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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16

그녀는 채찍과 회초리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실핏줄이 터졌 피가 흘렀다

by proo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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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한문수가 평탄읍 갈내면에 위치한 민수형의 집에 들른 것은 이른 오전이었다. 민수형은 민소진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 민 사장 계시는가? 한문수는 붉은색 철제 대문을 밀고 민수형을 불렀다. 진돗개 마루가 컹컹거리며 바삐 짖어댔다.

― 아. 이장 어르신 오전 일찍 어떻게 오셨습니까?

― 아이고 소진이는 볼 때 마다 잘 크는구나. 벌써 10살 되나? 아. 오늘이 참 토요일이지.

― 네, 열 살이죠. 이리 앉으시죠. 어쩐 일이신지요.

민수형은 그를 툇마루에 앉히고 차를 내왔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이장은 말을 꺼냈다.

― 이번 풍어제 말일세. 아무래도 조금 더 비용부담이 안되겠나? 자네도 사정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번 굿은 제대로 된 만신을 불러서 하는 게 어떤가? 기존에 하던 축제 공연이야 작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 음...... 그 애기는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아무리 갈내면 인원들이 모여 비용을 부담하고 만신이라고 하는 용한 무당을 부른다 해봐야 굿은 그냥 굿 일 뿐입니다. 굿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죠. 기본은 하겠습니다만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 자네도 황의원 일 그만두고 공장 인수해서 사업하느라 한 창 힘들다는 것 알고 있네. 하지만 오래전부터 해 오던 전통 같은 것이고. 이번에는 설화가 다쳐 새로운 만신이 온다고 하니. 기대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말이 그렇지. 자네야 공장을 운영하니 큰 문제가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이 대부분 고기가 안 잡혀서 문제가 아닌가.

―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어장을 새로 알아봐야 하고 장비를 바꾸는 게 낫습니다. 크지 않은 비용이기는 하지만 매년 기존의 전통이라고 해서 굳이 굿을 계속 해야 하는 것도 저는 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황의원도 그렇고 너무 무속에 빠져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알겠네...... 자네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한문수는 안타깝다는 듯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문 앞에서 소진이와 한 여자아이가 진돗개 마루를 쓰다듬고 있었다. 민수형은 한민수 이장을 배웅하기 위해 대문으로 향했다.

― 소진아.

민수형이 소진이를 불렀다. 신효선도 바람을 쐬러 차량 밖으로 나간 아이를 찾아 붉은 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후 한문수는 신효선에게 손짓을 했다. 아이는 신효선의 부름에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한문수의 차에 올랐다. 신효선과 아이는 바닷가 근처의 모텔로 향했다.

― 얘기는 잘 되었습니까? 신효선이 물었다.

― 음...... 다들 사정이 어려운지라. 어쨌든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할 걸세. 굿 비용을 더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

― 어쩔 수 없죠. 모텔보다는 오래된 빈 주택이 좋습니다. 집주인이 외지에 있고 관리만 하고 있는 집이 있다고 하던데.

―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모텔이 아니었지. 그는 차를 돌렸다. 백미러에 아이의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무표정했다. 한민수는 그녀를 힐끗 겻 눈질 했다. 아이는 뒷좌석의 창문을 내리고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내륙 한가운데서 생활하다 바다 냄새가 나는곳에 오자 새로운 자극이 되는 듯 했다. 차량은 적산가옥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 해변가 오래된 주택에 도착했다. 적색기와와 누렇게 변해벼린 11월의 말라붙은 들풀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 아는 사람 집인데 집주인이 오래전부터 병원에 있어 당분간은 나올 수 없고. 얘기는 해뒀네. 집을 오래 비워두면 안되니. 자식들도 서울에 있어. 며칠간 이 집에서 지내면 될 걸세. 예정대로 일정을 준비해 주면 될 거야. 그럼 나는 하루 전에 다시 오겠네.

― 아가. 며칠 있다가 보자. 한민수는 손을 흔들어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대로변으로 차를 몰고 나섰다. 한민수는 어린 정혜가 눈에 밟혔다. 차가 출발하자 누런 황토빛 먼지가 시야를 덮었다. 신효선은 익숙하게 툇마루에 올라 짐을 풀었다. 한민수는 신효선에게 여러 번 아이를 잘 대해줄 것을 당부했다.

― 저 아이인가? 너무 다그치지 말고 잘 봐주도록 하게. 불쌍한 아이야. 한민수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 네, 그러죠. 그녀는 별 관심 없다는 투로 성의 없이 대답했다. 한민수의 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신효선은 돌변했다.

