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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Dec 07. 2021

11월의 기록

2021년 11월

# 6권의 책


지하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 나는 출퇴근 길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의 출근길에만) 휴대폰으로 책을 읽고 있다. 어떤 날은 좌석에 앉자마자 졸기도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읽는 책은 대략 한 달에 1.5권 정도 되는 듯하다. 예전에는 종이책을 읽기도 했으나, 지하철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패드로 책을 읽은 적도 있으나, 그 역시 다소 거추장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책을 읽는 것은 눈 건강에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꽤 괜찮았다. 생각해보면 포털사이트나 SNS도 잘만 보면서 이북은 왜 눈이 아플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북은 글자크기나 줄 간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편하고 한 손으로 슥슥 넘겨가면서 보기도 편하다. 물론 종이책의 물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이것이 내가 이북을 선호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나 지금 내가 얼만큼을 읽었는지, 책의 어디쯤인지 두께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퇴근길에는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다. 4-50분 정도 되는 출퇴근길을 두 번이나 잘라가며 환승을 해야 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열차를 기다리는 그 막간의 시간에도 감정이 동요되는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오히려 두 번의 환승보다 수시로 울리는 알림이 독서를 방해하는 일이 더 많다. 이 핑계로 이북리더기를 사고 싶은데, 이건 단순한 물욕인 건가.


#미라클 모닝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나 책을 1-2시간 정도 읽고 출근 준비를 했다. 퇴근하고 나서는 피곤해서 책을 읽기가 어려웠고, 출퇴근 때 읽는 이북 말고도 읽고 싶은 책은 잔뜩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자고 일어나면 나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할 일이 남아서 찜찜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시간을 쪼개서 여유 있게 할 수 있고, 효율성도 훨씬 좋았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읽는 책이나 혹은 다른 일들도 모두 '성취'로 다가왔다. 단 하나의 변수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타이트한 시간에 일어나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던 것과 비교하면 차분하게 하루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여유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면 기분 좋게 깨곤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날들이 지속됐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약을 먹고 자기도 하고, 피로가 누적된 것인지 몸이 무거웠다. 쉬는 날에 하루 종일 누워서 쉬거나 감기약을 먹어도 크게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중단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자기로 했다. (2시간 더 잘 수 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몸은 회복되는 듯했다. 그동안 나는 느끼지 못했어도 수면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아침의 여유는 사라졌다. 좀 더 컨디션이 나아지면 다시 시작할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컨디션 조절이 우선인 듯하다. 나의 미라클 모닝은 결국 미라클 수면으로, 수면의 중요성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일찍 일어났는데,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유가 좋다.


#나만의 24절기


나에게는 음력 24절기와 견줄만한 나만의 24절기가 있다. 그중에는 의상과 관련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11월에는 11월 15일부터 패딩점퍼를 입을 수 있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롱 패딩은 12월 15일부터 가능하다. 웃지 마시길.) 그전에 패딩을 입은 지인을 만나면 계절감이 없다며 장난스러운 타박을 한다. 

 "아니, 벌써부터 패딩을 입고 다녀? 그럼 한 겨울에는 어떻게 할래? 패딩은 11월 15일부터 입는 거야." 

시기에 따른 여러 가지 기준을 갖고 있는 것도 웃기다고 할 수 있겠고, 나만의 24절기를 지인에게까지 적용하는 것도 다소 억지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의 24절기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어땠는가. 10월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되고, 가을은 스쳐 지나가듯 지나가며 11월이 본격적인 추위와 함께 찾아오지 않았는가. 한파주의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인지 10월 말부터도 이미 롱 패딩을 입은 사람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절감이 없어도 너무 없네.)  한데 막상 11월이 되고 보니 아침저녁으로는 꽤나 추웠고 가을 재킷으로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들이 계속됐지만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니 15일이 되기 전에 패딩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11월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지인 G에서 연락이 왔다.


  - 혹시 지금 9호선에서 내렸어?

  - 응. 맞아. 나 봤어?

  - 근데 이 날씨에도 패딩을 안 입는다고?


나는 그날 입은 외투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속은 구스다운 패딩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15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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