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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Nov 15. 2024

38. 경험의 차이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밀슨스 포인트역으로 향했다. 그곳에 내려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하버브리지를 건널 수 있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하버브리지를 등반하는 코스는 아니지만 하버브리지를 보고만 온 것과 직접 걸어봤다는 건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오페라하우스도 잘 보이고 오가는 페리와 도시 풍경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은 다리 난간이 온통 펜스로 둘러져 틈과 틈 사이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었고 실제로 다리 중간중간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리를 등반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람이 불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얼마를 주면 저길 건널 수 있겠냐는 농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 끝에 다다랐다.


하버브리지를 건너 내려오니 이제는 익숙한 서큘러키 근처였다. 마지막 저녁은 거하게 먹어보자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바비큐전문점인 허리케인그릴을 예약해 두었다. 예약시간이 조금 남아 시드니 현대 미술관 앞 잔디밭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여기 뒤에 바로 미술관인데'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아니요'라는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잔디밭 바로 앞에는 홈쇼핑 광고에서나 보던 거대한 크루즈가 정박해 있었다. 이름을 보니 어제 본 배랑은 다른 배였다. 저렇게 큰 게 움직인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저 배를 타고 여행하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바로 뒤쪽에는 학교를 마친 듯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 둘이 감자튀김을 먹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둘기가 있다면 호주에는 화이트아이비스가 있다. 예쁜 이름 대신 쓰레기를 주워 먹는다고 일명 쓰레기 새로 불린단다. 화이트아이비스가 아이들의 감자튀김을 노리고 있었고 눈치챈 아이들은 손짓 발짓을 하며 새를 쫓으려 했다. 멀리서 그 장면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바로 보다가 새가 우리 쪽으로 향하는 것 볼고 얼른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옆에서는 남자와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아이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여자 두 명과 다른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어찌나 서로 다정스럽게 껴안고 토닥여주는지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나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3번과 눈이 마주쳤다. 흐뭇해졌다. 아이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3번을 안고서 1번과 2번에게도 사랑해를 외쳤다. 시선은 스마트 폰에 고정한 채 '저도요'라는 무뚝뚝한 대답을 해준 아들들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씩 웃어주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이동했다. 소, 돼지, 양갈비가 나오는 립 세트 2개에 스몰사이즈 샐러드 하나와 주니어 치킨버거를 주문했다. 멜버른 식당에서 배부르지 못하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남편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립 세트 하나를 추가로 주문해 버렸다. 잠시 후 메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고기도 샐러드도 양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샐러드 양이 어마무시했는데 주문서를 다시 살펴보아도 분명 스몰사이즈 시킨 게 맞았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추가한 메뉴가 또 나왔다. 더 이상 둘 자리도 없었다. 많다 많다 하면서도 우리는 주어진 고기를 다 먹었고, 샐러드만이 조금 남겨진 테이블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섰다.


오늘의 마지막, 아니 호주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시드니 천문대를 향해 걸었다. 시드니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오래되고 작은 계단과 골목, 집들을 지나다 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삐뚤빼뚤했던 계단이 생각났다. 오르막의 끝 넓은 공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노을 맛집이라더니 결혼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비롯해 유난히 커플이 많아 보였다.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멋졌지만 구름이 가득한 날씨 덕에 다리에 반사되는 석양의 눈부신 반짝임을 볼 수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눈앞에 하버 브리지뿐만 아니라 안쪽의 안작 브리지까지 연결되는 노을이 정말 멋있다고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을 이끌고 가는 가이드 분이 말하셨다. 한 때 천문학과를 가고 싶어 했던 남편만 천문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천문대를 빙 돌아 바랑가루 쪽으로 내려와서 서큘러키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마지막으로 타는 페리라고 생각하니 이 역시 아쉬웠다. 그런 마음이 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숙소로 가는 길 괜히 여기저기를 들리고 구경하고 돌아서 돌아서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이 걸어서인지 3번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짐도 줄일 겸 주방에 남아 있는 너구리를 끓여 해치우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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