― 어디서 꾀를 부리고 있어.

그녀는 아이에게 큰소릴 내며 물건을 집어 던졌다. 잔뜩 주늑 든 아이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막 10살이 되었다.

― 신령님께 복을 빌어보자. 너와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네년이 나를 도와줘야 해. 넌 그렇게 타고 난거야. 신효선은 무엇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는 체념의 눈빛을 드러냈다. 그 나이 때의 아이에게는 나올 수 없는 순응과 복종의 태도였다. 아이는 순순히 그녀의 지시를 따르며 신당에 법주와 여러 물건들을 옮겨 두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며 고함과 신음과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방향에 맞춰 신효선도 주문을 외우고 치성을 올렸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 더 크게. 신효선은 회초리로 아이를 자극했다.

아직 신령님이 오시지 않아. 더 크게... 그녀는 채찍과 회초리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아이의 등에 회초리로 인해 붉은색 피멍이 맺혔다. 상처는 아물 었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했다.

― 아악......

숨이 넘어갈 듯 큰 비명소리가 났다. 외진 곳이라 인적은 거의 없는 곳이었다. 곧 음기가 곧 가장 충만한 시간이다. 아이는 숨이 가쁜지 연거푸 몸을 부르르 떨며 다양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신효선은 아이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분명한 자극이었다. 보이지 않았던 영가들이 다시 자신을 자극하는 듯 했다. 신효선은 아이의 몸에 신령이 들어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아이가 정신을 잃기 시작하자 그녀는 아이를 깨워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신효선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르는 의식을 도왔다. 어느새 아이는 접신상태에 들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숨을 헐떡이며 털썩 자리에 주저 않았다. 그래도 ‘ 신기가 돌아오지 않아’ 신효선은 중얼거렸다. 더 해야 해. ‘아이를 자극해 신령을 부르는 것은 효과가 있었지만 이전 같지는 않다’ 이장 한문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 내일 고생 좀 해 줘야겠구만. 한민수가 말을 꺼냈다.

― 고생은요. 무슨 그냥 하는 일인데요.

― 굿이 어디 보통일인가. 온몸을 다 써야 하는 일인데. 사실은 부탁을 해볼게 하나 있는데 말야. 올해 풍어제 굿이 끝난 이후 하나 일을 더 해줘야 겠네.

― 말씀하시지요. 한민수는 황호민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이 집안과 엮여 있었다. 그는 뱃사람이었다. 뱃일을 오래 한사람이고 굿과 관련된 여러 준비물과 소품과 다른 사람과의 연락에도 도움을 주기도 했다.

― 황호민 의원을 알고 있나? 지역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야.

― 들어본 적은 있어요. 대대로 그 집안이 이 일대에서 한목소리 내고 있는 거죠? 일제시대부터 부자라고 들었습니다.

― 그렇지. 자네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좀 있어서 그 집에서 좀 일이 끝나면 보고 싶다고 한 모양이더라고.

― 무슨 일인데요? 제가 도움을 줄 만한 일이 있을까요?

― 그 집 아들이 좀 아픈 모양이야. 뭐 병원도 많이 다닌 듯 하고. 병원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자세한건 가서 물어봐. 대충 듣기로는 신병 같은 게 좀 있는 것 같아. 그 아들한테. 발병을 했다가 없어졌다가 그런 모양이더라고. 풍어제가 끝나고 숙소에서 하루를 쉰 뒤에 신효선은 한민수의 차를 타고 황의원의 집으로 향했다. 형주 부촌 조형동 2층 붉은 벽돌 단독주택이었다. 낮고 작은 언덕위로 차는 부드럽게 올라갔다. 저택 앞에서 전경을 보았다. 위압감이 없는 고즈넉한 풍광이 펼쳐졌다. 멀리 바닷가와 선녀바위도 보였다. 자동문이 열리고 소나무와 정원수가 심어진 정원이 눈에 띄었다. 잔디밭 한 가운데 다양한 모양의 파쇄석이 발걸음에 맞춰 놓여 있었다. 보기 좋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바위가 소나무 옆에 병풍처럼 늘어서 사람을 맞았다. 마치 호위병같은 느낌을 주었다. 진한 오크색의 두꺼운 나무 현관의 문이 열리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이는 50대의 가사도우미가 문을 열어 주었다. 신효선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게.

반백의 머리를 한 짙은 남색셔츠를 입은 풍채가 좋은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 그녀를 맞았다. 멀찌감치 본 기억이 났다. 황호민의원이었다.

