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바라야만 한다. 모두가 있는 풍경을.
극 후반부에 특수학교 설립에 찬성하는 고성희는 울부짖으며 외친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가 지옥이다. 그 지옥 속에서 다들 잘 살려고 하는 벌을 받는 중이다. 그런데 지옥도 소속이 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장애인과 그 가족)은 거기조차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게 외치는 그의 서러움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을까?
연극 <생활풍경>은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주민 토론회와 관련된 실화를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2020년에 초연되었으며, 올해 다시 공연되었다. 초연과 비교했을 때 재연은 일부 달라진 점이 있다. 그중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바로 특수학교 설립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더욱 다양하게 반영한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혐오가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는지 관객에게 일깨워주고자 했다. 장애인에 대한 어떤 시선은 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는 등 적나라했다. 또 어떤 시선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면서도 은연중에 그들을 배척했다. 심지어는 역차별성을 부각했다. 그런데 이 같은 시선을 보낸 사람은 우리가 흔히 작품에서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다.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간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는 호의적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서슴지 않고 이기심을 드러내고 혐오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연극 <생활풍경>은 불편한 연극이 될 수밖에 없다. 관객으로 하여금 극 중 인물과 ‘거리 두며’ ‘저 사람 참 이기적이고 악독하다!’고 마음 편하게 비난하도록 두기보다는 ‘당장 내 문제가 아니니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실제로 저 상황에 부닥쳤어도 끝까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라고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다양한 양상의 장애인 혐오를 드러내는 동시에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 또한 적극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구체적인 예로 ‘통합교육’을 들 수 있는데, ‘통합교육’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복지사 지망생, 장애 동급생 도우미로 애로사항을 말하는 학생, 장애 학생 학부모의 의견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통합교육’의 이상과 현실을 꼬집는다.
연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롭게 추가한 장면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정상성’으로 여겨온 것이 ‘과연’ ‘정상성’인지 의심하게 하며 ‘정상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2막 중후반에 주민 토론회 일부 장면이 재현되는데, 현실과 달리 비장애인이 차별받는다. 그때 지체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색해했다가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상보다는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상이 더 익숙했구나.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진 거구나. 이런 식으로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익숙해져 버린 삶을 살고 있구나…….
초연에서는 화합, 사랑, 평화를 노래하는 <손에 손잡고>와 <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활용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의 장에 가깝다고 역설적으로 부각했다. 재연에서는 <풍경>이라는 노래를 통해 장애인이 더는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지 회의감에 들게 한다. 특히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가 들릴 때마다 심경은 더욱 착잡해진다. 현실도 연극과 다를 바 없는데, 아니 오히려 연극에 비하자면 혐오가 난무하고 있는데,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연극의 제목인 ‘생활풍경’에서 ‘풍경’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의심해봤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과연 ‘있는 그대로’의 풍경일까? 그 풍경에서 내가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보이지만 애써 ‘모른 척해버린’ 존재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사회라는 풍경에서 의도적인 배제를 통해 장애인을 점점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극 중 왜 장애인이 (거리에) 안 보이는 줄 아냐, (나가고 싶어도) 불편해서 못 나가는 거라고 일침을 가한 장애 학생 학부모의 말이 다시 떠올라 씁쓸하다.
극단 신세계는 불편하다고 애써 모르는 척하고 외면해버리는 것들을 연극으로써 적극적으로 들춰낸다. 나아가 관객 스스로 직시하게 한다. 피하지 마. 피해서는 안 돼. 이제는 봐야 해. 이제는 알아야 해. 극단 신세계는 단순한 제시를 넘어 끝없이 관객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