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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y 19. 2023

관계의 소멸

인간관계가 반드시 누적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인간관계가 계속 누적되기만 한다면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수 천명과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에 가깝다.

관계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절대로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를 정리하게 되는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은 대부분 힘든 일을 겪을 때이다.

기쁜 순간에 축하를 보태는 일은 쉽지만

어려움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일까.

축하는 빈말로도 할 수 있지만

깊은 공감을 전제로 하는 위로는 꾸며낼 수 없기 때문일까.

꾸며낸 위로는 금방 티가 나기 마련이다.

위로를 억지로 꾸며내는 사이에

상대는 무심함을 느끼게 되고

뒤이어 허겁지겁 날아든 공감 없는 위로에 

다시 한번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관계는 옅어진다.

돌아보지 않는 시선에 관계는 더 흐려진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꾹꾹 눌러 적어둔 이름도

추억의 순간을 담은 스케치도 다 희미하게 사라지고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관계는 소멸된다.

뿌옇게 비어있는 자리에 새로운 이름을 적어가면서,

원래 그 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그렇게 관계는 소멸된다.

오늘 문득 빈자리를 발견했지만

누구의 자리였는지 혹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음이 닳도록 문질러진 자국만 가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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