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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수 Aug 03. 2019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총, 균, 쇠>와 <사피엔스> 함께 읽기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역사는 지역별, 시기별로 나누어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 치중되어 있었다. 역사 시험은 특정 문화나 국지적인 사건, 그리고 발생 연도를 외우는 것만 요구했고 그 공부는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어떻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진화했고 언제 어떤 사건이 인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사건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건들 간의 인과 관계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 연구가 진화생물학, 생태학, 문화인류학, 사회심리학 등과 연결되면서 그 의미와 인과 관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총, 균, 쇠>는 저자의 넓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각 대륙에서 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는지 밝혀 낸다. 인류의 문명이 어디에서 탄생하고 어디로 전파되었는지,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 및 정착 생활로의 변화가 어떤 의미였는지, 기술의 발달과 전파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대륙별로 그러한 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방대한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사피엔스>는 <총, 균, 쇠>에서 영감을 받아 보다 큰 질문을 던지고 냉정한 답을 제시한다. 상세한 데이터와 사례는 많지 않지만 오히려 인류의 발전과 변화 과정을 명쾌하게 구분하고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6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하지만,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인류 역사의 진로를 바꾼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 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1만 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그리고,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나는 두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하나는, 왜 인간은 이렇게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고도 아직 동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가, 다른 하나는, 생명 공학의 발달로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해 왔다. 지구에 등장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현대의 우리가 가진 몸은 그 생활에 맞도록 진화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피엔스>에서 설명한 세 개의 혁명이 일어났다. 농경 및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하고 같이 생활하는 무리의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제도와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이제 산업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역할이 매우 커졌고 그 기능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화려한 발전과 거리가 멀다. 산과 물을 가까이하고 살던 동물적 성향과 본능을 발산할 기회가 많지 않다. 도시인의 삶은 무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매머드 사냥에 성공한 수렵채집인과 같은 기쁨을 맛볼 경험은 하지 못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까지 과학이 발전했지만 우리의 삶은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생물학은 생물 간의 차이와 생명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생명체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DNA를 바꾸는 생명공학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두 책에서는 역사의 흐름은 크게 두 방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총, 균, 쇠>는 “결국 지역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몇 달 내에 수확이 가능한 작물은 곡류였다. 지리적, 기후적으로 곡류가 잘 자라는 곳에서 농경 생활이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농경 생활은 인구 증가와 전문가 집단의 등장으로 수렵채집인보다 큰 힘을 갖게 하였다. 이후로 정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시 수렵채집 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야생 동물의 가축화도 마찬가지였다.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은 온순하고 번식이 용이하며 사회적 계급을 갖는 등 여러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지역별로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달랐다. 특히, 유라시아 지역이 농경 생활과 가축화에서 앞서 갔고 이로 인해 신대륙에 비해 유행병을 먼저 겪게 된다. 이러한 차이가 결국 서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빠르게 점령하게 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또한, 과학의 발전과 관련해서도 서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신대륙이나 동아시아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갈 수 있었는지 명쾌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농경을 위한 정착 생활을 먼저 시작해 소유물을 보유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대장장이 같은 기술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나타날 수 있었고 수천 년의 기간을 이어오며 기술력을 축적하였다. 바퀴나 철기의 등장, 화약과 대포의 발견 등이 그러한 과정 속에 태어났고 발전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유라시아 내에서 쉽게 전파되었지만 신대륙으로 퍼지기는 어려웠다. 유라시아 내에서도 동아시아는 고립된 지리적 요건 또는 사회체계로 인해 새로운 문화와 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피엔스>의 진화론적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화는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원하지도 않는 농경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회가 커지면서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다루기 위해 상상의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농부들은 더욱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로 신화는 종교가 되고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로 이어져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개인의 삶은 국가와 시장 지배자의 논리에 이용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피엔스라는 종이 점점 더 커다란 집단으로 성장하고 지구촌을 형성하며 뛰어난 과학기술로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개개인의 삶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자연선택에 따라 살아남은 자의 유전자가 계속 전달되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중략)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농경 생활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배층과 엘리트 계급이 등장하고 이들은 점점 더 커지는 무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상상의 신화를 등장시킨다. 사회가 커질수록 개인은 조직의 논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때때로 그 논리를 반박하기도 하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거기에 대응한다. 자유와 평등은 18세기 프랑스혁명 이래 최근까지도 인간의 근본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사실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평등과 자유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소득과 세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투기에 바쁜 실정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상은 인류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절약보다 쇼핑을 더 선한 행동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은 모순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이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인지 부조화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모순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행복은, 집단적 환상에 개인의 이상을 맞추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어야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문명화된 사회를 만들고도 아직 동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서두의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단순할 수 있다. 신체의 진화 속도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가 비만의 문제로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부터 그렇다. 우리 몸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을 때마다 축적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몸속에는 항상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축적되고 그것이 이제까지 인류가 적응한 적 없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먹이와 생존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번식에 적합하도록 발달된 우리의 신체다. 사춘기가 오면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을 갖게 되지만 사회 규범을 지키기 위해 본능을 억제해야 한다. 억제된 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호하다. 생명 공학의 발달로 자신의 진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과학소설들이 인간의 상상력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일은 현실이 되기 어렵겠지만, 한 생명의 DNA를 그대로 복제해서 다시 태어나게 하거나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생명의 DNA에 인위적인 변형을 주는 건 쉬운 일이 되었다. 과학 혁명을 잇는 생명공학 혁명의 시대다. 환자의 DNA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 생명 연장 의지가 더 강해지면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다. 그런 방식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대체될 수도 있다. 어쩌면, 기술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 자신을 바꿔놓아 질문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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