대 중반 남자. 고시는 이미 패스를 했고, 임용 전 남은 몇 달 동안 <주역>을 공부한다.

그때 나는 친구의 선배를 평범한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범상치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주역>은 나에게 그런 월등히, 우월한, 대단한 무엇이라는 환상을 주는 텍스트였다. 음과 양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선들. <주역>을 읽기도 전, 괘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공을 들여야 하는 암호 같은 책.


이스탄불로 오기 전에,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두루 공부하신 한 선생님께서 내게 나이를 더 먹으면 알게 될 것이라며, 나중에는 <주역>만 공부를 하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일도 <주역>에 대한 나의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이후로도 내가 가져온 주역 책 <주역강설>을 혼자 읽으며 주역의 괘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주역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텍스트였다.


그러다 최근 도올 선생님께서 <도올주역강해>를 탈고하셨고 유튜브에서 강의도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주역>공부를 다시 시작해 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오늘 도올티비에서 <주역강의> 6강을 보다

https://youtu.be/3FU73JzjOnM

무릎을 탁 치면서 전에 선생님께 들었던 '왜?, 나이를 먹으면 <주역> 하나만 공부를 해도 충분하다고 했는지' 그 말의 뜻을 알아듣게 되었다.


도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역의 핵심은 誠성(정성, 성실)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성誠'이라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의 중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과 양의 발란스를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하셨다.

이는 나무 한 뿌리가 생명을 유지하지 위해서 서로 상생하는 대자연의 모습에서 온 것이며, 誠은 우리 한국인의 민족성에 깊이 배인 철학이고, 21세기에 한국의 영화나 콘텐츠가 오스카를 넘어 세계를 석권하게 된 힘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說)하셨다.


誠者는 天之道也 人之道也

성자는 천지도야 인지도야

誠之者 擇善固執者也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見之하고 獨行之라

성지자 택선고집자야 박학지 심문지 신사지 명견지하고 독행지라


도올 선생님이 강의에서 판서하신 경구를 풀이하면, 인간이 산다고 하는 것은 성실히 살려고 하는 것이며, 천지 대자연이야 말로 그 성실의 최고 경지이다. 널리 배우고 깊게 탐구하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바르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이런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신)에게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며, 성실한 대자연의 풀 한 포기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하는 경지이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 이르는 바라고 알려주셨다.


내가 가야 할 길, 誠(정성 성, 성실할 성) 이 한 글자를 오늘 배웠다. 도올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격조 높은 강의를 이스탄불 우리 집에서 편하게 듣고 보니, 강의에 필요한 책 한 권만 사서 강의는 그냥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도올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이 역작이 베스트셀러 30위 권 안에 겨우 든다는 도올 선생님의 한탄이 안타깝기도 하고 이 책을 사야 도올 선생님도 이 강의를 방송하는 유튜브 관계자도 먹을 것이 나온다는 솔직한 말씀에 너무나 동감하기에, 나도 책팔이 글을 하나 쓰고 있다.


이 글을 보시고 누군가 <도올주역강해>한 권이라도 구매하신다면 나는 신세를 갚는 것이 아닌가?

<도올주역강해>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책장에 한 권 정도 사두면 좋을 것이라 확신한다.

두껍고 어려운 책이지만, 한 권 사면 유튜브를 강의도 공짜로 들을 수 있다.


<주역>은 주나라 易(역)이다. 쉽게 말하면 변화를 점(占) 치는 것이다. 그냥 점이 아니라 중국의 하은주,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의 왕 정도 돼야 쳐볼 수 있었던 점이니, 그러니까 TOP SECRET이란 말이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3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주역>의 지혜를 탐구해 본다면, 이진법과 컴퓨터의 탄생의 바탕이 된 주역의 이치에 조금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설사 책을 읽기 못하더라도 우리 집 책장의 격을 높여 줄 인테리어 소품의 역할이라도 할 것이며, 언젠가 아이나 집안 식구 누군가가 꺼내 보곤 이것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책장을 펼쳤다가 <주역>을 완독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집에 한 권 있어서 나쁠 것이 없는 책이다. <도올주역강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되었으면!


마지막으로 카를 융이 <주역, 인간의 법칙>에서 당신에게 전하는 말을 첨언하고 싶다. 우리의 실수나 허물을 근본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 거대한 우주라는 곳에서 도대체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몰라서 저지른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바로 우주를 아는 것이고, 자연을 아는 것이며, 스스로의 운명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고통처럼 느껴져도, 실은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당신은 물이 전부에다 약간의 무기질로 이루어진 육체를 끌고 어기적대며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를 통해서 신을 만날 수 있고 그분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를  위해서 삶을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삶을 낭비하게 됩니다. 당신은 죽어서가 아닌 살아서  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나'는 거기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변화의 길이자, 변형의 수단이고, 당신의 오랜친구로 살아왔습니다. 당신이 눈을 감고 내면을 보는 순간 나의 생각이 실은 오래전부터 당신이 살아왔던 생명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카를 융, <주역, 인간의 법칙>,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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