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막연히 여행에세이를 쓰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다. 되든 안 되는 최대한 기록을 많이 하기로 맘먹고 출발하는 비행기에서부터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을 했었다. 이동하는 짧은 틈에도 적었고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 꼭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아이들 사진만 찍던 평상시와 달리 풍경과 거리, 음식, 영수증사진과 그날의 날씨까지 캡처해서 저장했다. 자료가 많아서 나쁠 이유는 없으니까.
돌아와서 사진정리를 먼저 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고민했다. 글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할 것이며, 그림과 사진은 어느 정도의 비율로 넣어야 할까? 가족들의 호칭과 캐릭터는 어떻게 그려야 할까? 여행 정보는 어느 수준으로 넣어야 할까? 고민은 또 다른 고민들을 만들어 냈다. 고민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살펴보자는 생각에 제목만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라는 책을 읽었다. 배경이 호주라는 것만 동일하고 내용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았던 곳이 나올 때마다 '나 여기 알아!'를 연발하며 읽었다. 무라키미 하루키처럼 글을 잘 쓰면 더욱 좋았겠지만 호주를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 주고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글에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여행정보는 넣지 않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 몇 번이면 찾을 수 있는 내용을 굳이 넣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가족들의 캐릭터는 이전에 공저에 그렸던 내 모습을 기본으로 그렸다. 멋지고 예쁜 사진들로 도배된 글이 아닌 자잘한 사건 사고와 아이들의 투정과 부모로서 고생담이 생생한 가족여행기를 써보기로 했다. 여행의 감흥이 가시지 전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었으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계획과 달리 실상은 일주일에 짧은 글 하나도 완성하기 쉽지 않았다. 사진자료와 기록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해서 옮기다 보니 정작 필요한 내용은 없기도 하였다. 하지만 글 한 편이 저장될 때마다 당시의 감정과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큰 만족감을 느꼈다. 글을 쓸 때마다 다시 그곳에가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경험과 자극이 되길 바랐던 여행이기도 했다. 3번은 숙소에서 구워 먹은 고기와 라면 제일 맛있었다고 기억하고 있고, 중학생이 된 2번은 학교과학시간 암석의 침식에 대해 배우던 중 자료사진으로 나온 12사도가 나와 '저 가봤어요! 진짜 멋있어요.'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된 1번은 펭귄을 잊는 대가로 산 옷을 잘 입고 다니고 있다. 기대와는 다른 후기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세 명 다 공통으로 골드코스트에서 머무른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했다. 그 넓은 해변에서 비와 해파리 때문에 더 놀지 못한 점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정보를 찾고 계획을 세운 남편은 호주여행카페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자신이 도움을 받은 만큼 경험했던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게 정보를 나눠주고 있다. 남편에게 이런 성향이 있는 줄 이제껏 몰랐다. 나는 여행기간 동안 찍었던 여러 장의 식물 사진 중 마트에서 찍은 토마토를 색연필로 그렸다. 빨갛고 적당히 동글동글한 게 맘에 들어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다들 이런 토마토를 어디서 파냐고 물어보었다.
t2에서 산 멜버른 블랙퍼스트 차를 스타벅스 멜버른 컵에 우려낸다. 웃긴 건 분명 'sleeper'를 위한 차세트라고 믿고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Sipper's'를 위한 세트였다는 것이다. 남편도 나도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상관없이 잘 마셨다. 그중에서도 바닐라 향이 가득한 멜버른 블랙퍼스트를 제일 아껴마시고 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쓴다. 그리고 또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5년 전처럼 적금을 들었다. 어디를 갈지, 언제 갈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호주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