― 얘기 많이 들었네. 황호민이 말을 꺼냈다. 풍어제의 굿도 봤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 네. 올해도 사고 없이 풍어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신령님께 기도를 올렸죠. 신효선이 말했다.

― 우리집안은 무속인과 관련이 깊어. ‘설화’가 다리를 다쳐 이번일은 법당에게 제안이 간 것이고 내가 두루 알아본 결과 제안을 해볼 것이 있어서 얘기를 좀 나눴네.

― 무슨 말씀이신지.

― 일단 내 아들놈이 있어. 자네가 좀 봐주면 어떨까 하네. 그놈이 좀 이상해 진 게 아무래도 나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는 말이지. 오래전 일이야. 내가 어릴 때 저놈하고 비슷한 병을 앓은 적이 있어. 당시에 무당이 나보고 무병이라고 했어. 내가 저놈 나이 때였으니까. 그런데 알다시피 무속인이 될 수가 없었지. 하지만 몸은 계속 아파왔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다른 사람을 대신 찾은 것이지. 나도 참 이상한거야.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하는데 몸은 계속 아프고 특히 머리가 아파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시청에서 공무원을 할 때였지. 신효선은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 누가 대신 신내림을 받았습니까? 오래전 숨진 막내 동생이었어. 집안의 골칫거리였지. 어쨌든 그렇게 일은 진행됐네. 이후로 내 몸이 아픈 것은 싹 나았지. 신기한 일이더군, 무속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더군. 오래전에 그 양반이 왜 그렇게 굿을 하게 됐는지.

― 혹시 집안이나 어르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까? 신효선도 황호민의 집안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들 집안의 친일 행적은 유명했다. 그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창씨개명을 했다. 황호인은 오다 요시타카 小田義孝였다. 황호민 일가의 숨기고 싶은 과거이기도 했다. 그는 조선인들을 밀고하고 수탈해 막대한 부를 쌓아 나갔다. 사업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나 경쟁회사를 가볍게 누명을 씌웠고 경쟁자도 몰아냈다. 자신과 갈등을 일으키면 독립운동을 한다는 혐의를 씌워 고위직에 밀고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뤘지만 그는 멈출 줄 몰랐다. 해방이 되고 적산가옥에서 일본인들이 나가자 그도 대안을 찾아야 했다.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학교법인을 인수해 교육자 이미지를 쌓아 나갔고 군부독재 시절 학교를 인수해 영향력을 넓혔다. 신효선은 잠시 침묵하며 차를 마셨다.


― 잠깐 아드님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상황을 모르니 일단 상태를 한번 보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 알겠네. 둘은 황정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었다. 황호민은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지만 아들에게서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아스퍼스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말을 더했다. 신효선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이제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간신히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잡귀 같은 기운이 조금 느껴진다는 얘기를 황호민에게 걱정된다는 투로 슬쩍 흘렸다.


― 언제부터였습니까? 여러 무속인에게 상태를 보여줬습니까?

―‘ 설화’가 한번 보고 갔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신령과 무속과 관련된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그래요? 정우야. 잠깐 이리 좀 와볼래.

황호민은 아들을 거실로 잠깐 불렀다. 여기 선생님이 네가 아프다고 해서 좀 보려고 왔어. 황정우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황호민은 부인이 교통 사고로 사망하고 송민지 보좌관과 함께 살았다. 황정우의 상태가 악화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황호민은 황정우가 방황하기 시작하자 서울의 친척집에 그를 잠시 위탁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본 후 아이는 한동안 그 생활에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과 자해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 웅얼거림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친척들 모두가 무서워 해 황호민은 그를 다시 형주로 불러 들였다. 이후 오래전 자신에게 나타났던 행동들이 아들에게도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잠시 신효선과 이야기를 하던 황정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갑작스레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둘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10여분이 지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사이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황정우는 침대에 누웠다.


― 언제부터 저런 모습이 있었습니까? 신효선이 물었다.

― 최근 다시 시작된지 몇 달 됐어.

― 뭔가 방법이 보이나? 왜 그런 것인지 설명이라도 해보게.

― 정우를 둘러싼 기운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 존재가 오래전 의원님과 집안과 관련이 있는 존재라면 정우에게 갔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떼어 내야 합니다. 일단 좀 지켜보고 말씀을 드리죠.

― 음... 알겠네. 황호민으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일단 신효선의 말대로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는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그 기묘한 상황을 떠올렸다. 어찌된 일인지 내림굿을 한 이후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두통과 여러 질환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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